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사회적 사실’로서의 증여는 ‘파편적 개인적 사회’에서도 작동할 수 있을까
: <증여론> 1장 메모
* <증여론>에 대한 기본적 이야기는 이전 글들을 참조.
<증여론> 서문에서 모스는 자신의 연구가 ‘선물에 답례해야 하는 의무’에 대한 탐사임을 명확히 밝힌다. 그리고 물건의 영이라는 하우hau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런데 모스가 하우를 찾아낸 것은 태고사회의 규범에서가 아니다. 그들이 물건을 주고 받는 형태form/formation를 통해서였다.
형태가 중요하다. 축구를 생각해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어떤 형태(442, 431, 4141)를 구사하느냐에 따라 그 팀의 축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있다. 축구에서도 포메이션(형태)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유연하게 변화하면서 지속적으로 형태를 유지한다. 이 형태가 각자의 팀이 보여주는 ‘총체적 사회적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대 축구는 형태가 많이 바뀌었다. 토탈축구 방식으로 전체가 수비를 하고 전체가 공격을 한다. 이제 수비수도 공격할 때가 많아졌고, 공격수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한다. 전체적인 형태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반대로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긴밀한 소통이 중요해졌다.
현재의 경제와 법에 선행하는 그것들에서, 개인 상호간에 행해지는 거래를 통한 재화, 부(富) 그리고 생산물의 이른바 단순한 교환이 확인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우선, 서로 의무를 지고 교환하며 계약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 (52쪽)
Q1. 태고 사회에서 ‘집단이 아닌 개인이 교환하며 계약’하는 것은 확인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의 ‘교환과 계약’은 반대로 개인들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또한, 이러한 계약들은 ‘총체적 사회적 사실’로서 작동하기보다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총체적 사회가 아닌 파편적 개인사회에서 ‘증여’는 작동할 수 있을까?
현대 축구는 개개인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지만 반대로, 선수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무시해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스 역시 분명히 이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사회의 구성은 뒤르켐이 말했던 사회-개인을 주체-객체로 보는 방식이 아니라 결국은 개인들간의 주고받고답례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Q2. 독특한 개인의 특유성을 인정하고, 코로나19를 일상으로 여기면서 서로간의 주고받고답례하는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는 포메이션은 어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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