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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매끄러운 공간과 홈 패인 공간

by 홍차영차 2019. 11. 4.


이질적인 것으로 구성된 매끄러운 공간

: <천 개의 고원> 14 고원


우리는 앞에서 이미 매끈한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행동”과 홈이 패인 공간에서의 “일”을 구별한 바 있다. …… 모든 활동에 ‘일’ 모델을 강요하는 것, 모든 활동을 가능한 또는 잠재적인 노동으로 번역하는 것, 자유로운 행동을 규율하는 것, 또는 (결국은 같은 것이지만) 자유로운 행동을 노동과 관련해서만 존재하는 “여가”로서 간주하는 것, 이리하여 우리는 물질학과 사회학이라는 두 측면에서 ‘일’ 모델이 근본적으로 국가 장치의 일부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천 개의 고원>, 934쪽)





<천 개의 고원> 마지막에 도달했는데, 개념들은 여전히 아리송하다. 사실상 마지막 장인 14고원에서 소개하는 매끄러운 공간과 홈 패인 공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가는 여기에서 기술 모델, 음악 모델, 바다 모델, 수학 모델, 물리학 모델, 미학 모델 등의 6가지의 모델을 가지고 매끄러운 공간과 홈 패인 공간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6가지 모델들을 보여주면서 강조하는 단어는 동질성과 이질성, 중심과 편재다. ‘매끄러운 공간’이라고 하면 동질한 것으로 조직된 공간을 떠올리기 쉬운데, 들뢰즈/가타리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정반대다. 매끄러운 공간은 결코 동질성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질성들로 채워지면서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다.

들/가는 물리학 모델에서 이 두 공간과 연결지어서 “자유로운 행동”과 “일”을 구별한다. 앞서 13고원에서 국가 장치 속에서 국민들이 ‘절단된 채로’, ‘불구’로 태어난다고 말했다. 모두가 불구인 상태로 태어나야 국가 장치가 제공해주는 제도와 규칙들에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홈 패인 공간에서 열심히 “일”을 해야 자유로운 “여가”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여가는 “일”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일”을 하지 않을 짧은 자유이다.

그렇다면 매끄러운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행동”이란 어떤 것일까? 이질적인 구성들로 이뤄지는 “일”을 구성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점점 더 사라지고는 있지만, 대기업부터 작은 가게들이 요구하는 ‘일자리’ 조건을 거의 대동소이하다. 젊은 나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으나 어디서나 요구하는 영어 성적, 정말 그 일을 할 수 있는지와 상관없는 자격증, 그 일의 적성과 전혀 상관없는 성별의 요구 등등. 매끄러운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행동”이란 결국 동질성으로 홈 패인 공간을 이질적이고 다양한 것들을 그 특이성들을 인정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주 5일 나오는 사람부터 일주일에 한 나절만 일하는 사람, 정장을 입고 싶은 사람부터 청바지에 나시를 입고 일하는 사람, 회사보다 집이 편한 사람, 정리하기를 잘 하는 사람,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사람, 홀로 일하는 것이 편한 사람 등.

다른-퇴근길-되기도 역시 이런 이질성의 집합을 잘 구성해내는 능력이 아닐까?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을 하고 있는가 하지 않는가, 돈을 받고 있는가 아닌가에 관계 없이 각자의 특이성들을 잘 드러내면서도 서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술. 스피노자의 언어로 말해보자면, 정념적인 인간들로 구성된 이성적인 공동체 구성하기가 바로 되기devenir인 것 같다. 물론, 일에서 자유로운 행동으로, 자유로운 행동에서 일로의 섞임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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