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파시오날리스의 일상기술 에티카
: 스피노자 개념 확대경 4) 명석판명한 관념과 적합한 관념
명석판명한 관념이 아니라 적합한 관념
어떻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오래 전부터 질문되었지만, 쉽게 결론지을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순간 자신이 진리라고, 참되다고,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살아간다.
데카르트 이후, 우리는 참된 관념과 명석판명한(clear and distinct) 관념을 동의어로 여기며 살아왔다. 즉 우리는 참된 관념은 대상과 일치하는 관념이고, 외부에 있는 대상을 명석판명하게 재현하는 관념이라고 전제한다. 만약 우리가 재현적 관념을 진리로 여기면 어떻게 될까? 얼마나 대상(기준)에 일치하느냐에 따라 1등부터 꼴찌까지 줄세우기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차이도 없는 반복의 재생이기에, 스피노자가 말하는 생산이나 운동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피노자의 철학을 따른다 하더라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스피노자의 정의에 따르면 우리가 갖게 되는 모든 관념은 참된 것 같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은 모두 신체를 통과하여 형성되기에 우리는 잘려진, 혼란스러운 관념만을 갖게 된다. 본성적으로 참된 관념을 가질 수 없는 인간이 참된 관념을 기준으로 살려고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다수들의major 이야기가 진리가 되고, 기득권의 기준이 참으로 작동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닐까.
나는 적합한 관념을 대상과의 관계없이 고찰되는 한에서 참된 관념의 모든 특성 또는 내재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2부 정의 4) 나는 외부적 특징, 곧 관념과 그 대상의 합치를 배제하기 위해 내재적이라고 말한다. (2부 정의 4 해명)
다행스럽게도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명석판명한 관념이 아니라 ‘적합한 관념’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명해낸다. 스피노자는 적합한 관념을 “대상과의 관계 없이 고찰되는 한에서 참된 관념의 모든 특성 또는 내재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자신의 논의에서 “관념과 그 대상의 합치”라는 참된 관념을 배제한다. 존재론적으로 인간이 참된 관념을 가질 수 없으니, 최선이 아니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심정이었을까?
[보편 통념들은] 1) 감각들을 통해 우리에게 잘려지고 혼동된 방식으로, 그리고 지성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질서없이 표상되는 독특한 실재로부터 형성된다. 이 때문에 나는 보통 이러한 지각들을 막연한 경험에 의한 인식이라 부른다. 2) 기호들로부터 형성된다. 예컨대 어떤 단어들을 듣거나 읽음으로써 우리는 실재들을 회상하고, 이 실재들에 관해, 우리가 실재들을 상상하는 수단들과 유사한 어떤 관념들을 형성함으로써 형성된다. (2부 정리40 주석 2)
나는 그 결과가 원인 자신에 의해 명석판명하게 지각되는 것을 적합한 원인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원인자신만에 의해 이해되지 않는 것을 부적합한 또는 부분적인 원인이라고 부른다. (3부 정의 1)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현실적 조건은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기에 그리 유리한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정신은 두 가지 방식으로 실재들을 인식하는데, 자연의 경험들을 통해서 우발적으로 만나게되는 감각적 지각도, 또는 기호와 언어로부터 관념을 형성하는 것도 적합한 관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각도 기호도 적합하지 않다면 어떤 인식이 적합할까? 적합한 인식은 내 신체를 변용시키는 “다수의 실재를 정신이 동시에 바라봄으로써 실재들 사이의 합치와 차이 및 대립을 이해”(2부 정리 29 주석)하는, 내적으로 규정된 지각이다. 이러한 지각만이 ‘지성의 질서’를 따르는 지각방식, 적합한 인식이다.
우발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자연적 경험 아니라 지성의 질서를 따를 때 우리는 정신을 ‘결과의 인식이 원인의 인식에서 따라나오는 방식’으로 관념들을 적합하게 연결짓게 된다. 스피노자에게 적합한 관념은 지성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고, 그 질서란 결과와 원인이 인과적으로 연결된 관념이다. 그렇다면, 지성의 질서를 따르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놀랍게도 지성의 질서 역시 정신의 대상이 신체라는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한다.
부적합한 관념이 주는 힌트
“적합한 관념들은 신 안에 있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있는 참된 관념들이다. 그것들은 사물들의 상태와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우리와 있는 그대로의 사물들을 표상한다.”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 119쪽)
들뢰즈는 “적합한 관념들은 신 안에 있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있는 참된 관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적합한 관념들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와 있는 그대로의 사물들을 표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들뢰즈의 해석에 의지해서 보면, 스피노자가 말하는 적합한 관념이란 우리의 본질이나 인식/이해 능력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신체가 표상하는 그것(들)에서 원인과 결과를 연결시켜 바라보는 것이다.(3부 정의 1)
인간 신체가 외부 물체에 의해 변용되는 모든 방식에 대한 관념은 인간 신체의 본성과 동시에 물체의 본성도 함축해야 한다. (2부 정의 16)
부적합한 관념과 적합한 관념 사이에는 이어질 수 없는 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부적합한 관념에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지성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을까? 부적합한 관념은 외부 대상과 신체의 본질을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부적합한 관념은 분명 외부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우리에게 미친 결과를 함축하고 있다. “관념은 표상적이지만, 그 표상은 분명 신체와 외부 물체의 본성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념은 항상 잘려진 인식이라는 이 말은 이제 역으로 우리가 적합한 관념에 도달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우리는 유리로 만들어진 컵 자체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유리컵과 다양한 마주침을 통해서 지성의 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 마주침은 똑같은 경험의 반복이 아니라 다른 배치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어야 한다. 가령, 컵으로 물을 담을 수 있다거나, 1m 높이에서 떨어지면 깨진다는 것. 혹은 서로 다른 종류의 컵은 부딪히면서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거나 하는 경험들. 이때 우리는 나와 컵이 함께 형성한 적합한 관념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우리는 부적합한 관념, 1차적 관념들의 적극적인 것을 통해서 적합한 관념을 구성할 수 있다.
최초의 적합한 관념은 공통 관념이다
우리 신체는 물체이기 때문에 다른 물체들과 어떤 점에서 합치한다. (2부 정리 13 보조정리 2 증명, 2부 정리 38) 그 합치로 인하여 물체에는 합성과 해체의 변용이 일어난다. 밥은 인간신체와 합성하여 피가 되고 살이 되며, 산소는 철과 결합하여 철을 녹슬게 한다. 독극물이 혈액 속으로 흘러 들어가 우리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것조차 공통적인 것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변용은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고, 같은 물체들의 만남도 조건에 따라 다르다.
신체 변용이 일어남과 동시에 정신에는 신체 변용에 대한 관념이 생겨나고, 합성에 대한 관념, 즉 공통적인 것에 대한 관념이 구성된다. 이것이 고유한 공통 관념이다.(2부 정리 39) 예를 들어 내가 물 속에서 죽지 않고 수영할 수 있다는 것은 물과 나 사이에 고유하게 형성된 공통 관념 때문이다. 이렇게 생겨난 공통개념은 적합한 관념이므로 필연적으로 우리 안에 적합하게 존재한다. 최초의 적합한 관념은 공통 관념에서 형성된다.
공통개념은 논리적으로 모든 것에 공통적인 ‘보편적 공통 개념’으로부터 독특한 실재들 사이의 ‘고유한 (덜 보편적인) 공통 개념’으로 나아가지만(2부 정리 38), 실제 삶 속에서 우리는 덜 보편적인 공통 개념에서 출발하여 보편적 공통 개념을 형성하게 된다. 보편적 공통 개념에는 자연 법칙이 포함되는데, 예를 들어 중력의 법칙은 F=ma라는 수식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개개인들의 경험을 보면 우리는 1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깨지는 유리잔의 ‘덜 보편적인 공통개념’에서 중력의 법칙이라는 ‘더 보편적인 공통개념’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공통개념은 단순한 개념의 획득이 아니라 신체적 합성과 변용이기 때문이다.
개념의 획득이 아니라 신체의 합성
적합한 관념이란 말은 자주 오해를 일으키는 것 같다. 적합한 관념을 재현적 관념으로 보면서, 어떤 고정된 이미지(개념)의 획득으로 이해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수영이 무엇인지 적합하게 안다는 것은 팔의 각도를 어떻게 하고, 발차기는 얼마나 빨라야 하며, 1분에 최소 몇 번 숨을 쉬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물과의 다양한 경험 속에서 내가 물 속에서 수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적합한 관념으로의 수영은 물의 종류, 내 신체, 주변 환경 사이에 고유하게 형성된 공통 관념이다. 내가 수영에 대한 적합한 관념은 형성했다는 것은 그 구체적인 물과 나를 포함하여 새로운 복합신체를 구성했다는 말이다.
적합한 관념은 정보의 획득이나 소유가 아니라 신체의 합성이므로 언제나 새롭게 구성된다. 그렇기에 실내 수영장에서 그렇게나 빨리 수영하던 내가 낯선 냇가나 바닷가에서는 허우적거리면서 새로운 신체를 구성할 시간, 경험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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