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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크루즈 기능과 장자의 빈 배

by 홍차영차 2022. 2. 15.

자동차 크루즈 기능과 장자의 빈 배

: 감정을 돌보는 일상 기술 혹은 첨단 기술

 

 

어느 날 장자가 배 위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한참 명상을 하는 중에 갑자기 어떤 배가 그의 배에 부딪쳤다. “이런 무례한 인간이 있나. 내가 명상 중인데 어찌하여 일부러 배를 부딪친다는 말인가!” 화가 난 장자는  고개를 돌려 그 배를 바라보면서 소리 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배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강물의 흐름을 타고 내려온 빈 배였을 뿐이었다. 그 순간 장자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세상에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만일 그 배(船)가 비어 있다면 누구도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내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나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내게 상처(傷處) 입히려 들지 않을 것이다. 내 배(船)가 비어(空) 있는 데도 사람들이 화(禍)를 낸다면 그들이 어리석은 것이다. 내 배(船)가 비어 있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화내는 것을 즐길 수 있다. 텅 빈 공간(空間)이 되어라. 사람들이 지나가게 하라.”

 

장자의 ‘빈 배 우화’만큼 감정의 실체를 잘 알려주는 이야기는 없는 듯 하다. 한 마디로, 내 감정의 원인은 ‘외부의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있다는 말이다. 명상 중에 다른 배가 자신의 배에 부딪혔다는 사실은 어떤 감정도 일으키지 않는다. 충돌로 인해 생긴 신체의 변화에 이어 생기는 관념의 연쇄가 중요하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명상 중인 자신을 방해하려고 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수도 있지만, 반대로 명상 중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물길에 떠밀려 왔다면 분노가 아닌 반가움이 생길수도 있다. 장자식으로 말하면 자기 속의 자기를 비울 수 있으면 감정의 요동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오랫동안 수련한 ‘성인’ 혹은 ‘현자’들에게나 가능하지 않을까? 오랜 수련을 통해서 ‘현자’가 될 수도 있지만,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내 배를 빈 배”로 만드는 데는 첨단 기술이 도움을 주기도 한다.

2년 전에 차를 새로 샀다. 이전의 차는 직접 사서 20년 정도 계속해서 타던 차였다. 새로운 차를 타면서 가장 편하게 느끼는 기능이 두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겨울에 엉덩이를 따땃하게 해주는 열선시트이고, 다른 하나는 크루즈 기능이다. 그리고 이 크루즈 기능을 사용하게 되면서 운전할 때 ‘화를 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성격이 급하고 불같은 사람은 더 잘 느끼겠지만, 차는 분명 내가 아닌데 내가 운전하는 차 앞에 다른 차가 마구 끼어들거나 훌쩍 내 차를 추월하는 차를 보면 뭔가 기분이 좋지 않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몰고 있는 차는 나와 하나가 된다. 내 차를 앞지른다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또한, 기본적으로 자동차는 빠르게 달리는 것을 코나투스로 갖고 있기에, 빨리 달리는 차, 나를 추월하는 차,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다시 그 차보다 더 빠르게 달리거나 앞쪽으로 가려고 한다. 차와 내가 결합되면서 나는 차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차-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평상시와 달리 운전하면서 쌍욕이 나오고 씩씩 거리며 분노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예의 없이 깜박이 없이 들어오는 차를 보고도 그 맥락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화를 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오나전하게 기분이 상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완전한 공()이 될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루즈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신기하게도 감정의 요동이 아주 많이 줄어들었다. 시속 80킬로미터로 설정해 놓으면 차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80킬로미터로 움직인다. 옆의 차가 추월해도 간혹가다 내 차 앞에 다른 차가 들어와도 그리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이건 내가 운전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차는 그거 기계적으로 세팅해 놓은 크루즈 기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크루즈 기능을 통해서 ‘세상을 건너는 내 배를 조금은 빈 배처럼’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서 정말 운전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아주 적어졌다.

공부를 통해서, 수련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개발된 기술, 첨단 기술을 이용하는 것도 아주 좋은 일상 기술이 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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