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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사유는 자유롭지 않다

by 홍차영차 2019. 10. 20.


사유는 자유롭다, 아니 사유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

: <천 개의 고원> 12 고원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의 최소 영역은 ‘생각의 자유’다. ‘몸은 감옥에 갖혔지만, 정신을 가둘수는 없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민주주의의 실행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생각과 표현의 자유’라고 말한다. 그런데 들뢰즈/가타리는 전쟁기계에 대해 소개하면서 우리의 사유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우리의 사유 형식은 국가 모델에 종속되어 있다는 깜짝놀랄만한 이야기를 전한다.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들뢰즈/가타리가 비판하는 것은 사유의 내용이 아니다. 어떤 내용을 사유하는지의 자유는 언제라도 가능하고, 그 내용이 너무나 체제 순응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사유하는 방식, ‘사유 형식’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성애에 대해서 말한다거나, 공산주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두려웠던 시대가 있었다. 그 내용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체제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가는 여기서 사유 형식 자체에 대한 비판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유 형식은 국가 모델을 따르는, 즉 현재의 국가를 존속시키고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으로만 사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정규 교과 과정을 넘어서는 주제, 그것들을 횡단하는 사유를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우리의 사유 이미지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형식이 사유 이미지에 영감을 불어넣으면서 모든 것이 고정되는데, 만약 국가-형식이 바뀐다면 사유의 이미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사유 형식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들뢰즈/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역사’를 다루지만 결코 ‘역사적(연대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즉 그들은 역사를 다루면서 ‘시간’에서 ‘역사’로 넘어간 국가 모델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존 역사학자들처럼 역사의 정당성과 역사적 정체성에 기대서 말하지 않고, 이전의 시간-역사와 다른 역사 해석을 시도한다. 그들만의 새로운 사유 형식으로 사유한다. 수목적 사유가 아닌 리좀형 사유! 들뢰즈/가타리는 그들 스스로가 말했던 것처럼 니체나 키에르케고르처럼, 기존의 사유의 이미지를 파괴하는 “사적 사유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유 형식과 국가는 서로 기대면서 존재해왔다. “국가는 사유에 ‘내부성의 형식’을 부여하고, 다시 사유는 이 내부성에 보편성의 형식을 부여한다.”(<천개의 고원>, 720쪽) 그렇기 때문에 오직 사유만이 국가란 원래부터 있어왔으며, 보편적이면, 합당한 것이라는 허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신화mythos와 로고스logos를 고안해낼 수 있는 도구이자 무기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철학은 중세 시대에 종교의 시녀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근대 국가의 성립 이후에는 “항상 기존 권력을 찬양하고, 국가의 여러 기구의 원리”를 다양한 국가 장치에 전사하는데 복무해왔다.


한 마디로, 들뢰즈/가타리는 내가 태어나서 말하고 교육받고 생각했던 형식들이 사실은 국가-모델에 붙잡혀 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살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배제될 뿐 아니라, 죄인으로, 악으로 여겨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면 막막함에 도망쳐버리고 싶을 뿐이다. 과연 나는 기존의 사유 형식에 대항하는 -사유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언어를 관리하지 않고 모국에 속에서 이방인이 되어 말 자체를 자신에게 꿰어 맞추고는 떼어내 “뭔가 전혀 불가해한 것을 만들” 필요성. 바로 이것이 외부성의 형식, 오누이 관계, 사유자의 여성-되기, 여성의 사유-되기이다. 통제되기를 거부하는 바로 이러한 감정이 전쟁 기계를 형성한다.”(726쪽)


“모국어 속에서 이방인”이 되어 길을 잃고 헤맬 수 있어야 한다. 너무나도 익숙해져 말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아무런 감응affectus를 전달하지 못하는 모국어를 낯설게 바라보자. “주체-사유가 아니라 사건-사유”, 그 구체적인 상황과 문제 속에서 사유하는 방식으로. 보편적인 사유 주체를 요구하지 말고, 그 사람, 그 사람, 그 바람, 그 책, ‘이것임’으로 사유하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출발할 수 있다. 사유는 기존의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이자 창조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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