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물 없는 것 목표하기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 <공산당 선언>
오랜만에 읽은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나에게 차가운 유리창에 입김으로 만들어진 글씨와 같은 인상을 남겼다. 이 소설은 제국주의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원작 <로빈슨 크루소>를 한 명의 원주민, 방드르디를 통해서 새롭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투르니에는 여기에서 그가 꿈꾸었던 철학과 소설의 결합이라는 그의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예전부터 줄거리가 명확한 소설이 아니면 잘 읽지 못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몽환적, 추상적이지만 철학이 녹아있는 프랑스 소설의 묘미를 맛보게 된 것 같다. 특히 지금까지도 생각이 나는 주제는 ‘떨어지지 않는 화살’이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화살
처음에는 로빈슨의 종이었다가 친구로, 그리고 스승이 되는 방드르디! 엄청난 폭발로 로빈슨의 아비투스를 형성했던 제국주의적 물건들이 모두 없어진 후, 그는 방드르디의 자유를 터득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변한 것은 그의 겉모습이었다. 이제 그는 알몸으로 햇볕에 나올 수 있었고, 그의 피부는 구릿빛으로 변해갔다. 새로운 자부심이 가슴과 근육을 팽창시켜놓았다. 로빈슨은 이제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균형의 기교를 배워갔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그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있었다.
일이라곤 거의 하지 않는 방드르디가 뭔가를 아주 꼼꼼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활과 화살 만들기! 이것을 사냥에 쓰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 그로서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방드르디에게 활과 화살의 제작은 일종의 놀이였다. 그렇지만 놀이라고 해서 그가 아무런 노력 없이 대충 만든 것은 아니다. 이따금씩 근처 나뭇가지에 새들이 앉을 정도로 꼼짝하지 않는 방드르디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힘을 다해서, 생을 쏟는 열정을 가지고 활과 화살을 만들었다. 화살을 당길 때 고통스러울 정도로 집중하면서까지. 목표물도, 잡을 짐승도 없는 활과 화살 만들기! 이 놀이의 의미는 무엇일까? 힘들게 만든 화살을 찾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로빈슨에게 방드르디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걸 다시 찾지 못할 거야. 그렇지만 그건 화살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지.”
떨어지지 않는 화살!? 방드르디가 쏜 화살은 진짜로 떨어지지 않았을까? 아니, 당연히 떨어졌을 것이다. 모든 사물들이 그런 것처럼 방드르디가 쏘아올린 화살 역시 중력과 관성의 힘 때문에 땅으로, 그것도 찾을 수 없는 숲속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드르디가 이렇게 말한 의미는 무엇일까?
“화살은 적어도 150피트는 되는 높이에까지 날아올랐다. 거기서 잠시 동안 멈칫거리는 듯하더니 해변 쪽으로 떨어지지 않고 수평으로 기울어지면서 새로운 힘을 내며 숲을 향하여 날아갔다.”
방드르디는 스스로도 알게 모르게 떨어지지 않는 화살을 통해서 자유와 해방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척’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화살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는 척’하면서 활과 화살을 만든 것이 아니다. 방드르디는 “해변 쪽으로 떨어지지 않고 수평으로 기울어지면서 새로운 힘을 내며” 날아가는 화살 만들기를 꿈 꿨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놀이로서의 화살 만들기를 온 몸으로 즐긴 것이다. 결국 그는 나무숲의 장막 뒤로 사라지는 화살에 만들 수 있었다. 멋지지 않은가? 떨어지지 않는 화살 만들기! 이런 놀이라면 평생을 시도하면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지겨울 수가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놀이는 한 순간 빠져드는 컴퓨터 게임, 대학입시, 연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상상할 수 있지만 존재할 수 없는 곳, u-topia
유토피아의 단어 뜻을 먼저 살펴보자. U-topia에서 topia는 ‘장소, 땅’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u는 ‘좋다’라는 뜻과 부정의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종합해보면 u-topia란 ‘좋기는 좋은데 이 세상에 없는 곳’ 혹은 ‘상상할 수는 있지만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곳’이다. 떨어지지 않는 화살에서 갑자기 웬 유토피아인가? 이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화살’이란 것을 생각하다보니, <공산당 선언>에서 너무나 이상적인 공동체라고 함께 언급했던 구절이 겹쳐서 떠올랐다.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commune)”
우리는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서 이런 꼬뮨이 이상적이고 좋긴 하지만 인간 고유의 본성 혹은 상충하는 욕망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쓸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이런 공동체는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믿는 척’하면서 글을 썼을까? 그들은 자신도 믿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믿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생각은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연합체’와 ‘떨어지지 않는 화살’을 일종의 utopia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이상적이지만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그렇다면 이런 공동체 혹은 떨어지지 않는 화살 만들기는 정말 불가능한 걸까?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중력과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바로 이 지점에서 투르니에의 사유 혹은 방드르디의 놀이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믿는 척’하는 것은 필요치 않다. 그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이면서 맨몸 그대로 자신만의 놀이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폭발 후의 로빈슨처럼 “어처구니없는 자신의 무게”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균형 잡기는 그 다음이다. 중력에 익숙한 사람이 우주로 나가려면 무중력 상태에서 움직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무중력에서의 유영연습은 그의 목숨과 직결된 필수적인 작업이다. 중력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이 모습을 우스꽝스럽다고, 보기 흉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만의 노하우(knowhow)를 습득할 필요가 있다. 누가 알려줄 수도 없다. 당연하게 무중력을 경험한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방드르디의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무서운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게 된다. 우리들의 놀이가 서로 같을 필요도 없다. 놀이는 자신이 만드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하기, 수학, 글쓰기, 춤추기, 노래하기, 과학, 무용하기와 같은 어떤 것도.
목표물 없는 것을 목표하기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화살’과 ‘u-topia’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불확정성’에 있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세밀하게 예측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시대에 불확정성을 추구하자는 말이 역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불확정성이야말로 우리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상향을 현실에서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어떤 모습의 공동체가 될지 알 수 없고, 누구도 가본 적이 없다.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기에 ‘모든 방법을 통해서 실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목표물 없는 활과 화살’을 만들겠다는 시도야말로 이미 실패했다고 생각한 ‘공산(共産)’의 이념을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새롭게 고민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실험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각자가 자신만의 놀이를 즐기는 것, 자신만의 노하우로 유영하는 것, 이곳이 바로 우리들만의 유토피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활과 화살 만들기, 함께 만들어 보고 싶다.
'북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풀> 1 (0) | 2015.11.12 |
---|---|
[루쉰읽기] 아침꽃 저녁에 줍다 1 (0) | 2015.11.03 |
[17세기자연학]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0) | 2014.01.15 |
축의 시대 (0) | 2014.01.07 |
철학과 굴뚝청소부 (0) | 2013.12.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