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크 라캉(1901~1981)!
정말 오랜만에 빠져드는 사상가를 만났다. 아직은 직접 그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점점 더 가까이 갈수록 어렵다기보다는 점점 더 매혹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들뢰즈(1925~1995)가 왜 그렇게 라캉을 언급했는지, 비판했는지도 알 것 같다. 또한 니체와 들뢰즈 사이에 비어있던 간극을 자크 라캉이 명쾌하게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니체에 의한 무의식의 발견, 이성(의식)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의 철학'으로 이어졌는지를 이해할 듯 하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또한 라캉은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외치면서 무의식에 대한 확실한 발판은 물론이고 무의식의 분석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만들었다.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라캉 역시 자유연상 기법을 이용하고, 오로지 언어화된 것을 통해서 분석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라캉과 정신의학>을 보면 '언어만'을 통한 분석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비언어적인 잉여에 대한 분석이다.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언제나 가면(persona)을 쓰고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분석이 불가능하다. 지난 한 주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말하면서 해방감을 느끼거나, 분석주체(환자)가 말하는 사건들의 인과적인 연계를 보는 방법과는 다르다. 어떻게 보면 라캉의 정신분석은 '정신분석실천'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다르게 표현해보자면 라캉의 정신분석은 아주 신체적이며, 음악적이다. 그럴수밖에 없다. <라캉과 정신의학>은 대부분 실제 정신분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실제적으로 이야기해준다. 왜 상담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매번마다 바꾸는 것이 좋은지,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말을 끊어야 하는지까지. 왜냐하면 정신분석은 '의식'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그의 '무의식적 주체'를 대면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캉의 정신분석은 '비언어적인 잉여'에 대한 분석이 되어야 한다.
문자화된 언어는 물론이고 구술된 언어 역시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알아 볼 수 있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그럴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가면으로 덮여진 언어를 통해서 어떻게 무의식의 주체와 마주칠 수 있을까? 갑자기 대화 주제를 바꾸거나, 아무생각없이 지나가면서 사소하게 언급했다고 말하는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의식의 표면을 뚫고 슬쩍 삐쳐나오는 언어들을 잘 알아차려야 한다. 음악적인 감각, 뉘앙스의 차이를 알아차려야 한다. 타자들을 의식하면서 혹은 자신의 의식을 의식하면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무의식적 충동들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라캉과 정신의학>을 보면 정신분석의 실천은 흡사 음악적 방식처럼 보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멈추어 긴장하게 하거나, 이제 마무리가 될 것 같은 순간에 다시 작은 변주를 통해서 다시 한번 연주하는 방식처럼.
이 책은 실제적인 정신분석의 기술만을 말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 라캉의 정신분석=정신분석실천과 다음없기에 라캉을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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