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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읽기

실수 행위를 법정에 세우다

by 홍차영차 2025. 2. 11.

 

프로이트 <정신분석강의> 1부 '실수행위'를 읽으면서 딱 이런 법정이 떠올랐습니다. 오호~이것 재미있는걸 하면서. 머릿속에는 너무나 멋지고 재밌는 법정드라마의 한 장면이 지나갔는데, 쓰여진 것은 지루한 드라마 한 장면이 되어버렸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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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너도 나도 딱 한 번 실수로 잘못 말했을 뿐이다. 책을 놓아둔 곳을 기억하지 못했을 뿐이고, 잠시 사람을 잘못 알아봤을 뿐인데, 이렇게 사소한 일에 바쁜 사람들을 법정으로 불러모으는게 말이 되냐고 불평했다.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사람은 당사자만이 아니었다. 법정에 모인 배심원들도 역시 '왜 이런 별것도 아닌 일에 기소를 했는지' 귀찮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탐정 프로이트는 현장에 도착하고도 곧바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서는 어수선하게 서류가방을 뒤적이면서 펜과 노트들을 꺼냈다. 기대와 달리 한동안 아무 말없이 생각에 잠긴듯하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본인도 실수행위를 법정으로 불러낸 것이 말이 안된다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실수에 의도가 있다는게 말이 됩니까? 실수가 실수이지 실수에 어떤 의도가 있겠습니까?"

 

혹여라도 실수에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의도라는 것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숨은 의도를 찾겠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겠다는 것인데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고 해도 지금까지 이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잘못 말하기, 잘못 읽기, 망각, 잘못 쓰기 같은 실수의 의도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시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탐정 프로이트는 곧바로 실수 행위의 의도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마음에 대한 탐구 - 정신분석에 대한 비판부터 시작했다.

 

"요즘 정신분석에 대한 연구가 여기 저기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정신분석을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입니다. 우선, 정신분석의 유일한 자료는 내담자의 이야기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둘째, 다른 의학적 치료들과 달리 내담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나누는 이야기는 통일적이고 조화로운 인격의 소유자라면 자기 자신에게조차 고백하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신분석 분야에서도 무시할 것 같은 실수행위의 현장은 분석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범인을 신체적인 피로와 그로 인한 집중력 분산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분명 며칠째 밤을 지새운 사람은 피로하기 때문에 실수를 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금방 범인이 잡힌 것은끝날 것 같은 분위기는 프로이트의 말 한 마디로 급변했다.

 

"하지만 배심원을 비롯해 여기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인정하실 겁니다. 우리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한 상태에서도 실수를 범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러면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을 하기 어려운 더 핵심적인 원인을 더한다. "사실 실수행위의 원인을 밝히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이러한 실수행위의 배후에 성적인 충동이 있다는 가정이고, 이에 대한 혐오감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프로이트는 실수행위의 의도를 다루는 오늘의 법정에서는 아래의 두 가지 원칙을 설정하고 싶다고 말한다.

첫째, 정신적 과정들이란 그 자체가 무의식적이며 의식적인 것은 정신활동 중에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즉, 정신분석에서는 의식과 정신이 동일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정신분석은 정신을 감정, 사고, 의지와 같은 과정으로 정의하며, 무의식적인 사고나 무의식적인 의지가 있다고 전제한다.

둘째, 성적인 것을 지칭할 수 있는 본능 충동이 신경증이나 정신질환을 불러일으키는 데 상상 할 수 없을만큼 큰 역할을 한다.

 

 

배심원들이나 실수행위를 한 사람들은 탐정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여전히 께름칙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잘못 말하기, 잘못 듣기, 잘못 보기 같은 것들은 대부분 사소할 뿐만 아니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평소에 무시되는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프로이트의 말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아주 사소하고 무시할만한 징조만으로도 다른사람의 호감과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는 국회의장이 가장 곤혼스러워했다. "회의를 개회"하겠다는 말과는 완전히 반대인 "회의를 폐회"하겠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회의를 개회'하고 싶지 않은 속마음이 빤히 보이는 실수였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역시 확실한 의도가 보이는 케이스를 증거로 들이밀면서 이런 놀라운 결론을 주장했다.

 

"실수 행위로 불쑥 튀어나온 '현상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잘못 말하기의 작용도 자기 자신의 고유한 목표를 추구하는, 그 자체로서 완전히 유효한 심리적 행위로서 내용과 의미를 지닌 행동 표현으로 파악되어야 합니다."

 

실수 행위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이 나오자 여기 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아내가 준 책을 못 찾은 것은 정말 실수였어. 내가 사랑스럽고 지적인 아내를 싫어할 이유가 없잖아?" "멀리 있어서 잘못 봤을 뿐이예요. 내가 남편을 못알아보는 것에 어떤 다른 의도가 있겠어요?" "Y의 남편 이름을 기억못한다고, 나를 이렇게 쪼잔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Y를 좋아했던 일은 그저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배심원들은 조금씩 프로이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배심원들도 실수를 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실수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한 것은 아니다. 실수행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순간 프로이트는 법정의 한 가운데로 가서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실수 행위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해하실겁니다. 실수행위란 사실 서로 다른 의도들의 충돌로 생겨난 사건입니다. 실수 행위의 배후에는 방해하려는 의도와 방해받는 의도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실수를 했을 때, 이런 의도를 알고 있을 때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행위가 이러한 의도에 의해서 벌어졌다는 것까지도 인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배심원들에게 가장 의심스러우면서 알고 싶은 경우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실수행위에 아무런 의도가 없을 때이다. 내가 저 사람에게 혹은 이 사건에 아~무런 의도를 갖지 않음은 물론이고, 이 실수행위 전에 집중했던 일과도 아무런 관계없는 실수가 일어났을 경우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정말 무관해 보이는 실수들을 프로이트는 어떻게 해명할까?

 

배심원들의 이런 질문에 프로이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프로이트는 바로 여기에 실수행위의 배후에 '의도'가 있다고, 무의식적인 과정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적 시점에서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실수들은 훨씬 전에, 아주 오래전에 형성된 억압된 의식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펼쳤다. 오래 전에, 어쩌면 너무나 어렸을때 억압되어서 더 이상 의식되지 않는, 그때문에 당사자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거부될 가능성이 있는 경향이 표출된 것이라는 당황스러운 주장!

 

마지막으로 배심원들은 만약 억압된 의식이 있었다 인정하더라도 완전히 억압되서 사라지지 않고 나오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질물했다. 프로이트는 실수행위란 방해하려는 의도와 방해받는 의도의 충돌 - 즉 양측간의 일종의 타협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방해하려는 의도는 무의식적인 과정인 억압된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프로이트는 배심원들의 마지막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1차 변론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프로이트는 다음 시간에 '꿈'을 주요한 증거로서 채택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무의식이란 억압된 의식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꿈을 무의식과 연결해서 과학적으로 증명하겠다니 놀랄수밖에 없었다. 고대로부터 꿈은 미신적이고 신비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다음 변론에서 어떤 주장을 펼칠지 더더욱 궁금해졌다.

 

 

히로시 스기모토 - 극장 시리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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