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향과 종이신문
…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오게 하셨다. …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86쪽
… 이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 두 번째 모금을 마셨다. 첫 번째 모금이 가져다준 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세 번째 모금은 두 번째보다 못했다. 멈춰야 할 때다. 차의 효력이 줄어든 것 같았다. 내가 찾는 진실은 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지금은 이 증언을 해석할 줄 모르나 나중에 …
매번 정신은 스스로를 넘어서는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심각한 불안감을 느낀다.
… 나는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아무런 논리적 증거도 대지 못하지만 … 87쪽
여름이라서 모기향을 피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 향기를 맡고 싶어서 모기향을 피울 때가 더 많다. 물론, 벌레를 퇴치하겠다는 아주 합리적인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모기향을 맡을 때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몸에도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모기향이 좋을까?
생각해보니, 불을 붙여서 피우는 모기향을 맡을 때마다 아주 어릴 적 생각이 내 몸 속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서 그런 것 같다. 이제 40년도 넘는 아주 오래된 기억이 되었는데, 모기향을 맡을 때 그 기억이 마치 마르셀이 홍차와 함께 마들렌을 먹으면서 떠올렸던 기억처럼 떠오르는 것 같다. 신기하다.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모기향을 피웠던 그 때가 좋다고 생각했던 적도 없다.
우리 집은 2남 2녀다. 유치원 전까지 할머니도 함께 살았다. 7명의 가족들이 함께 살았던 40년 전후를 떠올려보면, 한 방에 4~5명이 함께 잠을 잤다. 여름이면 모기를 피하기 위해서, 잠자기 전마다 모기장을 치고, 모기향을 피우면서 함께 잠을 잤다. 허물어져 가던 집, 푸세식 화장실이었고, 물을 데워서 목욕했고, 우물(?)과 수도를 함께 가졌던 수돗가!
막내였기에 그 시절에는 매번 불평이 많았던 것 같다. 내 방을 갖게 된 것은 서른이 되어서였고, 이전까지는 형 혹은 누나와 함께 지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프루스트를 읽기 전에는 그 시절이 그저 그런 시절, 누구나 겪는 평범한 시절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우울한 과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에도 자기 방을 갖고, 시계와 좋은 학용품을 가졌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아파트 생활을 떠나서 주택에서 살아가면서 모기향을 피우니 기억이 새롭게 찾아왔다. 이게 바로 프루스트가 말한 '되찾은 시간'인가.
생각해 보니, 이상하게 좋아하는 향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석유 냄새다. 그것도 종이 신문에서 나오는 석유 냄새! 누구는 회충이 있어서 그런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신문에서 나는 석유냄새를 맡을 때마다 뭔가 세상이 프레쉬하게 보인다.
이건 40년 전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가능하다. 인터넷이 있기 전에는 거의 모든 집에서 신문을 봤고, 매일 아침 집 앞에 놓여 있는 신물을 보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물론, 어렸던 내가 본 신문 내용이라곤 TV편성표였지만. 세로줄에, 한문으로 되어서 읽을 수도 없었던 신문인데, 그 시절의 기억이 신문냄새로 몸 속에 저장되었던 것 같다.
행복이란 뭔가 멋진 어떤 것을 이룰 때, 먹을 때, 할 때가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그것을 다시 몸 속에서 생성할 수 있을 때인 것 같다. 그리고 프루스트가 적어 놓은 것은 결코 프루트스에게만 유효한 것 같지 않다. 프루스트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동생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신체가 아니라 마음을 치유해주는 의사! 프루스트는 나에게 어떤 의사보더 더 좋은 의사인 것 같다. 볼때마다, 읽을 때마다 치유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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