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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뇌과학에서 우리의 의식은 왜 모두가 거짓이고 왜곡일까

by 홍차영차 2021. 9. 29.

뇌과학에서 우리의 의식은 왜 모두가 거짓이고 왜곡일까

: <스피노자의 뇌> 5장

 

 

인간 신체가 외부 물체에 의해 변용되는 모든 방식에 대한 관념은 인간 신체의 본성과 동시에 외부 물체의 본성도 함축해야 한다. (<에티카> 2부 정리 16)
인간 정신은 인간 신체가 변용되는 변용들의 관념들을 통해서만 인간 신체 자체 및 그 신체가 실존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2부 정리 19)
인간 신체의 모든 변용에 대한 관념은 외부 물체에 대한 적합한 인식을 함축하지 않는다. (2부 정리 25)

 

스피노자 철학에서 우리는 물 자체, 신체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 그 물건에 대한 관념, 내 신체에 대한 이미지는 모두 독특한 내 신체 구조와 감각을 통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신체라는 매개를 통과한 표상, 상상을 통해서 세상과 나를 인식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최신의 뇌과학의 연구는 스피노자의 이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아직까지도 신경 패턴에서 심적 이미지(관념)가 생겨나는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뇌에 그려지는 신경 지도, 신경 패턴이 심적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심신 문제에 대해 부분적인 답을 얻기 위해서라도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늘날 널리 알려지고 가장 인기 있는 관점은 ‘마음과 뇌’를 한 편으로 묶고, ‘몸’을 다른 편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음이 협의의 몸 안에 존재하는 뇌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마음과 몸은 서로 상호 작용한다”고 말 할 수 있다. “마음은 뇌를 매개로 하여 뇌를 제외한 몸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생명체의 유지를 위해서 신경 지도를 통한 작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면서 발달했다고 주장한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마음의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체의 구조와 상태를 나타내고 조절하는 신경 지도, 즉 몸을 지도화해서 뇌에 패턴화하는 절차라고 강조한다. 마음이란 객체가 아니라 절차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신체 인식 장애asomatognisia 환자 이야기는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 환자는 몸통, 팔다리, 골격과 근육에 대한 감각이 모두 사라졌지만, 심장 박동과 같은 내부 기관에 대해서는 느낄 수 있었다. 환자는 생생하게 “자신의 존재감(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사라진 것은 바로 몸입니다.”라고 묘사했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몸의 일부에 대한 표상이 남아 있는 한 마음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뇌의 영역에서 지도화되는 신체 상태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가 축적되고, 결정적 수준에 이르게 될 때 마음이 출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기본적인 종류의 자아는 두 가지 다른 일차적인 관념 - 지각된 대상과 그 지각을 통해 변용된 몸 - 간의 관계에 대한 관념(관념의 관념)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뇌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에 대한 뇌의 신경 패턴과 그에 대응하는 심적 이미지는 현실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거울상이라기보다는 현실에서 촉발된 자극으로 인해 생성된 뇌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분과 나는 그 사물을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는 이미지가 우리 외부에 있는 사물의 복제물replica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보는 이미지는 그 특정 사무르이 물리적 구조가 우리의 몸과 상호 작용함에 따라서 우리의 몸과 뇌에서 일어난 변화에 기초를 두고 있다.
… 우리 마음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물의 상호 작용의 결과물이다. … 한편 우리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서로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사물에 대한 비슷한 신경 패턴을 형성한다. (<스피노자의 뇌>, 230~232쪽)

 

여기서 다시 주목할 것은 우리가 지각하는 대상에 대한 관념은 외부 물체의 복제가 아니라 그 물체가 신체에 촉발한 자극으로 형성된 뇌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내가 검은색 컵을 눈으로 바라볼 때, 시각적 이미지는 눈을 통과하면서 사라지고, 전기화학적 신호로 변환된 자극이 뇌에 패턴화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관념들과 이미지는 사실 가상이고, 가짜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컵이라는 관념이 완전한 상상이 아닌 이유는, 전기화학적 자극은 분명 외구에 있는 컵과 내 신체가 만들어낸 상호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슷한 신체 구조를 가진 인간들이 컵에 대해서 비슷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가장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정신이 몸에 대한 관념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사유 속성과 연장 속성은 서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물체가 다른 물체와 인과적 연쇄를 거치면서 존재하고 작동하듯이, 이와 동시에 그 물체에 대한 관념들도 다른 관념들과 인과적 연쇄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실체에 대한 무한히 많은 속성들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

뇌과학이 마음과 뇌, 몸을 나누어서 생각하고 있지만, 21세기 역시 마음의 ‘신체 중심적 사고’에 대해 강조하고 더 많은 증거를 발견하고 있는 것 같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질문한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의식적 마음은 왜 필수불가결하게 생겨났을까? 심적 이미지는 신경 지도 수준에서 할 수 없는 정보의 통합과 조작을 용이하게 하면서, 생명체가 자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고도로 복잡하고 통합된 심적 절차의 이미지(마음)는 여전히 생물학적이며 물리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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