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들뢰즈

절단된 사지를 되찾을 수 있을까

by 홍차영차 2019. 10. 27.

 

절단된 사지를 되찾을 수 있을까 

: 들뢰즈/가타리, <천 개의 고원> 13 고원

 

“인류가 태초부터 전쟁을 해 왔다지만, <일리아스>에 관한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보아도 팔과 다리를 없애버리는 예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 일종의 원근법적 착시 때문에 우리는 절단에 의한 이러한 불구를 우연한 사고 탓으로 돌린다.” …… 사회의 최상층이든 아니면 최하층이든 처음부터 선천적인 신체 장애자, 수족이 절단된 사람, 사산아, 선천적으로 허약한 사람, 외눈과 외팔이 등을 필요로 하는 것은 국가 장치이다. (<천 개의 고원>, 819쪽)

 

‘인간이 불구로 태어나도록’ 하는 사회에서 절단된 사지를 되찾을 수 있을까? 질문에 앞서 확인되는 놀라운 사실은 ‘국가 장치’ 속에서는 그 누구도 ‘절단된 사지’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외눈박이만 있는 사회에서 두 눈을 가진 사람이 괴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가 장치를 구성하는 하나의 극인 마법사-황제는 매듭, 망과 같은 “일망 타진”의 방식으로 전쟁기계를 포섭한다. 하지만 마법사-황제만으로는 국가가 형성될 수 없다. 지속성이 부족하다. 매혹의 방식이 순간 순간 발휘되긴 하지만 이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국가 장치의 다른 극인 판관-왕이 필요하다. 판관-왕은 이렇게 포섭된 전쟁 기계와 함께 법과 규칙을 만든어낸다. 전쟁 기계를 전유하여 제도화하고, 이제 전쟁 기계는 국가 장치의 지속을 위해 작동한다.

마법사-황제, 판관-왕이 국가의 두 극이라고 하지만 실상 국가 장치를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것은 ‘국민’이라는 새로운 존재이다. (물론, 국가에서 국민은 불쏘시개로 사용되겠지만. 혹시 모른다. 점점 커진 불이 국가를 삼켜버릴수도 있다.) 처음에는 사지를 뜯겨서 불구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정상(?) 작동하는 국가 속에서 이제 ‘국민’은 태어나면서부터 불구이다. 불구는 전쟁의 결과였을지 모르지만, 국가 장치와 자본주의 노동체제 속에서 불구/좀비는 하나의 조건, 전제 조건이다. 국가 장치 속에서 불구로 태어난 ‘국민’은 태어날 때부터 충분히 불구가 되어 있기에, 자본주의의 중요한 장치라고 할 수 있는 학교, 국가, 군대, 회사 속에 적응하는 것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국가 장치 속 국민들은 도리어 서로 경쟁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더 뛰어난 불구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지금 국가 장치는 사람들을 불구로 만들어내는데 성공적인 것 같다.

그런데 이미 잘려나간 사지를 되찾는 것이 가능하긴할까? 그것도 자본주의 공리계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 같다. 이는 시골-도시,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자본화된 상황 속에서 농업경제로, 자연인으로 살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불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 서로 “결합 접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역이용하면서, 서로 서로가 “연결접속”될 수 있는 배치로 나가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어디에나 작동하는 공리계라는 것을 한계나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해도 좋다는 역발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 있는 위치와 역할로부터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리에서 다른 배치를 만들고 낯선 것들과의 횡단을 시도하는 것. ‘회사의 목표는 이익’이라는 배치 속에서 우정과 신뢰를 실험하고, ‘학생의 본분은 배움’이라는 체제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어보고, 부모와 자식의 배치를 바꾸어 보기.

 

 

 

 

좀비가 된 세상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산으로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 되겠지만, 좀비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살아갈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무서울 것 같은 좀비가 다양한 영화를 통해 이제 좀 익숙해지지 않았나? 어찌보면 좀비는 기다리고-떨어지고-피를 빠는 진드기와 비슷할만큼 단순하다. 소리에 민감하지만 빠르지 않으며 도구를 사용하지는 못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피’뿐이다. 그들을 없애려면 팔 다리가 아니라 머리를 박살내야 한다. 좀비의 특성을 파악하다보니 이제 좀 탈출구가 보이는 것 같지 않은가?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