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의 수학, 무한의 수학 by 찰스 세이프 (시스테마)
수학은 신비와 경이의 세계이다. 한 번이라도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수학을 사랑하게 되는데 이런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현재의 교육 체계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찰스 세이프는 단 한 권을 책을 통해서 수학사의 모든 이야기들을 풀어내려는 듯 하다. 고대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수학에서부터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끈 이론에 이르기는 현대 물리학까지 광대한 영역들을 다루고 있다. 수학의 비밀을 지켜내기 위해서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신비주의적인 면모나 ‘진공은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인해서 0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서양 세계, 0과 무한의 도입으로 소실점을 착안한 브루넬레스키 등 흥미로울 뿐 아니라 수학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상 생활에까지 0과 무한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맛보게 해주고 있다. 다만, 너무나 넓은 분야를 다루다 보니 각각의 주제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없는 면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다. 특히, 0과 신학, 0과 과학혁명, 0의 물리학 등은 한 권의 책으로 엮어도 될 만큼 큼지막한 주제들인데, 저자는 독자들이 기본적인 지식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하게 쓰여져 있어서 각각의 장들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루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미적분학의 탄생이 단순히 천재 뉴턴과 라이프니츠에 의해서 발명된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발전처럼 케플러, 카발리에리 등 시대가 내놓은 산물들의 결과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초등수학에서 고등수학으로의 발전으로 여겨지는 미분의 발명에 있어서 누구에게 선취권이 있는가 하는 세기를 넘어서는 지적 재산권에 관한 감정적 싸움으로 인해서 뉴턴을 지지하던 영국 수학이 이후 뒤쳐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배움에 대한 태도를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한다.
미적분학 이후로 나오는 사영기하학, 복소평면, 리만구, 무한을 보통의 수로 만들어 버린 칸토어의 수학 등은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지만, 수학에 대한 도전적인 호기심과 추가적인 공부가 절실함만을 느끼게 해 주었다. 또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 0의 물리학 부분에서는 자연학 세미나 초반에 함께 토론을 했었던 덕분에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다양한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는 개념적으로는 조금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그저 읽는 것 만으로는 전체적인 이해되지 않았고 향후 개별적인 추가 공부 & 세미나가 필요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0과 무한이라는 수학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실용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철학세계와 정신문화를 강조하는 동양을 다룬 것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작 0과 무한을 동양이 오래 전에 먼저 받아들였음에도, 근대 과학의 발전이 서양에서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역설적이게 여겨진다.
이제는 0과 무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보통의 수로 대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세계가 학문적으로 발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숫자의 확장을 인간 욕망의 확장으로 본다면 그만큼 우리 인간의 욕망은 그 한계를 모르고 과격하게 탈인간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되기도 한다. ‘16세기 문화혁명’에서 정신과 기술의 조화를 언급했던 것처럼 이제는 발전=확장이라는 단순한 도식에서 벗어나 조화로운 욕망을 추구하며 우리가 살아갈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하면 좋겠다.
20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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