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뉴턴 by 제임스 글릭 (승산)
뉴턴이 어떻게 해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끌어 냈는지, 미분법의 발견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혹은 라이프니츠와 미분에 대한 발명 논쟁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없다. ‘간결하고 우아하며……예리하고 미려하게 서술된 입문서’라고 평한 월스트리트저널의 소개가 딱 맞아떨어진다고 하겠다. 간결해도 너~무나 간결한 이야기 전개-책 내용이 전체 200페이지밖에 안되니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와 구체적인 사실들의 전후를 인과적으로 알려주기보다는 약간은 비유적인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어 짧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평전들처럼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연속적이지 않고 뭉텅뭉텅 잘려나간 것처럼 배치된 뉴턴의 삶을 저자가 풀어주는 대로 사건의 단면들과 중요한 시대적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뉴턴이라는 인물이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사물의 다양한 면을 한 화면에 담아내고자 했던 입체파의 그림처럼 말이다. 어릴 적부터 수학을 좋아하면서 자랐고, 분명하고 명확한 실험과 관찰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에 걸쳐서 비밀스럽고 신비스럽게 여겨지는 연금술 연구를 지속했던 뉴턴의 모순적인 이미지.
그가 과학을 탐구하고 반복적인 실험과 관찰, 수학적 명확성들을 추구했던 것은 어쩌면 그가 자연에 나타나 있는 신의 모습을 증명하려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자연을 기계론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생명의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뉴턴을 도와주었던 연금술이 그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아직은 화학과 연금술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연금술 연구를 세상에 떳떳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후 그의 논고들을 보았을 때 그가 연금술에 가졌던 관심과 연구들은 다른 분야에 전혀 뒤쳐지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이렇게 볼 때 과학과 연금술 그리고 신학은 그에게 별다르게 분리된 분야라기 보다는 신학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연결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고독은 뉴턴의 천재성에 없어서는 안될 일부였다는 저자의 말은 그의 비밀스러운 연구 태도와 형이상학의 부재를 간략하게 대변해 준다. 젊은 시절 뉴턴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세상에 발표하기 보다는 자신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들에 답변하기 위해서 연구를 했던 고독하지만 참된 진리 탐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동기로 과학 연구를 시작했기에 자신의 과학성과를 드러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판할 때 자국의 언어가 아닌 라틴어를 이용하였고, 쉬운 증명의 절차를 밝히기 보다는 수학에 깊은 조예가 없으면 거의 알아볼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방식을 이용하였는데, 이는 다른 사람들이 과학적 연구 결과에 논평을 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로버트 훅과의 논쟁으로 훅이 속해있던 영국왕립협회와의 관계를 끊어버린다든지 라이프니츠와의 미분법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논쟁했던 면들까지 함께 생각해 보면 뉴턴은 천재성과 함께 날카로운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이러한 성품들은 어린 시절의 어려움-사생아로 태어난 어머니에게 따뜻함을 받지 못하고 자랐던 어린 시절-에 기인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또한, 뉴턴에게 과학은 새로운 방식의 철학이었기에 뉴턴을 기점으로 이제 과학(물리학)이 철학과 분리된 모습을 가져가기 시작하는데, 이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 보면 그의 형이상학이 구체적이거나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뉴턴 평생에 가장 멀리 이동한 거리는 고작 150마일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의 새로운 철학인 과학은 그 후 수 백년을 넘어서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영향력을 주고 있는데, 이는 마치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칸트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칸트 역시 전 인생을 통해서 그가 태어난 쾨니히스베르크를 멀리 떠나 본 적 없지만, 그의 철학은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에,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뉴턴과 칸트를 보면 앉은 자리에서 세상을 내다 볼 수 있었던 천리안적인 생각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박학다식을 이야기하고, 세상의 거의 모든 곳을 가 보았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한 가지 분야에 지속적인 시간을 들여야만 가능한,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아가는 몸이 좋은 사람(김영민의 공부론)은 점점 더 없어져 가는 것 같다.
2013.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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