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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읽기

의미 없던 것은 어떻게 '의미있는' 것이 되는가

by 홍차영차 2021. 10. 13.

의미, 중요성, 사랑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관념의 크기, 정서의 크기

 

 

 

(오데트 - 첫인상)
반대로 어느 날 극장에서 옛 친구로부터 오데트 드 크레시를 소개받았을 때 … 물론 그녀가 스완 눈에 아름답게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런 유형의 아름다움에 무관심했고, 아무런 욕망도 느끼지 않았으며, 시밎어는 일종의 육체적인 혐오감마저 들었다. … 그의 마음에 들기에 옆얼굴은 너무 날카로웠고 피부는 너무 약했으며 광대뼈는 너무 튀어나왔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너무 야위었다. 눈은 아름다웠으나 너무 커서 견디다 못해 축 처졌고, 얼굴 나머지 부분을 피로해 보이게 만들어 항상 안색이 좋지 않거나 기분 나빠 보이게 했다. 23쪽
(오데트의 인상 변화 - 제포라)
어쩌면 그의 두 번째 방문이 더 중요했는지 모른다. 스완은 그녀가 보고 싶어 하던 판화를 가져갔다. 그녀는 약간 몸이 불편했다. 중국산 연보랏빛 크레이프 가운을 입고, 화려하게 수놓인 천 자락을 외투처럼 가슴 위로 여미면서 그를 맞이했다. 그의 곁에 서서 풀어 내린 머리카락을 두 뺨을 따라 길게 드리우고, 피로하지 않게 판화 쪽으로 몸을 기울이려고 가볍게 춤추는 듯한 자세로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는, 생기가 없을 때 종종 그러듯 머리를 기울이며 피로하고도 침울한 커다란 눈으로 판화를 바라보는 그녀 모습은, 얼마나 시스티나 성당 벽화 속 이드로의 딸 제초라 얼굴과 흡사했는지, 스완은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에겐 대가들의 그림에서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보편적인 특징뿐 아니라, 반대로 보편적인 것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 즉 우리가 아는 얼굴들의 개별적인 특징을 거장들의 그림 속에서 찾아내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특이한 취향이 있었다. 68
… 어쨌든 그가 얼마 전부터 느낀 이 충만한 인상은 비록 음악에 대한 사랑과 함께 오긴 했지만 그의 그림에 대한 취향까지도 풍요롭게 해 주었기 때문에, 오데트가 알렉산드로 디 마리아노(보티첼리)의 제포라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기쁨은 더욱 깊어지면서 그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완은 이제 오데트의 얼굴을 두 뺨이 지닌 아름다움의 가치나, 언젠가 그녀를 포옹하면 자신의 입술로 느낄 살갗의 부드러움에 따라 평가하지 않고, 그의 시선이 풀어내는 정교하교도 아름다운 선의 뒤얽힘으로 평가하며 그 얽힌 곡선을 좇고, 목덜미 선을 넘쳐흐르는 머리카락과 눈꺼풀의 기울어짐에 결합하면서, 그녀와 같은 유형이 명료하고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녀 초상화 중 하나로 생각했다.
그는 그녀를 응시했다. 벽화의 한 조각이 그녀 얼굴과 몸에서 아른거렸다. 이후로는 오데트 곁에 있거나 단지 그녀를 생각할 때에도, 그는 거기서 이 벽화 조각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민음사 2권, 70쪽)

 

슬픔이나 기쁨에 의해, 그리고 미움이나 사랑에 의해 생겨나는 욕망은 이 정서들이 크면 클수록 더 크다. (<에티카> 3부 정리 37)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던 실재를 미워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사랑이 완전히 없어졌다면, 그는 그가 이 실재를 결코 사랑하지 않았던 경우보다 더 크게 이 실재를 미워하게 될 것이며, 이전의 사랑이 클수록 미움도 더 클 것이다. (<에티카> 3부 정리 38)
정서는, 억제되는 그 정서와 상반되고 더 강한 다른 정서가 아니고서는 억제될 수도 제거될 수도 없다. (<에티카> 4부 정리 7)

 

보티첼리, 모세의 생애 (아래는 부분)

 

우리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될까? 왜 우리는 어떤 관념은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여기면서 다른 관념은 하찮다고 생각할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게 생각해 보자. 나의 코나투스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관념과 정서는 의미있고 중요하다. 반대로 나의 코나투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관념에도 강도의 차이가 있고, 정서에도 더 큰 힘을 가진 정서가 있다는 말이다.

아무런 의미 없던 연필 한자루가 갑자기 의미있게 여겨지고,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던 사람이 갑자기 중요하게 다가올때도 있다. 어떻게 의미없던 것에서 의미가 발생할까?

오데트를 처음 만났을 때, 스완에게 오데트는 그저 스쳐가는 사람이었다. 외모도 인상적이지 않았고, 그녀의 취향은 스완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몇 번을 만나도, 오데트가 아무리 살갑게 말을 하고 애교를 보여줘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완은 오데트에게서 ‘의미’를 발견한다. 주변의 수많은 사물들과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오데트가 스완에게 많은 의미를 갖는 사람으로, 사랑의 대상으로 바뀐다.

의미, 중요성의 발견, 사랑을 관념의 연쇄와 결부시켜서 생각해보자. 오데트는 스완에게 수많은 관념 중에 하나에 불과했다. 스완의 코나투스를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키는 관념에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하나의 관념으로 다른 몇 개의 관념들 - 그녀를 소개시켜준 친구, 베르뒤랭 동아리의 모습 - 과 연결되어 있을 뿐이었다.

 

어떤 실재가 보통 정신을 기쁨이나 슬픔으로 변용하는 대상과 유사하다고 우리가 상상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리고 비록 이 실재가 대상과 유사하다는 사실이 이 정서들의 작용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 실재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게 될 것이다. (<에티카> 3부 정리 16)

 

스완에게 오데트가 ‘의미’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을 스완의 코나투스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예술품과의 유사성 때문이다. 스완은 살짝 아퍼서 창백하게 이야기하는 오데트에게서 자신이 좋아하는 보티첼리의 그림, ‘모세의 생애’에 나오는 제포라의 모습을 발견한다. 스완은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감식안을 가지고 있었다. 스완에게 예술은 자신의 삶에서 ‘우상’이 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스완의 많은 관념들이 예술작품과 연계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데트에게서 작품 속의 인물, 제포라를 발견하면서, 단지 하나의 관념이었던 오데트라는 이미지는 스완의 삶에서 의미 덩어리로 변신한다.

의미가 충만하다, 중요해졌다, 사랑하게 되었다라는 것은 그 대상이 스완의 코나투스에 큰 영향을 주는 관념들의 연쇄 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이 된다. 보티첼리의 ‘모세의 생애’라는 그림에 대해 스완은 많은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 그림의 부분 부분에 있는 인물이 누구이고,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스완에게 큰 영향을 주는 관념의 연쇄 속에 오데트의 이미지가 결부되면서 오데트라는 인물은 그에게 사랑의 대상으로 변신하게 된다. 여기서 스완은 오데트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만들어 놓은 보티첼리의 ‘제포라’ 이미지로서 오데트를 사랑하게 된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관념, 힘이 센 정서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많은 관념들과 연결되어 있는 접속점이 되는 관념인 것 같다. 네트워크가 구성될 때도, 어떤 점node은 많은 다른 네트워크들과 연결되는 접속점이라서 더 큰 중요도를 갖는다. 이런 것처럼, 자신에게 의미있는 관념, 힘이 센 정서는 나의 코나투스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관념들과의 관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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