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은 끝났다.
2024년 올림픽만이 아니라 1896년 그리스에서 다시 시작된 올림픽이라는 의례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올림픽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고대 그리스에서도 그랬지만 새롭게 시작된 근대올림픽 역시도 공동체의 감각을 고양시키는 데 있다. 일본과 한국의 축구 경기나 야구 경기를 떠올려보면 된다. 평소에 국가에 대한 별다른 생각도 하지 않고 애국심이 없던 사람들도 경기를 보면서 무형의 국가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우리편이 이기면 자부심으로 커진 공동체감각을 갖게 되고, 또 지게 되면 분노(?)의 마음으로 불타는 공동체감각을 되새기게 된다. 고대로 돌아가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마지막 장면을 보자. 아킬레우스는 왜 파트로클로스의 장례식에서 운동경기를 하면서 선물을 주었을까. 끊어진 공동체의식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가 경제적 문화적으로 세계적인 위상을 갖게 된 것은 불과 몇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높아진 위상과 달리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라고 할까, 집단의식은 점점 더 낮아지는 것 같다. 나에게 나라에 대한 공동체의식과 애국심(국뽕?))이 높았던 시기를 1988년 24회 올림픽을 거쳐,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였다. 전두환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나라에 대한 마음이 커졌고, 2002년 이미 올림픽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축제였던 월드컵을 경험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공동체 감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고서부터 더 이상 올림픽에 흥미를 잃었고, 2002년 4강 신화를 세운 이후부터는 월드컵에도 별다른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이번 올림픽은 그 최후의 단추처럼 느껴졌다. (내부적 정치상황을 배제하더라도 근대적 공동체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라는 체제가 무너졌다는 것은 이제는 누구라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파리 올림픽은 여러면에서 올림픽의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친환경 올림픽이라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누가 보더라도 올림픽에 쓸데 없는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다. 사실 유럽의 입장에서 보면 올림픽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이미 오래전부터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파리 시민들은 올림픽때문에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더 많은 규제가 생기고 일상적인 리듬이 깨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에서는 어떤 경기도 본방송으로 본 적이 없다. 공부를 하고 쉴 때 혹은 밥을 먹을 때 유튜브를 통해서 살펴볼 뿐이다. 실시간으로 볼 이유도 없고 선수들이 더 많은 메달을 딴다고 해서 없던 애국심이 생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한테 올림픽은 재미있는 예능과 그리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국가 중심의 올림픽이 무너지 상황에서 등장한 멋진 개인들, 선수들이다. 먼저 사격의 김예지 선수를 보자. 기술면에서 보완할 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없다"라는 대답! 오만하다고까지할 태도(style)이었지만 오히려 그의 멋진 사격자세와 태도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를 사로잡았다. 자신의 주종목에서 실격당하고 나서도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당당하게 '이번에 실격당했다고 해서 자신의 사격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 꼭 금메달을 따겠다'라는 더 멋진 말을 남겼다. 1990년대, 2000년 초반에 이런 대답을 했다면 사회적, 국가적인 매장을 당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는 집단에 봉사(?)하는, 금메달을 안기는 것보다도 더욱 이런 개인들, 고귀함, 멋짐, 당당함의 태도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

탁구 선수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올림픽 탁구 경기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참가했다고 하지만 선수들 대부분이 귀화한 중국인이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신유빈 선수 이외에 전지희, 이은혜 선수는 모두 중국에서 귀화한 선수들이다. 귀화 선수들을 보면 국가의 힘이 더 느껴진다고 할 수도 있지만, 더 이상 국가에 제한받지 않고 자신의 역량과 욕망을 드러내려는 개인들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을 대변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반응을 봐도 그렇다. 그 누구도 귀화선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멋진 경기 모습을 모여준 것에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한 신유빈 선수의 표정이나 경기 모습은 새로운 개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귀화한 다른 두 선수들이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않게 하는 말들이나 경기 모습, 그리고 언제나 밝고 순수한 모습으로 결과를 직면하는 모습을 또 따른 고귀한 개인을 보여주는 듯 하다. 복식 동메달, 여자단체 동메달을 따고 보여준 모습은 이전에 따낸 그 어떤 금메달보다도 더 멋지게 보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는 단연 안세영이다.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는 기량면에서 의지면에서 대단한 선수다. 17세에 국가대표가 되었고 현재 22세의 나이에 벌써 아시안 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더 멋진 것은 경기에서가 아니라 그 이후의 인터뷰에서 나온 말들이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분명하게 세계 그리고 개인들의 정신공간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불합리한 협회의 규칙을 바꾸면서 더 높아진 자기의식을 가진 개인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는 시도로 보인다.
안세영이 배드민턴 협회에 불만을 토로한 것을 단순한 개인적 경제적 욕심으로만 보면 안 된다. 특히 그는 금메달을 따고 자신의 말에 더 큰 힘이 실린 상태에서 이야기 하고 싶어했다. 세계는 바뀌었다. 이전처럼 집단의식, 국가 우선의 방식으로는 어떤 것도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나라를 대표해서 올림픽나가서 경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욕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협회의 규칙에 복종하지 않으면 경기에 나갈수도 없고, 또 개성과 역량에 알맞은 댓가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점점 무너져갈수밖에 없다.
올림픽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분명 올림픽은 근대국가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만 달라진 개인들, 새로워진 정신공간으로 인해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림픽을 대체할 다른 '의례'들을 발명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 일본은 올림픽에 사활을 걸지 않고 있다. 말만 축제가 아니라 정말 즐거운 축제로서 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다. 월드컵도 세계적 축제이자 의례로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의례를 형성할 수 있을까.
올림픽을 통해서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형성했다는 것.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국가가 작동하지 않는 세계가 되었다는 점을 봐야 한다. 오래 전부터 국가, 학교, 가족이라는 형태(form)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새로운 공동체,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시켜주는 의례를 발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새로운 실험들, 시도들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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