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 9일 1시간 빠른 8시 SBS뉴스가 출발했다.
KBS와 MBC 이외에 새로운 방송사가 출범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어쩌면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8시 뉴스의 시작이다.
뉴스가 새로 시작한 것이 뭐 그리 큰 일일까? 그런데 8시에 시작하는 SBS의 뉴스는 생활리듬면에서 획기적이었다. 뉴스는 항상 9시였기 때문이다. 9시만 되면 우리 집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집에서는 저녁을 먹고 하루를 정리하는 9시 뉴스를 봤다. 9시 뉴스 이후에 '착한 어린이'들은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9시 뉴스 이후의 시간은 어른들의 시간이었다. 주말이 되면 유일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토요명화, 주말의명화때문에 좀 더 늦게 잠자리에 들곤 했다.
9시 뉴스를 본다는 것은 거의 전국민에게 일정하고 비슷한 리듬을 만들어준다. 대부분 그 전에 식사를 하고, 친구가 놀러왔더라도 대부분 9시 뉴스 전에는 집으로 돌아갔다. 9시가 넘어서 들어올 때는 미리 연락을 주기도 하고. 당시 인구가 4400만 정도였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가정들이 이와 비슷한 리듬으로 생활리듬을 형성했을 것이다. (우리집만?)
그런데 갑자기 8시에 뉴스를 하는 SBS 방송사가 나타났다. 서울방송이라고 불렸지만 곧이어 전국방송이 되었다. 새로나온 방송사에서 가장 크게 선전한 것은 (내 기억이 맞는다면) 바로 8시 뉴스다. 뭔가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기 위해서 시작했을 것이다. 9시에 하던 뉴스를 8시에 하는게 뭐 그리 큰 변화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별일 아닌 작은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때는 TV의 프로그램들은 알게 모르게 나라 전체의 국민들(?)의 신체적 리듬과 정신을 지배했다.(고 봐야 한다.)
전 국민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뉴스를 본다. 다른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똑같은 사건에 대해, 똑같은 견해들만이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새로운 사건이나 언어사용 역시 TV를 통해서 몇 안되는 신문을 통해서 유통되었을 뿐이다.
1992년에 방영된 <아들과 딸>은 최고 시청률 61%, 평균 시청률 49%였고, 1995년의 <모래시계>는 최고 시청률 65%에 평균 시청률은 50%게 가까웠다. 이 정도 시청률은 TV를 갖고 있던 대부분 가구들이 이 프로그램을 봤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때는 볼 수 있는 드라마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들의 정신공간을 채우는 재료들이 거의 동일하게 된다. 어디에 가더라도 누굴 만나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같은 언어(parole)의 사용은 비슷한 정신공간과 비슷한 생활방식으로 연결된다. 이런 비슷한 생활패턴에 균열을 주기 시작한 것이 바로 1시간 빠른 SBS뉴스가 아닐까. 좀 과장된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이렇게 시작된 균열은 점점 커져갔다.
유튜브가 처음으로 동영상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 2005년이고, 1년 조금 넘는 시작에 2006년에 구글이 10억불이 훨씬 넘는 금액에 인수했을 때는 과도한 투자라는 말도 많았다. 되돌아 보면 유튜브의 가능성을 초기에 알아본 구글의 안목이 놀라울 따름이다. 2000년 전후의 시기에 태어난 친구들에게 가장 친숙한 것이 바로 유튜브가 아닐까. 아마도 이 친구들은 TV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생활리듬, 정신공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동영상 공유는 유튜브를 넘어서 이제는 넷플릭스, 디즈니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수도 없이 많아졌다. 90년대의 TV와 가장 차별되는 것은 시간이다. 예전이었다면 <무한도전>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토요일 6시 30분에 TV앞에 있어야 했다. TV가 한대뿐이었으니 집안 사람들이 함께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뭔가를 보기 위해서 함께 모일 필요도 없으며, 공용 거실로 나갈 필요도 없어졌다. 그 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아무때나 다른 사람들 신경쓸 필요 없이 혼자서 볼 수 있다.
TV가 사라졌다!
아마도 10대, 20대, 30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별 감흥이 없을 것이다. 이 세대들에게는 원래부터 TV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이제 40대, 50대를 넘은 세대들에게도 TV가 사라졌다. 사라지고 있다. 'TV가 사라졌다'는 것은 거실에 있는 TV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TV가 우리 삶의 리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도 공통된 프로그램을 봤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대화하기가 어려워졌다. 뿐만 아니라 공통적인 리듬을 형성하기도 어려워졌다. 각자가 자신의 리듬 속에서 각자의 정신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개개인의 리듬, 패턴을 만들기 역시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원래 TV를 보지 않는 사람도 있을텐데? 하지만 이건 TV를 보느냐 보지 않느냐와 상관없는 전체적인 변화다.
10대, 20대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하루 일상의 리듬을 형성한다. 30대, 40대, 50대까도 주로 직장과 하는 일을 중심으로 일상을 꾸린다. 아침 7시쯤 일어나서 준비하고 학교 혹은 직장에 가고, 저녁이 되면 돌아와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또는 돈을 많이 벌었느냐와 상관없이 이런 방식으로 리듬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삶의 리듬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학교도, 직장도 점점 더 그 힘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TV를 보는 시청자층은 아마도 50대를 넘어서 60, 70대일 것이다. 이때는 더 이상 학교도, 직장도 다니지 않기 때문에 자기 삶의 리듬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워진다. 뭔가를 규칙적으로 하면서 리듬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학교, 직장 이외에 TV프로그램을 보는 것 이외에 어떤 방법으로 삶을 구성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20, 30대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비슷한 또래와 함께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조금 덜할지 모르지만 그 속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함께 일을 하고 함께 공부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서로를 묶어줄만한 공통적인 것이 별로 없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많이 본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유명해진 드라마를 꼭 보려고 하는 것이다. 정말 그 영화가 재미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야 겉으로라도 함께 이야기할 주제를 마련할 수 있으니까. 천만 영화는 너무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천만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리듬은 어떻게 형성될까?
별 것 아닌 것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 리듬을 만든다. 토요일마다 하는 욕실청소, 목요일에는 친구와 만나서 맥주 한잔하기, 토요일에 시집읽기. 매일 일어나자마자 커튼 치기, 반려동물 먹이주기, 꽃에 물주기, 매일 일정한 시간에 청소/설겆이, 하루에 두번씩 (반려동물과) 산책하기. 쓸모 없어 보이고 의미도 없어 보이는 작은 일들이 일상의 리듬을 만든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리듬을 구성해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토요일 욕실청소가 가장 중요한 삶의 리듬을 몸으로 경험하는 의례일 수 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씩 식물에 물을 주고, 돌보는 것이 삶의 생명력을 느끼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TV가 사라졌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냥 있어서는 각자가 자신의 삶의 리듬을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똑같은 리듬을 형성할 필요는 없다. 다만 각자가 자신의 특이성에 맞는 삶을 구성하려는 지속적인 시도가 있어야 한다. 또한 모두는 아니더라고 함께 리듬과 공통 언어를 구성할 활동들이 필요하다.
이제 나도 TV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네하면서 떠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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