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은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가 살아온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을 ‘읽는 인간’으로 정의한다. 평생동안 책을 읽어 왔고, 그렇게 읽어온 책에 영향을 받고, 쓰고, 살아왔다고. ‘읽는 인간’이라는 말은 이반 일리치가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이야기한 수행으로서의 읽기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중세에서 읽기란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에서 끝나지 않았다. 읽는 행위는 삶의 전체를 지배하는 하나의 윤리로서 작동했다. 공동체적 읽기는 아니지만 오에 겐자부로 읽기는 자신의 삶을 정초하는 방식이었다. 자신을 발견하고, 실험하는 방법으로서의 읽기.
물론, 오에 겐자부로에게 ‘읽는다는 것’은 정보의 획득이 아니다. 읽는다는 것은 다양한 삶의 태도를 발견하는 것이고 결국 무언가를 쓰는 것이다. 그에게 쓴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표현방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고 하나의 스타일style이다. 스타일을 구축하는 일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읽고, 다시 읽고, 단순 반복을 통해서 의미를 구축해내야 한다.
그는 독서의 방법으로 재독rereading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나의 책을 읽고 또 읽는 것. 재독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번역서일 경우 그는 먼저 일본어 번역을 읽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원어를 읽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읽은 책을 원서로 다시 읽으면서 감명 깊었던 부분을 스스로 번역하며 읽기를 추천한다. 번역과 역번역의 과정! <무지한 스승>의 자크 랑시에르가 말했던 소통이란 ‘번역과 역번역’이란 말이 떠오른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가 혼신의 노력을 통해서 번역해낸 텍스트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번역해내는 작업이다. 자신이 역번역해 낸 그 텍스트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 역시 다시 번역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읽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읽은 것을 번역해내는 과정을 거야 한다. 읽기와 쓰기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계속된는 순환 속에 있어야 한다.
재독을 넘어서 오에 겐자부로는 ‘지독한 읽기’를 세 가지 스텝으로 말한다. 배우기, 외우기, 깨닫기! 여기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외우기이다. 오에가 말하는 외우기를 단순한 암기로 여겨서는 안 된다. 암기는 암송이 아니다. 소리 없이 정보로만 기억되는 것, 그것이 암기다. 암송과 낭독은 근대 교육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배움의 방식이지만, 역으로 수천년의 인류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교육 방법이었다. 고미숙의 <호모 큐라스>에서 말하는 낭송을 떠올려보자. 낭송은 머릿 속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소리 내어 읽을 때 만들어진다. 낭송은 텍스트가 몸에 새겨졌을 때 가능하다. 몸에 기억되는 텍스트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소리로서 몸, 뼈에 기억된다. 몸에 새겨진 소리는 행위를 바꾸고, 삶을 바꿀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은 분명 그의 독서법과 어떤 책을 읽었는지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다른 면에서 그의 이야기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깊은 울림이 있는 책이다.
추신. 그의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문화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에 이야기이다. 내가 2017년에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책 역시 오에가 가장 아름다운 대담서로서 언급한 <평행과 역설>이었기 때문이다. 오에가 ‘읽기’에서 발견한 것을 에드워드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은 ‘음악’에서 말하고 있다. <평행과 역설>, 말년의 작업에 대해 큰 영향을 주었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지적 망명자로서 모습으로 근대의 지식인 모습을 그려낸 <지식인의 표상>까지. 오에가 추천한 재독rereading의 방법으로 읽어보길 권한다.
2017. 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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