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옆에 고이 놓여 있던 <불멸>을 꺼내들었다. 신기한 것은 그의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밀란 쿤데라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내용은 현대인들처럼 나 역시 피하지 못하고 있는 불안과 우울이다. 사르트르나 알베르 카뮈의 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불안을 다루는 그들의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불안의 진동이 사라진다고 할까.
헤밍웨이의 소설도 좋아하고,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도 사랑한다. 가장 매력적인 소설 주인공으로는 스탕달의 <적과 흑>에 나오를 쥘리앵 소렐이 떠오른다. 이처럼 좋은 고전 소설들이 많지만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좀 더 특별하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고 있어도 긴장되고 불안해지는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할까. 내 몸의 주파수와 가장 잘 통하는 느낌이다.
<불멸>을 읽는 내내 그랬다.
<참을수없는>처럼 이 책 역시 어디를 펼쳐 읽어도 좋았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책을 낭독으로 읽었다. 차분히 한 문장 한 문장 읽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무슨 내용이냐고?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사실 별 내용은 없다. 어떻게 보면 구조가 좀 생소할 수도 있다. 저자가 자신의 소설속 인물과 직접 마주치기도 하고, 또 소설 속에서 불멸의 명성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작가 괴테와 헤밍웨이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괴테의 연인이었던 베티나를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갑자기 현시점의 인물로 돌아간다.
사실 내용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부인은 예순이나 예순 다섯 살쯤으로 보였다"는 첫 문장부터, " ...... 아름다움의 마지막 자취로서, 그것을 두 눈 앞에 간직하고 싶어 했다."라는 마지막 문장까지. 그냥 밀란 쿤데라의 문체 자체가 좋다라고 해야할까. 몇 페이지 되지 않는 파트로 이루어진 소설 구조도 좋다. 삶의 불안이 올라올 때 그의 문장을 읽으면 온갖 사념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밀란 쿤데라의 문장들과 내 몸만 남는 기분이다. 불안에 떠는 환자가 먹는 신경안정제같다고 할까. 좋은 건 그의 문장을 많이 읽어도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문자와 정신공간'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시각 중심적 세계에서 벗어나' 청각, 오감의 우주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문학은 일정 부분 '시각 중심적 세계'를 형성하지만 분명히 시각을 넘어서 '오감의 우주'를 경험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문학의 힘! 이건 영화나 드라마로 영상화된 것을 보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문학은 힘이 세다.


'삶의조건으로서거짓'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애니미즘에서 애니미즘으로 (0) | 2026.10.24 |
|---|---|
| AI와 미신이 함께 판치는 세계 (0) | 2026.10.20 |
| 반지성주의라는 또 하나의 은밀한 흐름 (0) | 2026.10.20 |
| 병의 탐닉과 긴 연휴 (0) | 2026.10.09 |
| 리센느 원이 얼굴을 보면 무장해제되는 이유 (0) | 2026.09.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