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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선물과증여

생태원리로서의 증여, 그리고 탈자아 구성 방식으로의 증여

by 홍차영차 2021. 2. 1.

<증여론> 2장 메모 단상

 

생태 원리로서 증여

 

 

“쿨라는 그 기본적인 형태에서는 사실 트로브리안드 도민들의 경제생활과 비종교적인 생활 전체를 포괄하는 것처럼 보이는 급부와 반대급부의 광대한 체계 중에서 가장 엄숙한 한 순간에 불과하다.”(114쪽) “그러나 트로브리안드 섬의 ‘쿨라’가 선물교환의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로, 포틀래치도 북서부 아메리카 연안 사회에서는 선물제도의 일종의 기형적인 산물에 불과하다.”(165쪽)

 

우발라쿠Uvalaku 대항해원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술들과 학문의 발전이 필요했을 것이다. 수백킬로미터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수년동안 꼬박 대형 배를 만드는 것에만 종사하는 무리들이 있었을 것이고(화학/물리/항해술), 또한 안전하게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기술(천문학)은 필수적이었으면 정확한 시기에 도착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시간/공간(지도)). 즉, 한 순간에 일어나는 대형축제이자 교역처럼 보이는 우발라쿠 대항해는 그 사회 전체의 작동 원리를 품고 있으며, 증여의 작동원리는 대항해가 이뤄지는 기간뿐만 아니라 매 순간 순간 개개인의 삶 속에 녹아들어가 있어야 가능하다.

우발라쿠가 단순한 대형축제가 아니였고, 증여 사회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2021년 우리나라 혹은 전세계의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소비되는 곳은 어디일까? 자본주의의 정점을 보여주지만 잘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우주(산업)’가 아닐까. 우주에 대한 동경, 우주로 나갈 수 있다는 인간의 욕망, 이러한 욕망을 동력으로 매해 수천조 이상의 예상과 인력들이 ‘우주’라는 허상(?)에 붙들려 있는 것 같다. ‘우주’라는 말 한 마디에 모두의 입이 닫히고, 모든 것의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주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욱 근접하게 해주기보다 서로의 관계를 더욱 더 단절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 같다.

우주가 아니라 내가 밟고 살아가는 땅에 관심을 다시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지구에, 땅에, 환경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쓰레기를 줄이는 문제를 포함하여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듯하다.

 

 

탈자아 구성방식으로의 증여

 

 

현상만으로 보면 쿨라kula와 포틀래치potlatch는 모두 물건과 영혼이 섞이고, 영혼과 영혼, 물건과 물건이 섞이는 과정이자 생성으로 보인다. 섬과 섬 사이에 증여, 포족과 포족 사이의 증여, 부족과 부족, 가족과 가족 그리고 개인간의 선물들은 지금의 상품교환이 아닌 지속적인 섞고 섞이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었던 것 같다. (상품교환 역시 증여가 구성하는 것과 다른 원리-생활방식을 구성한다!)

지속해서 돌아가는 음왈리와 술라바를 누구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분명 잠시동안 내가 갖고 있다는 소유권(이라기보다 점유권)을 갖는다. 하지만 분명하게 어느 시기를 지나면 내 손을 떠나야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포틀래치의 경쟁에서 주고 받으면 점점 더 늘어나는 담요 또한 내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식상한 말이지만 태고적부터 있었던 땅을 내것이라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구의 것도 아니자만 분명하게 점유되고 이동하는 물건들. 또한 부족들은 물건 또한 힘이 있고 말을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물건이 옮겨가면서 나의 영혼과 물건의 영혼(지난 점유자의 영혼에 영향을 받은)은 섞이면서 영향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다. 과연 내가 어떤 생각을 떠올렸을 때, ‘나만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 모두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탈근대시대라고 말하지만 나는 아직 근대 속 전형적인 인간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관계성, 단독자로서의 개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끈끈하지도 않은 관계성은 비자발적이지만 의무적인 ‘증여’의 새로운 형태를 내가 발명하고 실행하느냐의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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