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굴뚝청소부 by 이진경, 그린비
철학이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민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할 때는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지 막막하게 느껴진다. 결국 너무 높은 산을 마주서게 된 맨 몸의 등산객처럼 발걸음을 돌려버리게 되는 것.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삶에 대한 고민들을 지속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물어보면 된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에게. 그 중에서도 치열하게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인지 고민한 대선배들에게 물어보자. 데카르트는 왜 코기토(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명제를 필요로 한 것일까? 칸트가 주체의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이성에 대한 비판을 들고 나온 이유는? ‘신은 죽었다’라는 선포를 통해서 니체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고, 들뢰즈가 주장하는 ‘차이와 반복’은 도대체 무엇을 설명하려는 것일까? 질문만 들어봐도 흥미롭지 않은가?
낯선 사람과 개념들이 나왔다고 해서 어려워 할 것은 없다. 수학을 공부할 때 더하기, 빼기를 모르고 미적분을 배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철학은 그렇지 않다.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된다. 사는 법에 대한 고민인데 어디서부터 본들 뭔 차이가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에는 특별한 전제 조건이 하나 필요하다. 더운 여름날 오후에 느끼는 갈증과 목마름이다. 덮지 않은 사람에게 샘물은 먹어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목마름에 지친 사람들에게 한 모금의 샘물은 사람을 살리는 양약(良藥)이 되는 법.
이런 의미에서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철학을 알아가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이 책은 근대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여 탈근대적 사고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근 차근히 말해준다. 포스트 모던시대가 도래한지 오래되었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근대적인 늪에 빠져 있다. 즉, 이 책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부터 푸코,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인물들을 통해서 근대적 사고가 해체되는 모습까지를 보여주고 있다.
중세 시대는 한 마디로 신의 말씀을 연구하는 신학이 모든 학문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당연히 신학을 독점하고 있던 성직자가 학문은 물론 대중의 삶까지 지배하였다. 신의 말씀은 ‘진리’였기 때문에, 인식(앎)은 그 말씀에 도달하는 것으로 ‘진리’란 성직자가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철학과 과학은 모두 ‘신학의 시녀’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하에서 데카르트는 본유 관념(innate idea)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주체를 선포하면서 근대의 문을 열게 된다. 즉, 이제 ‘나’는 이성의 능력을 통해서 신 없이 사고 할 수 있는 주체가 되었다는 신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한다. 저자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으로 주체와 진리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서 근대 철학의 시작부터 독일 철학, 근대 철학의 해체, 언어학과 철학, 구조주의까지를 설명해 준다. 저자가 설명해주는 문제 설정의 틀이라든지 해석을 정답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틀 안에서 철학적 사유가 진행해 온 뼈대를 파악할 수 있어 철학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질 것이다.
철학에 대한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책을 원한다면 바로 이 책부터 시작해보기 바란다.
2013.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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