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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

사물을 대하는 태도 (feat. 백내장 수술)

by 홍차영차 2024. 4. 27.

 

요즘의 하루 일과를 적어봅니다.

새벽에 일어나 니체를 낭독하고 밥을 먹고, 이후에는 조금 쉬다가 점심 전에 책을 조금 더 읽는다. 그리고 점심에는 하루 한 번의 볼일을 보러 외출을 합니다. 산책을 할 때가 가장 많고, 가까운 미술관(군립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기도 합니다. 물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5일장에서 주요한 생필품을 사기도 하죠. 이렇게 외출을 하고 나서는 다시 들어와 책을 조금 더 읽고 저녁을 먹는다. 저녁 이후에는 2시간 정도 책을 조금 더 보거나 글을 정리한다. 이렇게 보면 인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의 삶의 리듬은 노년의 삶과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책 보고, 산책하고, 또 책보고 고양이랑 놀고, 글쓰고, 세미나 하고. 

지난주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이제는 삶의 리듬뿐 아니라 신체의 리듬도 점점 노년을 따라가는 듯 하네요. ^^;;

4~5년 전부터 노안이 시작되었고, 몇개월 전부터 눈이 침침해졌는데 24년 들어오면서 오른쪽 눈이 거의 뿌연 유리창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왼쪽 눈이 보여서 생활 자체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한쪽 눈이 뿌옇다보니 기분이 점점 더 우울해지더라구요. 선명하게 보이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기분을 상당히 좌지우지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미세 먼지가 많은 날이 계속되거나 날이 우중충하면 또는 눈이 침침하면 기분이 자연스레 우울해진다는 점!

백내장 수술은 눈의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수정체를 넣는 것인데, 수술하고 2~3일부터는 세상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실제 수술은 30분도 걸리지 않지만 검사하는 날이나 수술하는 날은 신체적으로 좀 많이 피곤하긴 하더군요.) 신체에 인공적인 사물이 들어오게 된 것인데,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백내장 수술 전에 몇개월에 걸쳐 임플란트를 하고 있었는데, 눈의 수정체까지 인공으로 교체하다보니 사물/생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임플란트를 할 때에도 신체에 들어온 사물이 신체와 잘 반응하는지 살펴보는 시간이 있습니다. 당연히 백내장 수술에서도 인공수정체를 넣고 일주일 정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인공적인 사물과 눈이 잘 결합되는지, 또 그 사이에 문제는 생기지 않는지가 핵심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이렇게 몸의 일부를 사물로 대체하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백내장 수술은 일년에 수십만건이 이루어지고 있고, 아마도 임플란트는 더 많을 겁니다. 이외에 사고나 노약자의 경우 다리나 척추에 철심 하나 없는 사람 없을 정도니까요. 사물 하나와의 관계도 이렇게 자신의 삶(생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준비하거나 충분한 신경을 쓰지 않는것 같기도 합니다. 삶이라는 것은 언제나 이런 사물과의 협력관계, 타자와의 협력관계에 빚지고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실제로 신체와 접촉하고 있는 인공수정체나 임플란트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대하는 사물들도 살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핸드폰이나 자동차의 경우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스스로를 변화시키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것 같으니까요. 신체의 확장, 정신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보면 자동차나 핸드폰은 현재 우리에게 더 없이 큰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눈에 넣는 인공수정체, 임플란트는 굉장히 신경을 쓰고 염증은 생기지 않는지 주의하고, 먹는것도 주의하는데 핸드폰과 자동차와 같은 (신체와 떨어져서 공존하는) 사물들에 대해서는 이런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즉 핸드폰, 자동차는 물론이고 의자, 휴지통, 펜, 책상, TV, 집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나를 생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

 

요즘 양평군에서 오프라인으로 '생태-여자-사물을 넘어 잡종으로 살기'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 이제는 정말 사물, 인간과 비인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 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한동안 치과와 안과에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또 이렇게 치료와 수술을 하다보니 다른 생각들이 많이 드네요.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은 인간 그리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된다는 것이 조금 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사물에 영이 있다는 하우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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