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브레인>에 나오는 뇌과학의 사례들을 읽다보면 마치 현대의 뇌과학이 스피노자의 '복합개체', 니체의 '힘의지', 들뢰즈의 '리좀'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것처럼 읽힌다. 지난주에 본 3, 4장은 특히 니체가 이야기했던 '힘의지'나 '충동들'에 대한 뇌과학적 증명으도 봐도 무방할것 같다.
니체는 근대적 인간에 대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동을 있는 그대로 전달 수 없는 존재'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내릴때 기독교적 '영혼'처럼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내부의 충동들, 힘의지들이 서로 경쟁한다고 말한다. 이런 힘의지들이 매일 매일 경쟁하면서 전날에는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겠다고 결정했지만 다음날에는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따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뇌의 모든 뉴런 각각은 다른 뉴런들에 의해 조종되기 때문이다.
뇌 시스템의 어떤 부분도 독립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부분의 활동에 신뢰할 만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의 우회전 (또는 좌회전) 결정은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몇 초 전, 몇 분 전, 며칠 전, 심지어 지금까지의 삶 전체와 말이다.
자발적인 것처럽 보이는 결정들은 실은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이글먼 <더 브레인> 135쪽
뇌는 서로 경쟁하는 여러 연결망들로 이루어졌으며, 연결망 각각은 고유한 목표들과 욕망들을 가졌다.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말지 결정할 때, 당신의 뇌 속 일부 연결망들은 당 섭취를 원하는 반면,
다른 연결망들은 장기적인 몸매를 고려하여 반대표를 던진다.
또 다른 연결망들은 당신이 내일 체육관에 가기로 약속한다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
당신의 뇌는 경쟁하는 정당들로 구성된 의회와 비슷하다. ......
당신은 때때로 이기적으로 결정하고, 때로는 자비롭게, 때로는 충동적으로,
또 어떤 때는 장기적인 전망을 고려하면서 결정한다.
우리는 복잡한 존재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많은 욕망들로 이루어졌고, 그 모든 욕망들이 저마다 통제권을 쥐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더 브레인> 142쪽
니체의 '힘의지'가 무엇일까.
힘의지란 마치 뇌과학이 말하는 '뉴런들의 배열', 일정 패턴의 뉴런들의 연결망의 흥분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욕망(?)을 드러내는 각각의 '뉴런들의 연결망'들이 서로 경쟁하고 그 경쟁을 통해서 하나의 신체적 정동이 일어난다. 하나의 우리는 어떤 결정을 했을 때 그 이유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이런 결정이 일어난 내부적인 프로세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사실 대부분의 결정은 이런 신체 내부의 치열한 경쟁들을 통해서 일어나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나타난 현상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민트향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하는 (무의식적이고도 신체적인) 어떤 결정이 내부적으로 이뤄진 후, 즉 '민트향' 아이스크림에 대한 '뉴런들의 연결망'이 신체 내부적으로 우세해 진 이후에 우리들은 이성적인 이유들(reason)을 찾는다. '무의식적' 결정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의식적인' 이유들을 붙인다. 이런 이성적인 이야기들은 사후적으로 일어나는 욕망의 가면들에 불과하다. 또한 비언어적인 감각과 감응에 대한 언어적인, 의식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추가적으로 뇌과학에서는 의식의 결정이 오로지 '뇌' 속의 '뉴런 배열'들을 핵심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말하지만 스피노자나 니체 철학에서는 뇌뿐만 아니라 신체 전체적인 부분들의 흐름, 변화, 상태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단일한 뉴런이 독자적으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각각의 뉴런은 다른 뉴런 수천 개와 연결되어 있고, 그 뉴런들도 각각 다시 수천 개의 뉴런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뉴런들은 거대하고 복잡한 연결망을 이룬다.
연결망 속 뉴런들은 모두 서로를 흥분시키거나 억제하는 화학물질들을 방출한다.
이 연결망 속에서 특정한 뉴런들의 배열은 민트향을 대표한다. 이 패턴은 서로를 흥분시키는 뉴런들로 구성된다.
그 뉴런들이 꼭 인접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뉴런들은 후각, 미각, 시각, 그리고 민트 향에 관한 당신의 고유한 기억들을 담당하는,
서로 멀리 떨어진 뇌 구역들에 흩어져 있을 수도 있다.
......
일종의 선거 운동에 나서는 것은 이 뉴런들만이(민트향-관련-뉴런 배열들) 아니다.
다른 한편에서, 경쟁하는 선택지(레몬 향)도 고유한 뉴런 정당에 의해 대표된다.
양쪽 연합체(민트 향과 레몬 향) 각각은 자신의 활동을 강화하고 상대의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우위를 점하려고 애쓴다.
양쪽은 이 승자독식의 경쟁에서 한쪽이 승리할 때까지 경합한다. 승리하는 연결망이 당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더 브레인> 147~149쪽
또한 '하나의 뉴런이 독자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은 흡사 '스피노자의 복합개체'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그 개체를 특징짓는 마지막 원자 같은 것은 없다. 왜냐하면 스피노자에게 있어 어떤 개체도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라는 개체의 특징은 내부적으로 위, 심장, 허파, 쓸개, 대장과 같은 부분을 가지고 있고, 또한 심장과 허파는 그 부분으로 다양한 세포들로 이뤄져 있다. 놀라운 것은 인간이라는 개체가 그 개체로서의 특성을 갖는 것은 내적인 부분뿐 아니라 외적인 부분들도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즉, 인간이라는 개체는 언제나 내부적인 부분들뿐만 아니라 그 외부의 사물들, 환경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타자들의 영향들 속에서 구성되어가는 중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민트향'에 대한 뉴런들의 배열들이 오로지 후각에 관련된 뉴런들과 그 인접 부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트향을 맡으면서 흥분되는 뉴런들의 연결망은 후각관련 뉴런들뿐 아니라 미각, 시각, 청각, 촉각을 모두 포함한다. 물론 이러한 감각을 넘어서 어떤 다른 관념들 - 청량함, 순수함, 시원함 - 에 관련된 뉴런들의 배열들이 포함될 수도 있다.
스피노자에게 관념이란 항상 '무엇에 대한 관념'에 대한 관념이다. 그런데 스피노자에게 1차적으로 모든 관념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상상에 가깝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에 대한 관념은 그 대상의 본성과 함께 신체의 본성을 함께 함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대상, 예를 들어 책상 위에 있는 컵을 볼 때, 컵에 대한 관념은 컵 자체만의 본성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대한 본성들이 미시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컵 주변에 있던 스탠더, 연필, 검정 테이블, 그리고 그 순간의 온도, 습도, 압력까지. 이렇게 보면 '민트향'을 맡으면서 후각을 담당하는 영역 이외의 뉴런들의 배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쉽게 이해된다. 즉 우리는 빨간색 스포츠카라는 관념 속에 그 차 옆에 있던 섹시한 여성모델을 떠올린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스포츠카를 보게될 때 그 옆에 있는 여성모델들이 함께 감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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