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 환대?!
<오뒷세이아>에는 수많은 환대hospitality의 모습이 나타난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 자신을 탄원자로 부르며 찾아왔을 때, 대부분의 주인들은 그들의 신원과 답례 가능성에 관계없이 환대한다.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포도주를 권하고, 목욕물을 준비하고 좋은 옷도 선물한다. <오뒷세이아> 15권에서는 스스로를 친족을 살해한 도망자로 소개하는 인물까지도 텔레마코스는 환대한다. 또한 오뒷세우스는 구태여 가지 않아도 될 장소들까지 가면서 위험을 담보하면서 환대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건 뭐지? 이들에게 환대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직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들의 모습은 마르셀 모스가 <증여론>에서 이야기했던 증여와 선물의 순환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고대 부족들에게 다른 부족들과의 관계는 전쟁 아니면 친교일 수밖에 없기에, 그들은 의례이자 실리로서 끊임없이 선물을 주고 받고 답례하는 방식을 통해서 ‘관계’를 유지해왔다. 여기에서 더 큰 명예를 획득하는 방법은 단 하나, 더 큰 선물을 베푸는 것이다. 이런 선물 교환은 부족간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부족내에서도 일어났다.
하지만 이들 부족간의 교환을 아무런 긴장없는 하나의 형식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한 순간이라도 의례를 벗어나거나 충분한 선물을 줄 수 없다면(그 정도로 힘이 없다면) 곧장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환대란 결국 개인, 가족, 부족의 힘과 역량을 보여주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어느 사회에서 도망자를 받아준다는 것은 도망자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을 대항할 힘이 있다는 소리가 된다. <오뒷세이아>에서 탄원자가 찾아가는 사람을 봐도 힘과 역량이 환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파이아케스족에서 오뒷세우스는 종족에서 가장 힘이 센 집안으로 찾아갔고, 그 중에서도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여주인의 무릎을 잡아야 했다. 또한 텔레마코스는 자신의 탄원자를 자신의 집에 받을 수 없음을 한탄하면서 자신(의 집안)이 힘이 없음을 탓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마지막 복수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텔레마코스는 집안의 주인으로서 탄원자, 거지, 구혼자들에게 환대와 적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환대란 각자의 역량, 힘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텔레마코스를 환대하는 네스토르
환대란 한 마디로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또는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받음에 통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반대로 보면 환대하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적대이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환대와 적대는 결국 권력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환대를 외부에서 온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더 중요한 부분은 사회 내부에서의 환대이다. 어떤 사람을 조건부로만 구성원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정상과 비정상)은 매순간 환대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공동체의 구성원을 외부적인 요소(옷차림, 모자, 외모, 피부색)로 확인할 수 있었기에 환대할 사람과 환대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노예)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시대에서 우리는 외부적 조건만으로 사람을 알아차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을 마주침에 있어서 환대 or 적대를 판단해야 한다. 즉 생존의 조건으로 절대적 환대를 생각할 필요가 생긴다.
하지만 절대적 환대란 그리 쉽지 않다.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 복수하지 않는 환대란 신체를 가지고 정념을 가진 인간임을 포기하란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으로 던져진 우리들은 실상 태어난 순간부터 환대를 받았던 샘이다. 우리가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환대의 빚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고, 환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장소와 같은 구성원이라는 상징적 자리를 주지 않겠다는 말은, 다시 말해 그 사람을 죽었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환대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이야기가 필요하다.
201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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