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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상품은 화폐를 낳고 화폐는 치부욕을 낳고 (제3장)

by 홍차영차 2016. 3. 25.

상품은 화폐를 낳고, 화폐는 치부욕을 낳고

- <<자본론>>,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


keywords :  가치의 척도, 유통수단, 지불수단, 축장화폐, 세계화폐, 물욕과 치부(致富)욕, 코드, 자본



마르크스는 상품분석에서 물건이 상품이 되는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노동이 응고되어 있는 ‘가치’에 있다고 말했다. 즉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이 가치가 상품을 상품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교환되지 않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는.

1장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여기서 가치는 추상노동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인간노동의 보편성으로의 추상노동이 아니다. 추상노동은 아마포를 만드는 직포, 저고리를 만드는 재봉과 같은 구체적 유용노동과 다른 물건을 상품이 되게 하는 창조력 혹은 마술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점때문에 상품은 태어날때부터 가치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그래서 상품의 가치가 그 물건의 속성이라고 믿게 된다. 바로 물신! 그런데 인간의 노동을 유용노동과 추상노동으로 바라보는 눈으로 화폐를 바라보면, 화폐의 출현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바로 앞선 상품과 똑같은 형태(form)때문에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물건이 상품이 되게 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상품이 갖고 있다고 보여지는 ‘가치형태’때문이고, 이런 이유로 우리는 상품에 물신적 태도를 갖게 된다. 이런 생각을 갖고 관심을 상품에서 화폐로 돌려보자. 우리는 예전부터 물물교환을 했고, 이런 교환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런 교환 속에서 상품의 가능성이 배태되어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가치형태의 제1형태나 제2형태까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모든 물건이 한 가지 등가형태로 교환되는 제3형태부터 문제가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한 가지 등가형태는 자연스럽게 금 혹은 은으로 그리고 이어서 불환화폐인 지폐로 바뀌었다.



상품과 화폐, 이 둘은 분명히 유사한 뭔가를 품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분명 상품 분석부터 벌써 화폐의 출현은 당연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물건이 사용가치로 이용되고, 서로 교환될 때는 상품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용가치 이외의 가치를 떠올릴 때 물건은 상품이 된다. 언제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를 떠올릴까?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야 할 때다. 그리고 이는 내가 필요한 것이 더 많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화폐가 단순히 가치척도의 기능으로 사용될 때는 그리 큰 문제가 없다. 이는 단순히 그 상품의 가치를 측정하는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화폐가 상품이 될 때가 문제가 된다. 원래 화폐는 상품이 될 수 없다. 상품 분석에서 상품의 교환은 서로 배제하는 관계를 하고 있다. 즉 어떤 상품도 자신의 가치를 자기로 나타낼 수 없고, 등가물의 사용가치로 나타내야 한다. 그리고 이 등가물이 한 상품으로 고정되었을 때, 이 상품은 다른 모든 상품들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화폐를 상품으로 보게 되면 화폐는 사용가치(가치척도, 유통수단) 이외에 가치를 갖게 된다. 여기서 가치가 뜻하는 게 문제가 된다. 이렇게 되면서 화폐의 기능은 가치척도, 유통수단을 넘어서 축적의 용도로 쓰여게 된다. 다시 말해 축적의 용도로 화페가 기능한다는 것 자체가 화폐에 대한 무한한 욕망의 문(물욕과 다른 치부욕)을 열어버린 게 아닐까.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상품은 사용가치와 가치이고 이는 상품의 물신을 낳았다. 그리고 화폐가 상품으로 취급될 때, 화폐에 대한 물신도 만들어진다. 금본주의일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폐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은 화폐상품이 아니라 금으로 교환해주겠다는 증서였으니까. 다시 말해 금 생산 자체가 눈에 보이는 노동을 요구하고 있으며, 또한 무한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불환환폐인 지폐는 무한하게 생산가능하다. 원한다면(누가?) 무한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게 문제다. 국가가 화폐발행에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국가 자체가 무너지고 몇몇의 사람들에게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어떻게 화폐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이게 더 기이한 일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얼마나 화폐의 물신에 붙잡혀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마르크스는 상품은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공동체는 서로의 삶이 엮어져 있기 때문에 상품이 나올 수가 없다. 다만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 다른 공동체와의 교환이 필요할 때 상품이, 화폐가 필요해진다. 그렇다! 상품(교환)이 필요했던 것은 공동체가 살기 위해서였다. 화폐상품 역시 그렇게 바라봐야 한다. 사용가치와 연결되지 않는 화폐, 공동체의 활동과 연계되지 않는 화폐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화폐가 사용가치가 아닌 다른 형태(증식하는 자본)로 쓰인다는 것이 왜 필요할까를 재고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재고는 당연하게 공동체, 화폐공동체가 아닌 다른 공동체의 생산에 달려 있는 것 같다. 화폐는 아무런 흔적도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서로 다른 개인들을 넘어서 마구 돌아다닐 수 있었고, 공동체를 해체해야만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새로운 공동체는 그 특유의 냄새와 흔적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로운 개인들이 그 코드를 가지고 연합할 수 있을 때에 가능할 듯.


보너스. 자본주의에서 돈은 신이다. 그리고 돈이 신이라는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서 정말로 ‘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돈을 말해주고 있다. 가장 소중히 여기고, 불멸하고, 현재보다는 사후를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종교, 화폐물신! 기독교가 타락했을 때, 사람들은 종교개혁을 감행했다.  왜냐하면 종교를 개혁하지 않으면 살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자본주의 개혁은 그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화폐가, 자본주의가 자신들의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 어떤 시대보다 더 강력한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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