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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

상실의 기쁨

by 홍차영차 2023. 12. 27.

부탁할 것이 있어서 12월 초에 함께 공부했던 호수님을 만났다.

3년도 더 못본 것 같은데 보자마자 반가웠고 오랜만에 일상의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아마도 함께 밀도있게 공부하면서 나눴던 공통의 감각들이 신체에 새겨져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도 좋은 친구.

헤어질 때쯤 호수님이 책을 선물해주셨다.

함께 공부했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호수님은 번역작업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번역한 책을 선물로 주셨다. <상실의 기쁨> 이 책은 아마도 내 관심사와 좀 맞닿아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면서. 사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번역해서 출판사에 넘겼다는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2권의 책이 더 궁금하긴 했다. 어서 빨리 출판되서 나오기를 바란다.

선물받은 책이면 당연히 읽어야하겠지만 사실 다 읽지는 못한다. 의외로 선물받은 책들은 책꽂이 구석에서 머무를때가 많다. 워낙 내가 게으르기도 하고, 또 딱 그 당시의 관심사, 욕망과 이어져 있는 책을 읽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여전히 자아중심적 사고인것 같지만.

 

 

과거의 신경과학자들은 뇌 부위를 '시각피질', '청각 피질' 등으로 구분하기를 좋아했고, 순수하게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인 자극이 해당 부위를 활성화한다고 가정했지만 이제 갈수록 더 많은 신경과학자가 예전과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뇌의 구획을 전보다 덜 경직되게 설정하면서 뇌는 유연성이 큰 기관임을 인정한다. 어느 특정한 뇌 영역은 우리가 예전에 한정 지은 것과는 다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프랭크 브루니 <상실의 기쁨> 226쪽

'뇌의 가소성'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상실의 기쁨>은 우리 신체의 가소성, 마음의 유연성, 주어진 환경에 대한 적응성에 대해 긍적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뉴욕타임즈>에서 30여년간 칼럼니스트로 살아온 인물인데, 50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시력상실이라는 어려움에 처한다. 사실 이후부터의 내용은 예측가능하다. 자신의 겪은 시력상실의 경험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비슷하거나 좀 더 큰 신체적인 '상실'의 경험들을 긍적적으로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들!

<상실의 기쁨>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극복'의 경험을 정신의 승리로 몰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신체의 상실은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신체 능력으로 이어진다. 저자인 프랭크 브루니도 그랬지만 책에 언급된 많은 '상실자'들은 자기에게 일어난 신체적인 어려움은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독특성, 특별한 여정'으로 받아들였다.

시력을 잃게 되면서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듣게 되었다고 말하는 저자 자신을 비롯해서, 시각 장애인 건축가, 청각 장애인 작곡가와 같은 굉장히 모순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창의적인 면모를 전해준다. 이 부분에서 나는 '감각의 부활'이라는 주제가 생각났다. 특히 저자는 '시력 상실'을 경험했는데, 최근 나는 '시각 지배적 세계'로 변하면서 겪게 되는 '정신구조의 변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좀 더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뇌의 가소성', '신체의 유연성'이라는 측면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모든 존재는 완전하다'라는 이야기와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력을 잃은 사람은 시력 결핍자가 아니라 시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는 독특성을 갖고 있는 존재, 한 쪽 다리를 덜단해서 의족을 갖게 된 사람은 걷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 상태와 의족의 관계에 더 예민해진 사람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책의 논조는 무조건적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 스스로도 마지막에 이야기하듯이 신체의 새로운 능력을 얻는 것은 고통이 따르는 일이고, 적응했다 하더라도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상실의 기쁨>은 고통만이 상실만이 세계를 새롭게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신체적 상실 없이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없는건가? 일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각자의 고통과 상실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신체적 상실과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인 감정적인 고통 역시 상실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인식못하고 지나가고, 또 누군가는 직면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조금은 쉽게 이러한 과정을 겪는 방법이 있다. 바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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