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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7세기자연학]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전쟁 연대기, 아르마다

by 홍차영차 2013. 7. 3.


아르마다 by Garrett Mattingly (너머북스)

 

유럽 역사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라도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1)라는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 봤을 것이다. 이 책은 당시 스페인과 영국과의 대규모 해전을 구교 카톨릭과 신교의 대립이라는 관점으로 1588년 전후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유럽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하나도 없어서 그랬는지, 책 초반부를 읽어 갈 때는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전쟁 연대기란 책의 부제에 의심이 가기도 했지만, 후반부의 아르마다 해전 당시를 세밀하게 묘사한 부분에서는 스페인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이끌었던 메도나 시도니아 총사령관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책에 빠져드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전쟁 연대기 아르마다는 17세기 자연학 세미나2)를 진행하기 전에 당시의 유럽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읽게 되었는데, 이 한 권의 책을 통해서 1588년도뿐 아니라 17세기 전후의 유럽 역사를 파악하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참고로,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중국중앙방송(CCTV)에서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대국굴기(大國崛起)3)를 참고하여 시청할 것을 추천한다. ‘대국굴기 12~13세기부터 현재까지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들(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프랑스·독일·일본·러시아·미국)의 전성기와 그 발전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1~3편은 아르마다 해전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일을 경험할 당시에는 그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이 아르마다 해전 역시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현재 우리는 이 해전을 통해서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아르마다 해전의 의미는 단순히 16세기 해양을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 무적함대가 패배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적 일체성을 유럽인들에게 강제로 다시 부과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 이전에는 카톨릭의 권위가 더 큰 힘을 발휘하여 국가를 넘어서는 권력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나, 1588년 이후에는 민족 중심의 국가가 더 큰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단 한 권의 책이지만, 이 책을 통하여서 유럽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를 갖게된 느낌이다. 유럽 각 나라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르마다 해전을 통해서 첫 발을 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향후 이어질 17세기 자연학 세미나를 기대해 본다.

 

 2013. 07.02




 

  

* 참고

1) 아르마다 : 원래 La felicissima armada라고(세상에서 운이 좋은군대) 이름을 지었지만, 비꼬기 좋아하는 에스파냐 사람들로 인해 줄곧 무적함대(La armada Invencible)로 불려졌다.

2) 17세기 자연학 : 남산강학원(www.kungfus.net)에서 진행 중인 세미나

3) 대국굴기(大國崛起) : 2006 11 13일부터 그 해 11 24일까지 중국중앙방송의 경제채널(CCTV-2)을 통해 방송된 12부작 역사 다큐멘터리

- 목차

 1. 해양시대(海洋時代)- 포르투갈과 스페인, 해양의 시대를 열다. 

     2. 소국대업(小國大業)-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 세계를 움직이다.

     3. 주향현대(走向現代)- 영국, 현대화의 선봉에 서다 (1)

     4. 공업선성(工業先聲)- 영국, 세계 최초의 공업화 대국 (2)

     5. 격정세월(激情歲月)- 프랑스, 혼돈 속에서 일어서다.

     6. 제국춘추(帝國春秋)- 독일, 유럽제국을 이루다.

     7. 백년유신(百年維新)- 일본, 아시아 강국으로 향한 백년간의 유신

     8. 심도도강(尋道圖?)- 러시아, 강대국을 향한 피의 항해 (1)

     9. 풍운신도(風雲新途)- 소련, 풍운 속의 새로운 길 (2)

10. 신국신몽(新國新夢)- 미국,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꿈 (1)

11. 위국신정(危局新政)- 미국, 세계 제1강국을 이룬 새로운 도전 (2)

12. 대도행은(大道行思)- 21세기 대국의 길

 

4) 대국굴기(大國崛起) 1~3편 정리 : 네이버, 위키 자료 참조

   [1] 포르투갈과 스페인, 해양의 시대를 열다

    - 포르투갈 : 1139, 최초의 유럽 민족 국가로 왕국 설립

·ž 엔리케 왕자(1394~1460) : 아프리카를 통해 아시아(인도)로 가는 신항로 개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기초를 놓음(항해에 직접 나선 적은 없음)

ž· 바스코 다 가마(1460~1524) :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거처 인도까지 항해(1497)한 최초의 인물

   - 스페인 : 로마 게르만 무어인을 걸쳐 계속적으로 지배당함.

ž· 무어인 정복(8세기~16세기, 800) : 1492년 스페인 독립( 이사벨 1)

ž·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451~1501) : 포르투갈 왕 주왕 2세에게 대서양 탐험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거절. 스페인 이사벨 1세의 지원으로 탐험

à 신대륙 아메리카 발견(1492) : 본인은 죽기까지 인도 발견으로 알고 죽음

   - 포르투갈, 스페인의 조약(1494) : 포르투갈 동쪽, 스페인 서쪽 차지하기로 함.

à 식민 분할의 선례 (노란색: 스페인, 주황색: 포르투갈)

  [2]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 세계를 움직이다.

  - 청어 수출을 통해서 해상 무역을 시작

  - 정치를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경제적 이득을 중심으로 나라가 설립

  - 해양 수송에 알맞은 배를 설계하여 해양의 마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고, 유럽의 해양 유통을 점령하게 됨.

  - 동인도 회사 설립 : 주식회사 형태를 가지고, 국가와 같은 투자 방식 가능케 함.

  - 최초의 주식 거래소 : 암스테르담, 1609 (동인도 회사의 경우 10년동안 수익 없었음)

 [3] 영국, 현대화의 선봉에 서다.

  - 엘리자베스 1 (1533~1603) : 해상 무역의 이익을 가지려고 노력, 스페인과의 정면 도전을 피하려고 사략행위 용인 및 권장.

  ž ž· 스페인 VS 영국 전쟁 (1588) :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쟁에서 승리

  - 찰스 1 (1600~1649), 크롬웰 (1599~1658)

  - 명예 혁명 (1688) : 최초의 입헌군주제 (법 아래 왕)


5) 아르마다 (17 ~ 25) 세미나 정리 자료

17기적을 빌면서 : 아르마다 해전 준비 상황

스페인은 전쟁을 위한 준비가 부족한 상태였지만, 펠리페 2세의 강력한 의지로 영국 침공을 진행하고 있었다. 해군 총사령관 산타 크루소는 영국과의 전쟁을 위해서는 약 510척의 배와 64천의 군대(p136)가 필요하다고 예상 견적을 제시하였으나, 이에 훨씬 못 미치는 130여척의 함대와 전쟁을 준비 하던 중에 리스본에서 죽게 되었고 신임 해군 총사령관으로 메도나 시도니아가 선발되었다. 당시 유럽의 최고 육군 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파르마 역시 영국 침공을 위해서 해군의 전력과는 상관 없이 육군 34(137p) 정도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으며 이에 대한 전제 조건으로 안전하게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의 육군을 이송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했다. 또한, 파르마 역시 영국 침공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네덜란드의 완전 정복이 필요하다고 보고 했었다.(p96)

 

이런 상황에서 시간과 나는 한쌍이다”, “시간이 주는 혜택을 누려라”,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달려라라는 경구를 가장 좋아했던 펠리페 2세가 평소와 다르게 영국 침공을 강력하고, 시급하게 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18,19바리케이드의 날 : 영국 침공을 위한 외교적 포석

무적함대 아르마다 해전을 살펴보면, 산타 크루소, 파르마, 멘도사라는 3명의 뛰어난 인재들의 활약이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는데, 그 중 멘도사는 오직 외교력만을 통해서 아르마다 해전 발생 프랑스의 네덜란드 개입이 발생하지 못하게끔 유리하도록 프랑스 내부 상황을 배치해 놓았다. 특히, 전쟁의 발생일이 급격하게 변경되는 상황에서도 확실한 정보와 네트워크를 통해서 원하는 날짜에(5/12)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날 수 있도로 한 능력은 당시 스페인의 유럽 장악력과 정보력의 수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결과적으로, 당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앙리 3세를 밀어내고 카톨릭을 지지하고 있는 앙리 드 기즈를 전쟁기간동안 실직적인 프랑스의 왕으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20~25아르마다 해전 : 영국의 신기술(화포) VS 스페인의 화려한 해양술

산타 크루소의 견적보다는 사뭇 적은 130척의 함대였지만, 이는 이전의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엄청난 규모와 막강한 군대로 보였고, 원래 La felicissima armada라고(세상에서 운이 좋은군대) 이름 붙였는데, 비꼬기 좋아하는 에스파냐 사람들로 인해 줄곧 La Invincible로 불려졌다. 아르마다 해전을 통해서 양국은 서로의 전투력과 의지에 서로 놀라는 경험을 갖게 되었다. 130여척의 함대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초승달 형태로 배치하는 스페인의 해양술과 의지는 영국인의 상상을 초월하였으며, 영국인들의 새로운 배들이 보여준 빠른 항해술과 거포들은 기존에 스페인이 싸웠던 방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도록 만들었다. 결국 파르마 군대와는 조우할 수 없는 상태에서 펠리페 2세의 명령을 끝까지 지키려는 메도나 시도니아의 함대는, 영국의 신기술에 대한 공포와 화공선 공격이 결합하여 영국 함대에 패배하게 된다.

 

네덜란드 항구의 상황이 어려웠던 것은 이해가 가지만, 영국침공을 위해 군대 이송을 준비하는 것과 해전이 발생한 당시의 파르마 군대가 취한 느릿한 행동의 이유는 조금 의심스럽다. , 파르마 자신이 주장했듯이 네덜란드가 완벽하게 점령된 상태도 아니었으며, 안전하게 파르마의 육군이 영국으로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파르마는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영국 침공에 참여할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아르마다 해전에서 스페인이 패하긴 하였으나, 스페인이 대서양의 지배권을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후 스페인이 해양의 지배권을 잃게된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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