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파지스쿨
글쓰기와 산책은 어떻게 공부가 될까?
글 : 뿔 옹
파지스쿨은 2014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평탄하게(?) 진행된 적이 없었다. 정말이다. ^^; 돌이켜 보면 파지스쿨을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우려와 염려가 횡횡했다. 파지스쿨을 오픈하기 전에 가졌던 사전 간담회에서는 ‘커리큘럼만 본다면 국제학교와 비슷하다. 너무 어렵지 않을까’,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공부하기 좋은 프로그램인 것 같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파지스쿨러 1, 2기를 살펴보면 가히 그 염려가 틀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파지스쿨을 시작한 지 몇 주 만에 그만 둔 아이, 들어온 지 몇 달 만에 외국 봉사활동을 떠난 친구, 그리고 몸이 아파서 나오지 못한 아이까지. 결국 마지막 졸업식에서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은 1기 5명, 2기 6명의 친구들이었다. 이렇게 적은 수의 아이들과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기 원했던 것일까? 인문학 엘리트라도 만들려고 했던 건가?
하지만 지난 파지스쿨러 졸업생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리의 실험이 그리 빗나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쟁만’하는 학교에서 길을 잃어버렸던 17살 민정이는 파지스쿨을 마친 후에 학교로 돌아갈 힘을 얻었고, 난생 처음 책을 ‘읽는다’는 20살 민영이는 지금 군대에서 자신에게 ‘읽을 책’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뿐만 아니라 랩을 하고 싶었던 17살 우현이는 공부를 하면서 음악에 대한 갈급함이 더 생겼고, 발레를 하던 20살 수연이는 이제 스스로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법을 배운 듯하다. 모두가 각자 다른 길 위에 서 있기에 졸업 후에 그들이 선택한 길도 모두 제각기였지만, 파지스쿨은 그 한 사람 한 사람과 만나고 있었다. 그 친구가 처한 상황과 마음을 서로 헤아리고, 살아갈 법을 배우는 공동체로서의 학교. 배울수록 무능력해지고 홀로되는 것이 아니라 배울수록 밥과 우정의 친구와 함께 하는 법을 체득하는 곳, 파지스쿨. 2016년은 또 어떤 실험이 진행될 예정인지 살펴보자.
2016 파지스쿨의 가장 큰 변화, <글쓰기> - 왜 글쓰기인가
2016년 파지스쿨에서 가장 많은 문의를 받고 있는 것은 바로 <글쓰기>이다. 이 말은 부연 설명이 조금 필요한데, 문의의 대부분은 ‘외국어/연극’ 수업이 없어진 것에 대한 질문이다. -.-;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잠재적인 스쿨러들 중에서 외국어/연극에 대한 관심을 갖는 친구들이 있다는 점. 그리고 부모님들은 파지스쿨에 외국어/연극이 있다는 점에 안심하는 것 같다. 파지스쿨에 보내지만 역설적으로 최소한 영어라도 잘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외국어/연극 대신에 왜 <글쓰기>수업을 시작하는 것일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존 파지스쿨러들과 마을교사들은 글쓰기만큼 자신을 바꾸기에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글쓰기>를 담당하는 진달래샘은 이에 대해 4가지 이유를 언급했다. 첫 번째, 쓰지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더 많은 책을 읽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는다. 더 많은 지식을 안다는 것은 한낱 자랑할 때밖에 쓸 곳이 없다. 우리는 자신이 읽은 것을 자신의 삶으로 만들기를 요구할 뿐이다. 둘째, 글쓰기는 나도 모르는 나를 만나게 한다. 삶을 살아갈 능력을 키우는 데 출발점은 바로 자신을 아는 것이고, 글쓰기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드러나게 된다. 세 번째, 정밀하게 공부하는 힘을 기른다. 글쓰기는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내가 하고 있는 말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 글을 쓰고 자신을 보고 다시 글을 쓰고 다시 텍스트를 보는 작업을 통해 힘이 길러진다. 공부한 것을 내 말로 만들어 내는 것, 이게 바로 공부의 이유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서로의 공부에 개입하고 서로의 삶을 엮는다. 서로의 글을 읽고 비평하면서 다른 사람의 글에서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자신의 글이 친구의 공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말이란 생각의 집이라고 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가는 나의 말을 통해서 드러난다. 따라서 <글쓰기>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벼리는 것이다.
<N프로젝트>와 히말라야 - 스스로, 함께 새로운 길 떠나기!
파지스쿨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스스로 각자의 삶을 실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파지스쿨에서 꽃이 되는 수업은 <N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년간의 과정을 보면 탈도 가장 많고 어려움도 많았던 수업 역시 <N프로젝트>였다. 매해 나름대로의 결과가 있었지만 스스로, 함께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올해는 더욱 <N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이려고 한다. 특히 기대가 되는 점은 문탁 내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히말라야샘의 파지스쿨 합류이다. 욕설가(?) 히말라야, 문탁의 걸그룹 파인애플의 창시자, 게다가 얼렁뚱땅 사진작가이면서 웹진의 수석기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말하는 <N프로젝트>를 들어보자. 첫째, 스스로 계획하고 목표를 잡는다. 즉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모두가 스스로 의견을 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통감각을 형성해야 한다. 작년 문탁과 남산강학원의 2030들은 ‘길벗프로젝트’라는 중국여행을 진행했다. <N프로젝트>는 그 ‘여행’의 자리를 음악, 연극, 영화, 탐사, 출판, 전시, 공예, 장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길. 나 혼자서는 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 일도, 누군가 함께 한다면 가능하다. 아시다시피, 파지스쿨을 탄생시킨 문탁네트워크는 인문학 ‘공동체’다. 파지스쿨의 존재 자체가 문탁의 활동성을 증명하는 것처럼,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그저 공부를 공부로만 끝내지 않는다. 끊임없이 뚝딱거리며 함께 한 공부를 바탕으로 자꾸만 ‘함께하는’뭔가를 만들어 낸다. 함께하면서 자신을 바꾸고 자신이 기대고 있는 지반을 허물기를 시도한다. 나를 지탱한 곳을 깨트린다는 의미에서도 파지(破地)스쿨의 꽃은 <N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양생의길 - 공동 식사와 산보
2016년 파지스쿨에서 크게 드러나는 변화가 <글쓰기>와 히말라야샘의 등장이라면, 일상적이어서 더욱 강조하고 싶은 점은 바로 공동 식탁과 산책이다. 문탁에서는 16년 2월부터 공유지 파지사유에서 공동 식사를 하고 있다. 단순히 문탁 2층에서 파지사유로 장소만 옮긴 게 아니다. 따스한 햇빛과 함께 20~30명의 친구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왁자지껄하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접속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파지스쿨러들 역시 공동식사를 하면서 다른 스쿨러뿐만 아니라 문탁의 다양한 친구들과 공동 식사를 하면서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2016년 스리슬쩍 등장한 산책을 빼놓을 수 없다. 올 한해는 파지스쿨러들과 봄부터 겨울까지 문탁의 뒷동산인 광교산을 산책하면서 사계절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그 와중에 항상 똑같다고 생각했던 나무와 흙과 산과 새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직접 살펴보려고 한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산책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것. 과목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2016년 파지스쿨의 으뜸가는 수업은 바로 일상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식사와 산책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2016년 파지스쿨 <인문>에서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율과 공생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비판했던 20세기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 이반 일리치를 만난다. 또한 <고전>에서는 평생 동안 ‘왕도의 길’을 설파했던 진정한 보수주의자인 맹자의 사상을 그의 논리적인 문장들과 함께 만나볼 예정이다. 그리고 우리가 파지스쿨에서 하는 독서, 글쓰기, 말하기의 소통이 ‘경청’과 더불어 시작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느 면에서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공부는 경청하고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적절하게 잘 들을 수 있을 때에야 적절히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가지 더. 2016년 파지스쿨이 빛날 수밖에 없는 이유 하나가 더 생겼다. 지난 파지스쿨 1, 2기 에서 2시간이나 걸려 파지스쿨에 왔던 민정이(양지)와 우현이(춘천)의 기록을 깨고, 2016년 파지스쿨 첫번째 등록자가 5시간 거리의 전라도 광주에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광주라는 말에 모두가 경기도 광주를 상상했지만 거리가 뭐 그리 문제인가라며, 파지스쿨 설명회 참석하기 전에 어머니와 함께 집을 계약해버린 카리스마 넘치는 18세 소녀 강수아. 이 첫 번째 친구와 만나는 것이 벌써부터 설레기에 두 번째, 세 번째…, 열 번째 스쿨러들은 어디로 어떤 접속으로 찾아올지 기대가 되고, 2016년에 펼쳐질 만남과 접속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우리는 준비되었다! 어서 오라, 파지스쿨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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