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론’과 연관하여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고서, ‘나’의 현실을 먼저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과거를 돌이켜 보되, 단순히 감상적으로 내뱉는 고백이 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고자 했다. 부끄럽지만 이렇게나마 글로 나의 지난날을 다시 마주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까지 참으로 공부란 것을 싫어했다. 진정한 공부란 것을 하려고 한 적도 없으니 공부에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나에게 공부에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항상 눈앞에 있는 취미활동에만 전념했었다. 과제든, 시험이든, 공부와 연관된 것들은 할 일의 맨 마지막으로 미루다가 전날이 되어서야 벼락치기로 훑어보는 게 전부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두뇌회전만큼은 빠른 편이어서 알량한 퀴즈풀이 형식의 공부로도 높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형식의 벼락치기가 수학능력시험에서 통할 리 만무했다. 수험에 실패하고 재수 생활을 겪어야 했는데, 한번 실패를 겪은 터라 재수하는 나를 바라보시던 부모님의 희망어린 시선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 때 나는 그 눈빛을 견디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힘든 1년을 버틴 뒤, 나름대로 아픔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대학 입학의 기쁨에 지난 괴로움 따위는 싹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놀기 바빴고 벼락치기를 일삼았다. 더 이상 학교의 네임밸류나 일정 수준 이상의 학점이 미래를 보장해주는 시대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만이 혼자서 과거를 사는 듯 걱정 없이 놀았던 것이다. 재수학원을 다닐 당시 선생님께서 ‘너희는 1년의 수험생들을 더 했으니 반드시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그러나 나는 재수한 1년이 없었던 일인 듯 동기들과 섞여 지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점이 참 후회스럽다.
대학 생활 중에 내가 한 일중 가장 도전적이었던 일임과 동시에 가장 후회되는 일은 바로 휴학 후 입시미술 학원에 다닌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인문계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도 역시 부모님은 미술은 취미로 해도 된다는 말로 나를 설득시켰다. 그래서 마지못해 문과 대학에 입학하였고 이것은 작은 반항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때의 내가 부모님의 의견을 꺾을 만큼 열정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나는 결국에는 휴학을 하고 입시미술을 공부했지만, 학원비의 부담으로 인해 결국 중도에 도전을 포기하고 말았다. 여기에도 금전적 이유라는 변명거리가 있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독학을 해서라도 끝까지, 시험이라도 봐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깊이 남아있다. 중고등학교 때 내가 좀더 강하게 요구했더라면, 휴학 후 드디어 도전할 수 있었던 미술을 포기하지 않고 더 깊게 공부했더라면 이런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 큰 후회는 그것을 전력을 다해서 도전하지 않고 적당히 맛만 보다가 그만뒀다는 것에 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미술은 너무 돈이 많이 들고, 하루빨리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지금 시작하기에는 늦었다는 등의 이유를 갖다 붙이며 소득 없이 복학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들은 보통 3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하지만, 나는 복학 후에도 별로 다르게 살지도 않으면서 ‘나는 무언가 다르다’는 생각만 가지고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졸업을 앞두고서야 내가 외면하고 있던 현실이 나를 옥죄어 왔다. 사회로 나가야 할 나이와 시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취직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돌아본 적은 많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진 단편적인 ‘생각’들일 뿐이었다. 생각하고 잠깐 추억에 잠기거나 후회를 느끼고, 또 잊고 이제껏 살아온 대로 다시 살아간다. 이제 마치 그것이 내 안의 어떤 메커니즘인 마냥 반복되었고, 기존의 나를 고치려는 노력 없이 살아왔다.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더 이상 어떻게든 되겠지 식의 방법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약하지만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 첫 발걸음 중 하나가 멘토링 프로그램을 신청한 것이다. 멘토링을 하면서,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느끼기만 할 뿐이었다. 내 안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여전히 취업을 향한 길이 멀게 느껴지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스터디도 하고 공부도 하는데, 무엇이 잘못된 걸까. 계속 생각하고 우울해지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 해답을 준 것이 바로 공부론이라는 책이었다. 공부론에서 이야기하는 ‘영리한 사람’ 혹은 ‘문사’들의 문제점을 보면 전부 나와 닮아있었다. 나는 그동안 특별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도 남들과 나는 어쨌든 다르니까, 하는 허영에 늪에 빠져 허우적댄지 오래였다. 또한 그동안은 스스로가 생각이 없어서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실은 생각이 적은 것이 아니라 실없이 생각이 많은 데다 결국 그 생각의 틀 자체가 완고한 테두리를 이루는 게 오히려 결정적인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바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술에 전념할 수 있겠냐고 한다면 나는 과연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직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현실적 한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단계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것에 대한 해답을 공부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기대고 싶어 하는 나의 고질적 습관을 먼저 버려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내 몸의 역사와 생활 탓에 생긴 덫과도 같다. 나는 적은 노력으로도 남들과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게 되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이는 곧 귀찮음이 많은 성격으로 바뀌었고 나태와 태만으로 이어졌다. 좋은 능력이 있다면 남들과 같은 시간을 노력해서, 혹은 남보다 더 노력해서 월등한 성과를 내야 했지만 나는 남들보다 적은 노력으로 같은 성과를 내는 것에 만족했다. 우선은 이것을 몰아내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에 ‘열정락서’ ‘나꿈소’ ‘세바시’ 등의 강연 프로그램들이 인기인데, 몇 편 보다 보니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부지런했다는 것이다. 화장실도 가지 않고 하루 14시간씩 공부한 이야기, 처음 도전하는 공모전을 위해 수십권의 책을 독파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우선 내 몸에 새겨진 나태를 몰아내고, 그 시공간을 독서를 통한 공부로 메우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책에서 이야기하던 진정한 공부라는 것을 해보고 싶어졌고,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마음을 다지게 되었다. 공부라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하기 위한 방법도 배웠으니 이제 몸소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나에게 일어난 큰 변화는 공부를 싫어하던 내가 이제는 ‘평생공부’ 라는 것을 짊어지고 살기로 결심한 일이다. 잠을 줄이고 아침 일찍 일어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도서관으로 가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방황을 했지만 아직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내공이 부족한 탓에 무조건 성공을 믿고 현실을 등지기는 힘들다. 따라서 우선은 내 앞에 당장 주어진 취직이라는 과제를 충실히 해내야겠다. 이제 나는 남들보다 적은 노력으로, 남들과 비슷한 정도로 살기를 원했던 과거의 나를 완전히 버리겠다. 그리고 이제껏 뒤처진 만큼 남들보다 열심히 살며 공부할 것이다. 무엇이든 내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한다면 어떻게든 길은 열리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by JH. Park
2013.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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