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
라캉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이다. 평생 내가 이랬던 것 같기 때문이다. 속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지내고, 동시에 (나 자신을) 속이려는 몸짓과 말을 경험하면서 스스로에게 원죄를 씌웠던것 같기 때문이다.
추석 한주 전에 양평에서 진행하던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거의 1년동안 읽었던 니체 읽기, <차라투스트라>를 마지막으로 글쓰기 발표까지 하면서 잘 마무리했다. 예상 외로 참여했던 모든 분들이 각자의 질문과 스타일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한 주 전에 <오뒷세우스> 새벽낭독도 끝났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부터 <오뒷세우스>까지 새벽낭독으로 읽어냈다. 확실히 구술성의 신화를 문자로 적은 것이었기에 낭독하기 아주 좋았다. 화요일에 하던 프로이트-라캉 읽기는 이미 마무리가 된 상태였고, 11월부터 하기로 한 강의원고도 어느정도 추러졌기에 추석부터 2주 정도는 특별히 할 일 없이 편하게 쉴 수 있었다.
놀랍게도 추석이 시작되는 즈음부터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9월 23일정도부터 10월 5일 정도까지 별다른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감기기운이 심하기 들었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중간에 식사모임이 있었던 9/30일 전날에는 또 몸 상태가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10월초부터 5일까지는 거의 비몽사몽간에 하루하루를 보낼 정도로 몸이 아파왔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20대부터였던것 같다. 왜 연휴, 그것도 긴 연휴가 생길때마다 몸이 아파올까? 신기하게도 연휴가 끝날 시점에는 몸 컨디션이 다시 좋아진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정신적 긴장은 신체를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에너지를 집중했던 것이 풀어져서 몸이 아파온다는 것. 어쩌면 그동안에 몸 여기저기에 구멍뚫린 곳이 많았는데 해야하는 일에 집중해야하기때문에 신경쓰지 못했던 것이고, 정신적 집중이 풀어지면서 몸의 구석 구석을 보수하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말할 수 있다. 몸의 자가 치유가 일어나는 기간이 결국은 몸이 아픈 시간이라는 것!
하지만 생각해보면 몸의 상태가 100% 정상일 때만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장 내일 기말고사가 있을 때는, 왠만큼 아프지 않으면 책을 보고 공부를 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며칠 뒤가 연구발표일이면 아픈것도 모르고 일을 하고 실험을 한다.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연애할 때다. 좋아하는 연인이 내일 만나자고 하면 나를 덮쳐왔던 감기 기운도 사라지고, 부러진 다리를 안고서라도 걸어 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연휴에 아픈 이유가 뭘까? 라캉이 말했던 실재(the real)를 직면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일상에서 펼쳐지는 현실(realiy)가 아니라 언어로는 포착하지 못하면서도 항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무질서 혹은 공허로서의 실재(the real)! 라캉이 대상 a, 주이상스, 증상이라는 개념(화되지 않는 개념)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그 실재에 대한 회피로서 몸이 아파왔던 것이 아닐까. 하루 이틀 정도의 휴일은 괜찮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정리해도 1~2일은 금방 지나간다. 2~3일도 어렵지 않다. 하루 이틀 나들이를 나갔다 오거나 하면 이정도도 충분히 지나갈수 있다.
긴연휴에 들어서면서 몸이 아파오는 것이 일종의 병의 탐닉, 증상으로서 병의 탐닉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몸이 가짜로 아픈것인가? 아니다. 실재로 몸에 열이 있고, 기침도 나고, 두통도 발생한다. 앞서 말했던것처럼 10월 1일부터 5일까지는 집안에서 조금만 걸어다녀도 지칠정도로 몸이 망가진 상태였다. 병든 몸은 거짓이 아니라 증상으로서의 병을 보여준다고 봐야 한다.
다행히(?) 몸이 이렇게 아프면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혼자 살게 되면 더더욱 이런 생각들이 두려울 때가 있는데, 어느 순간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깊숙히 내려갈 때가 있다. 그런데 몸이 된통 아프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숨쉬고, 잠자고,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시간이 지나가게 만든다.
도대체 어느정도의 어두운, 고통스러운 과거(?)를 가졌기에 이런 생각을 하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그리 특별한 과거를 갖고 있지 않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는 라캉의 말은 어떤 특별한 사람, 고통스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에게 속하는 말이 아니다. 자아를 갖고 있는 근대인들 누구라도, 속마음과 다른 행동과 말을 할 수 있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하고, 스포츠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실재, 세계의 실재(the real)을 대면하지 않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삶의 모든 일들이 실재를 피하기 위해서 - 죽기 위해서 배치된 것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프로이트가 분열증에 대해서 연구하게 만든 편집증 환자 슈레버를 보라. 그의 삶을 보면 별 다른게 없다. 아니 그는 그 시대에서 아주 똑똑한 지성, 엘리트였다. 그냥 판사도 아니고 고등법원의 원장으로 추대될 정도의 지성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2026년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중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아이돌 뿐 아니라 특정한 사건이나 장소에 대한 덕질에 빠진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실 일만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다는 것은 어떤 한 순간도 실재(the real)와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토록 다양한 덕질도, 이단 종교에 빠지는 것조차도.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거냐.
그냥 열심히 일하고 또 열심히 놀면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혹은 이런 걸 알게 되서 더 힘들게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나도 딱히 답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번 연휴를 지내면서, 몸이 아픈 가운데 열흘 정도를 지내면서 이게 내 증상이겠구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무장적 직면하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 자신의 삶에 단 한순간도 빈칸으로 놓지 못하고 뭔가로 채워넣는 것이 맞는가라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답이 없는 질문에 고통받지 말고, 일단 제대로된 질문을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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