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말러 교향곡과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에 대해서 메모를 적었던 적이 있어요.
https://lifecuration.tistory.com/459
그런데, 이번에 프루스트를 계속 읽다보니 말러의 교향곡들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들뢰즈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 프루스트 <잃어버린...>이라는 걸 생각하면 말러-프루스트-들뢰즈의 연결고리가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에 두 사람의 생년월일을 찾아보며서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프루스트는 파리 코뮌이 있었던 1871년에 태어나서 1922년에 죽었는데, 말러(1860~1911)는 그보다 11년 전에 태어나서 같은 51년의 생애를 보내고 죽었습니다.
비슷한 시대에 태어나고 똑같은 기간의 생애를 살았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말러의 교향곡과 프루스트의 작품이 갖는 특이성입니다. 둘 다 근대적 합리성과 이성적 방식으로 작품을 쓰지 않았어요. 의식 이전의 것, 이성과 대립되고 배제되었던 감성을 작품 속 깊이 끌어왔습니다. 프루스트가 '의식의 흐름' 기법을 문학에서 보여줬다고 하면, (살짝 과장해서) 말러는 교향곡을 이런 방식으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습니다. (과언이 아닐까??? -.-;;;;;)
말러 역시 각 악장에서 어느 외형적 형식을 보여주고는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형식과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주제, 화음, 전조를 이성적, 논리적 단계적으로 구성하면서 설득하기보다는 감성적으로 변화시켰고, 내용면에서도 자신의 먼저 썼던 가곡, 동요, 그리고 캬바레에서나 들리던 노래들을 교향곡의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길이 면에서도 말러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프루스트가 4000페이지의 작품을 써냈다면, 모차르트 시절 20~30분에 정도였던 교향곡이 말러에 와서는 1시간 혹은 1시간30분 정도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예전에 말러를 들으면서는 '왜 이렇게까지 길게 작품을 썼을까' 생각했는데,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말러가 조금 더 이해되었습니다. 말러 역시 감성의 흐름을 조금 더 세세히 표현하고 보여주면서, 우리의 세계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차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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