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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차라투스트라>를 낭독으로 다 읽은 후기

by 홍차영차 2024. 3. 4.

새벽낭독 6주차 16번째 시간에 538쪽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다 읽었습니다.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하루에 25쪽 전후로 20일은 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리내서 읽는 낭독이 속도 면에서도 느리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평균을 내보면 하루에 30쪽 이상을 읽었네요.

개인적으로는 5~6년 전부터 책을 읽을 때 소리내서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일주일에 삼일씩 새벽읽기를 하다보니 평소에서 소리내서 읽는 비율이 더 높아졌습니다.

우선 소리내서 책을 읽다보면 낭독이 아주 신체적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묵독이 대중화되기 이전까지 읽기가 고된 노동에 해당되었다는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하루 1시간정도이고 돌아가면서 읽다보니 실제적으로 소리내서 읽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시간이라도 소리내서 읽다보면 자세도 바르게 고쳐지고 뱃심으로 읽다보니 1시간이 지나면 내장 기관들과 몸 전체가 진동하면서 활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서 1시간 읽고 나면 배가 고파진다는. 실제로 30~1시간정도 소리내서 책을 읽으면 정신도 몸도 깨어나고 확실히 밥맛이 좋아집니다.

두번째로 없던 시간이 새로 생겨서 좋네요.

그리 늦게 잠을 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나갈 때가 많았습니다. 일어나서 정신차리고 뭔가 해볼까 하면 벌써 10시였는데, 새벽낭독을 하면 10시까지 2~3시간 한 타임정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책을 읽을 때도 많지만 저한테는 읽은 책들의 내용을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미라클모닝은 그냥 일어난다고 되지 않고, 일어나거 몸을 깨우는 활동이 필요한데 소리 내서 읽는 낭독은 새로운 루틴을 만들기 좋은 방법인듯합니다.

후기로 몇 번 적었지만 새벽낭독을 하면 자연스럽게 하루 리듬이 달라집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1시간 낭독으로 책을 읽으면 혼미했던 정신이 밝아지고 몸도 깨어납니다. 예상 외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루 활동시간으로 저녁 10시가 넘으면 잠이 옵니다. 건강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수면인데 자연스럽게 수면의 질이 올라갑니다. 물론 변화된 리듬을 맞추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체력을 위한 운동 필수!)

새벽낭독을 하면서 경험하고 싶었던 부분은 소리를 통한 신체적 느낌이었습니다.

눈으로 보면서 명확한 내용과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통해서 의미 너머의 신체적인 사유, 몸의 사유를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반 일리치가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말했던 사제들일 읽었던 방식인 거룩한 읽기(lectio divina)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고 할까.

최근들어 계속해서 지금 우리의 '정신의 공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또한 이전의 구술적 특성을 가졌던 사람들의 정신공간은 어떤지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낭독을 조금 더 신체적으로 경험하면서 어떤 느낌인지, 의식적 이해가 아닌 방식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거룩한 읽기(lectio divina)란 텍스트의 단어들을 눈으로만 경험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읽기는 수사적 읽기로도 불렸는데, 마치 포도밭을 걸으면 시렁 위에 있는 포도송이의 냄새를 맡고 그 송이들을 입으로 굴려보듯이 맛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제들에게 텍스트 위에 놓여져 있는 낱말들은 단순히 죽은 기호가 아니라 살아있는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었고 일종이 신적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러한 읽기는 12세기를 마지막으로 점점 사라지고, 현재와 같은 학자적 읽기가 나타났다는.

 

낭독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낭독을 하면서 의미의 이해, 즉 의식적 이해와 다른 일종의 무의식적 이해, 몸의 사유를 경험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네요. 신기한 것은 일어나서 정신이 아주 맑을 때보다는 차라리 혼미한 정신일 때 조금 다른 읽기를 경험하는 듯. (이는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묘사했던 그 모습들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

어쩌면 이렇게 낭독을 하면서 구술적 사고와 문자적 사고 사이에 심연이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내일부터는 <우상의 황혼>에 들어갑니다.이후에는 니체 텍스트 한 권 더, 이후에 루쉰, 마지막으로는 스피노자를 낭독해보고싶네요.

 

올해는 새벽낭독을 꾸준히 해보면서 실제 생활리듬이 바뀌는지 실험해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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