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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읽기

프루스트의 글쓰기와 예술작품들

by 홍차영차 2022. 1. 12.

 

프루스트의 글쓰기와 예술작품  -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게르망트쪽', <프루스트의 화가들> 3장

 

*앙투안 바토(1684~1721) <무관심>, <어린 소녀>

 

 

'게르망트 쪽' 초반부를 읽어내려가다보면 프루스트의 소설은 마치 유럽 전체의 근현대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로 수많은 사건들, 전쟁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정치적 사건들과 인물들이 나온다. 프루스트의 광범위한 묘사는 사회, 정치적 사건에만 머물지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자체가 하나의 '예술비평'에 관한 책이 아닌가 할 정도로 많은 예술작품들에 대한 비평과 묘사들이 들어가 있다. 수많은 그림들은 물론이고, 음악 작품에 대한 너무나 세세한 그래서 지루하게 읽히는 비평들이 녹아들어 있다. 물론, 건물과 장소, 자연에 대한 풍부한 감정들은 또 다른 이야기다.

 

이렇게 500명의 이름들이 나열되고, 수많은 사건들이 나오며, 알지도 못했던 그림과 음악들을 가지고 비유를 마주치게 될 때는, 프루스트의 책 읽기를 포기하기 싶어진다. 또한, 이미 그려진 그림과 음악들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은 이미 '닫혀버린' 이미지에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제한'하게 되는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비유라도, 특히 직유의 묘사를 보게 되면 그 비유 이상으로 상상력을 확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좋은 비유에 갖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프루스트는 왜 이렇게나 많은 예술품들을 자신의 글에 열거해야만 했을까?

 

먼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점을 생각해 보자. 프루스트는 점점 더 문자화되어가는 세상, 이성과 합리로 점점 더 추상화, 일반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버려지고 배제된 수많은 잉여들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데, 프루스트는 이것을 아무런 논리도 없는 정말  단순한 정념적 글쓰기로 통해서 말하지 않는다. 프루스트는 일필휘지로 정념에 휩싸여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쓰고 고치고, 또 쓰고 고치는 정말 성실한 작가였다. 프루스트는 아주 세심하게 관찰자였으며,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미세한 분위기와 태도, 뉘앙스를 너무나 잘 잡아내는 사람이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프루스트 글쓰기의 특징이 만들어진다. 프루스트는 자신의 신체적 특성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독특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 점을 글쓰기를 통해 표현하려고 했다.

 

프루스트 시대의 작가들은 과학적, 이성적, 합리적 글쓰기를 추구했다. 당시의 치밀한 플롯을 자랑하는 탐정소설 혹은 범죄소설이 그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프루스트는 문자 밑에 깔려 있는 것, 문자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는 몸적 사유(감성적 논리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프루스트가 전하려는 '몸의 사유'를 우리 신체에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너무 오랜 가뭄에 비틀어져버린 나무처럼, 우리는 과학적, 이성적, 통계적인 논리에 메말라버렸을 뿐이다. 프루스트는 문자에 갇히지 않으면서 자신이 느끼는 풍부한 감정들을 문자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싶었다. 프루스트의 논리란 과학적 논리, 이성적 논리가 아닌 '감성의 논리' 혹은 '비-논리적 합리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과학적 논리만을 합리적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우리 몸은 전혀 다른 방식의 논리성으로 설득당하고, 설득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프루스트는 정서적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결코 정념에 휩싸여서 마구잡이로 글을 쓰지 않았다.

 

프루스트의 글쓰기에서 그토록 많은 양을 할애해서 음악을 묘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음악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뱅퇘유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몇 페이지에 걸쳐서 묘사하는 이유이다. 프루스트는 사랑하면서 경험하게되는 다양한 정서들, 그 풍부함을 문자 속에 가둬두기 보다는, 전혀 상상할 수 없고, 절대 문자로 포획할 수 없는 음악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문자로 잡히지 않는 음악과 그림은 프루스트의 글쓰기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더 확장하고 넓혀준다. 프루스트의 글쓰기와 뱅퇴유의 음악, 엘스티르의 그림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처럼 점점 더 확장되고 풍부해진다. 새로운 해석이 거울에 비춰지고, 다시 또 들어보고 살펴보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점점 더 넓어지고 무한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게르망트 쪽'에서 나오는 바토의 그림들을 보면, 프루스트가 느꼈을 그 감정들이 문자를 통하지 않고 나에게 전달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동시에르에서 만났던 친근한 생루와 동시에르를 떠나면서 느꼈던 그의 생경하고도 낯선 모습은 바토의 그림 <무관심>과 <어린소녀>를 통해서 더 강렬하게 새겨진다. 스완과 오데트에서 오데트가 여기에 나온 무관심한 소년과 반대편의 어린 소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것도 놀랍다. 또한 '무관심indifferent'라는 말이 18세기에는 '동성애'로 통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좀 더 프루스트의 생각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르셀이 귀족 사교계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유럽 처럼 귀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살롱이나 사교문화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바토가 그려놓은 그림 <키테라 섬의 순례>를 자세히 보다보면 마르셀의 시선이, 그가 귀족들을 바라보았던 그 시선이 보이는 듯 하다. 사랑의 신이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신전이 있다는 '키테라 섬'과 이 섬에서 돌아가는 것인지 이제 순례를 하는 것인지 모를 인물들의 묘사들. 하나의 문자로는 절대 가두어 놓을 수 없는 수많은 상상들이 프루스트와 바토의 그림을 통해서 상호 교환되고 배가 된다. 인간 마르셀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신들의 세계 그것도 누구나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랑의 여신이 있는 그곳이 바로 게르망트라는 이름에 녹여져 있었던 듯 하다.

 

이렇게 살펴본다면 프루스트의 글에 나오는 너무 많은 음악들, 그림들, 건축물들, 사건들은 장애물이 아니라 발굴해야 하는 보물이 되지 않을까. 모로와 마네는 조금 더 읽어보면서 살펴보면 좋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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