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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몸이 아팠기 때문일까 아니면 텍스트가 나빠서일까

by 홍차영차 2024. 10. 14.

https://cafe.naver.com/afterworklab/1194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2를 낭독읽기 시작한지 4주차다. 그동안 책의 3/4에 가깝게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까지 낭독한 부분에서 떠오르는 것이 거의 없다. 특별하게 인상이 깊다거나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고 느낀 구절이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번에 낭독한 책이 난해하고 해독이 되지 않아서였을까. 한 마디로 책이 별로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지난 2~3주간 몸이 아파서 그랬을까?

낭독 읽기 게시판을 보니 지난 3주간 낭독 읽기에 대한 후기를 하나도 남기지 못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감기에 너무 심하게 걸려서 정신을 온전히 차릴 수가 없었다. 2~30분 정도의 짧은 시간도 정신을 온전히 차릴 수가 없었다. 잠시동안 정신을 차리고 나면 금방 지치고 잠에 다시 빠져들었다. 머리가 계속 아파오고 열이 나고, 콧물은 계속 나는 상황에서 온전하게 읽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읽기란 무엇인가.

읽기란 재독이(어야 한다)라는 오에 겐자부로의 말이 떠오른다.(<읽는 인간>) 눈으로 읽었다고 읽은 것이 아니다. 읽은 것을 다시 읽으면서 자신의 말로 바꿔볼 대 '읽은 것'이 된다. 읽은 것을 몸에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낭독하면서 올라왔던 느낌들을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는 후기 작업을 할 수 없다보니 3주간 읽었지만 읽지 않은 것과 다름 없었다.

 

눈만으로 읽는 것은 표면적 읽기밖에 되지 않는다. 읽기란 온몸으로 읽기어야 한다. 지난주말부터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온전한 정신을 차릴수가 있다. 신기하게도 아팠다가 다시 몸이 회복되고 나니 '낭독은 노동'이라는 말, '낭독은 신체적'이라는 말이 직감적으로 다가온다.

몸이 아팠을 때 낭독은 낭독으로 작동하지 못했다. 그저 낭독의 형식을 흉내낸 묵독이었다. 소리내어 읽고 있지만 내 몸의 감각에서 문자에 반응하는 것은 오로지 눈(시각)밖에 없었다. 입으로 소리를 냈지만 (아파서 한 단락정도밖에 읽지 못했다) 내가 낸 소리임에도 다른 감각은 전혀 반응할수 없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몸의 세포들이, 몸의 부분 부분들이 힘겹게 투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서 방어체제를 구축하고 다시 정상상태로 돌아오기 위해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쓰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외부적 자극에 반응하기 어렵다.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모두 희미하다.

오늘 낭독 시간 마지막 부분에서 오랜만에 다시 눈을 감고 들었다. 들려오는 소리는 몸의 온갖 감각들을 자극하면서 그 단어와 읽는 사람의 의지, 그리고 내 몸을 혼합시켰다. 단순하게 보면 낭독소리는 내 몸의 촉각, 청각을 비롯한 감각들, 그리고 내부의 신체적 작용들이 만들어내는 신호들이 새로운 의미들을 생성시켰다는 말이다.

읽는 것이 읽은 것만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읽을 것은 몸에 각인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읽은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춤을 출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읽은 것을 다시 떠올리는 작업이다. 다시 떠올리는 재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 누구와 읽었는지 어떤 분위기였는지에 따라서 그 텍스트가 각인되는 정도가 달라진다. 만약 온 몸의 감각들이 자극되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면 재작업을 할 때 좀 더 풍부한 원재료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말은 읽기가 오로지 그 단어들이나 텍스트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과 읽었는지, 어떤 장소인지, 몸의 상태는 어땠는지, 텍스트를 전달하는 소재(목소리/종이상태/배치), 온도, 압력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언제나 읽기란 자신 안에서 재해석되는 것이고 재배치되는 것이라는 점!

읽기란 온 몸의 감각들을 여는 작업이면서 또한 열린 감각으로 그 텍스트(풍부한 원재료들)와 함께 섞이고, 새로운 몸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지 않을까. 

멘델스존 무언가 op 67-1

https://youtu.be/nbnvwnQffrk?si=WLRNU-6pf0h81Z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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