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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의식의 흐름 = 신체의 메커니즘

by 홍차영차 2022. 1. 2.

의식의 흐름 = 신체의 메커니즘

: <한 권으로 읽는 심리학의 원리>, 윌리엄 제임스

 

 

 

윌리엄 제임스가 '심리학의 원리'를 쓴 것이 1890년 정도이고, '심리학'이라는 학문 분과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시기여서 그런지 이 책의 서술이나 관점 자체가 더 새롭게 느껴집니다. 특히, 윌리엄 제임스가 심리학을 공부하기 전에 하버드 메디컬 스쿨에서 해부학과 생리학을 중심으로 의학박사학위를 갖고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지금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 심리학을 모두 마음과 관념의 문제로만 이야기하는데, W.제임스는 심리학을 처음부터 '신체의 문제'로 살펴보고 있으니까요.

이번에 16장의 '연합'은 마치 스피노자의 정신의 기원과 정서의 기원을, 해부학과 생리학의 관점에서 다시 풀어주는 듯 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떠 오르는 것들은 외부의 대상과 신체의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들도 그렇고, 의식의 흐름에 대한 서술에서도 스피노자가 '정서원인의 우연성', '정서원인의 유사성'을 리라이팅해주는 것 같았으니까요.

우리가 한 '단어(문자)'를 보면서 드는 관념들은 사실은 우리의 오감의 감각들을 통해서 형성되는 신체 자극과 좌우반구에 형성된 시냅스때문이라는 말도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근육이 관념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말! '소나무'라는 말은 그 나무를 만지는 촉감, 냄새, 시각적 자극뿐만 아니라 내가 '소나무'라고 발음을 할 때 필요한 혀의 구조변화, 혀의 근육, 입의 모양, 이를 형성하기 위한 다른 근육들의 자극들이 대뇌에 전달되어서 이전에 받았던 대뇌의 시냅스를 형성하게 된다는 말들. 기억과 의식은 전 신체의 작용이라는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게 됩니다.

시 한편을 외울 때를 이야기해 보죠. 우리는 기억을 뇌의 시냅스 하나에 정확히 1:1매칭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윌리엄 제임스는 몇 번이나 기억이란 정보 하나를 뇌에 집에넣는 것이 아니고 그 시를 외울 때 주변의 상황과 그 하나의 '시어' 자체가 주는 프린지(주변효과)때문에 그렇다는 것도 아주 설득력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허수경의 '농담 한 송이'라는 시를 외운다고 생각해보죠.

농담 한 송이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내가 이 시를 외울 때 '농담'이라는 단어에 도달하면, 내 뇌는 제가 이전에 읽었던 <파인만씨, 농담 참 잘하시네요>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여기서 '농담'이라는 단어에 도달하기 전에 있었던 문구들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의 단어 하나 하나-또한 이 단어들을 말하면서 자극 받는 근육들- 가 내 뇌에서 전류를 형성해서 이 모두가 형성된 어쩐 전류의 모습이 뇌에 형성되기 때문에 저는 '농담' 이후에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를 기억하게 되는 거죠.

한 마디로, 우리의 의식, 기억, 연상들은 어떤 주체가 신체와 상관없이 떠올리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전체적으로는 비슷하지만, 개개인적으로 다른 '신체의 메커니즘'에 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주 아카데믹하게 접근하는데, 시간, 감각, 기억, 연합...이런 말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서 좋은 것 같네요. 이제 다음주면 책이 마무리 됩니다. 마지막 장이 '의지'인 것을 보면, W. 제임스도 인간의 의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던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야기해줄 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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