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좋은 사람
키워드 : 책상과 일상, 수동적 긴장 - 부드러운 수동성, 나와 나 아닌 것이 서로 겹치고 헤어지는 리듬, 글에 생명은 부여하는 일 - 글에 자신의 목숨을 의탁하는 일, 낯설게 하기, 몸이 좋은 사람, 계몽된 무지
공부가 몸의 문제라는 말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몸이 좋은 사람이 되는 공부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조용하다. 이는 그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단순하여 말할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하다는 것은 기본basic을 말하지만, 이는 결코 쉽다는 뜻이 아니다. 테니스를 배울 때의 일이다. 처음 배운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포핸드 스트로크였다. 3개월 내내 거의 포핸드만 치다보니, 제법 공을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코치는 이어서 서브, 백핸드, 발리, 슬라이스 등 다양한 기술을 가르쳤다. 하지만 코치는 다른 기술을 가르치면서도 항상 포핸드 연습부터 레슨을 시작했다. 포핸드-서브, 포핸드-발리, 포핸드-슬라이스와 같은 형태의 반복된 연습. 사실 테니스 시합을 하려면 다른 기술들을 익히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승부가 갈라지는 것은 항상 가장 기본이 되는 포핸드 스트로크였다. 이렇게 2년 정도 습관처럼 연습하다보니, 포핸드 스트로크를 어떻게 치는지 알 수 있었다.
기본basic이라는 것은 단순하다는 뜻이지만 또한 가장 핵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본을 몸에 익히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벌써 몸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구조를 표현하기 어렵다. 매일 매일 실제로 공을 치면서 그 감을 익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코치가 있더라도 실전에서 공과 부딪쳐보는 경험이 없다면 헛것일 뿐이다. 어쩌면 좋은 기술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을 끊임없이 따라해보는 것이다.
어찌보면 공부의 문제가 몸으로 귀결되는 것은 당연하다. 공부란 삶을 구성하는 작업이고, 삶이란 결국 반복된 몸의 행동으로 드러난 인문(人紋), 사람의 무늬이기 때문이다. 몸에서 미끄러지기 십상인 “생각이나 기원, 작심이나 반성”만으로는 무늬가 새겨지지 않는다. 또한 내 몸을 “이기주의의 텃밭”으로 삼으면서 내것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의 메커니즘을 알아가는 촉수”라 삼아 두렵지만 떨림으로 부딪혀야한다. 그렇기에 공부를 몸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왜라는 질문이 아니라 “아찔한 타자”를 몸으로 부딪혀 보는 시간이다. 모르면서 (따라)하고, 알면서 모른체하기가 필요하다.
몸의 공부에서는 “무리한 정면 승부”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한 번에 때려잡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모한 접전을 피하고 시간의 지혜와 전술”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인문은 항상 시간의 공부이고, 공부study란 그 자리에 오래long 머무는stay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혼자 가는 길은 빠르지만, 멀리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한다는 말을 기억하자. 공부에서 친구를 빼 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김영민 역시 ‘동무란 몸이 좋은 사람들의 연대’라고 말했다. 연대 없이 ‘몸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공부하는 사람이 ‘위험한 인물’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움직이면 움직이는대로 주변과 연대하고 활동을 만들어내는 사람.
획! 함께 “몸이 곧 칼”이 되고, “몸이 곧 펜이 되는 진경”을 만들어 보고 싶다.
201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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