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힘과 펼쳐짐, 라이프니츠와 현대
처음 책을 읽어갈 때에는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재미있게 읽혀질 때는 라이프니츠의 사유가 조만간 보이겠구나 싶은데, 1강, 2강, 3강이 지나도 도통 알 수가 없는 느낌. 바로 앞의 길은 보여서 걸어갈 수는 있지만, 뒤돌아보면 덮여 있는 안개 때문에 걸어온 길이 보이지 않는 그런.
하지만, 안개 속이라도 착실한 안내자가 함께 있어서인지 어느 정도 읽어 내려가다 보니 ‘대략적인’ 윤곽이 그려진다. 눈으로 읽고 이해했다기보다는 몸으로 익혔다는 기분! 라이프니츠의 사유는 17세기의 주된 철학 사조와는 맞지 않게 현대적이었고, 현재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는 낡은 것이지만 그의 사유 중에는 지금 들여다보면 빛나는 보석 같은 조각이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17세기 기계론을 조화시키고자 했으며, 분열된 유럽을 카톨릭이라는 종교를 통해서 통일하려고 노력했던 라이프니츠 철학의 정신이. 어쩌면 책의 서술 방식이 이런 이유는 세상은 주름 접혀 있고 그 안에 무한한 펼쳐짐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그의 사유처럼 많은 주름들과 그 안의 포텐셜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 모르겠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 책 한 권을 통해서 이것 하나는 알게 되었다. 신과 인간 사이에 설정했던 관계들을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들로 이전시킬 경우 그의 설명이 신비하리만큼 맞아떨어진다는 사실. 특히, 이 책 후반부에서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을 오늘날의 하이테크 문명 시대에 비유하여 설명해 주는데, 정보, 생명체 복제, 사이보그, 인터넷, 가상현실 등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제대로 통찰/실감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그의 사유를 통해서 설명될 때는 ‘어떻게’라는 놀라움과 그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배가되기도 한다.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역시나 깊은 우물을 파 내려가는 길을 쉽지 않은듯하다. 그 깊이만큼 끊이지 않는 샘물이 솟아오를 것을 기대하며 라이프니츠의 다음 책을 읽어가야겠다.
2013. 11. 21
'북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읽기의급진성] 이 치열한 무력을 (0) | 2013.12.05 |
---|---|
[국가/학교/가족]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0) | 2013.11.27 |
[17세기자연학]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0) | 2013.10.29 |
[주권없는학교] 미셸 푸코 진실의 용기 (0) | 2013.10.24 |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0) | 2013.10.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