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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읽기

실제 인물과 가짜 사람

by 홍차영차 2021. 8. 26.

실제 인물과 가짜 사람?

 

신한 은행 광고에 나온 가상 모델(2021.8월)

 

그런 날들의 오후는 평생 동안 경험하는 것보다 더 많은 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그 사건들과 관계되는 인물들은 사실 프랑수아즈의 말대로 ‘실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인물의 기쁨이나 불운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모두 이런 기쁨이나 이런 불운에 대한 이미지의 매개를 통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다. … 우리가 아무리 실제 인물과 깊은 교감을 나눈다 할지라도, 그 인물 대부분은 우리 감각에 의해 지각되고, 말하자면 우리에게 불투명하게 남게 되므로 우리 감성으로는 들어 올릴 수 없는 죽은 무게를 제공한다. 불행이 한 실제 인물을 휘몰아쳐도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불행에 대한 우리의 전체 관념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뿐만 아니라 그 인물 자신이 감동하는 것도 자신에 대한 전체적인 관념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154쪽

 

마르셀에게는 책 속의 인물들은 가짜가 아니다. 프랑수아즈에게 책 속의 인물들이 가짜이고, 현실에 실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을 인식하고, 그 사람에 대해 갖게 되는 관념, 인상, 감정들은 모두 내가 갖고 있는 관념일 뿐이다. 사실 내가 그 사람에게 갖는 생각들은 내 ‘신체의 변용과 신체 변용의 관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실에 있는 인물일지라도 나에게 아무런 ‘신체 변용’ 즉 일반적인 관념, 이미지들과 다른 이미지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마르셀에게 그 인물은 그저 서 있는 회색 벽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문학 속, 러스킨의 책 속에서 독특성을 보여주는 인물은 그 책을 읽고 있는 마르셀에게 그 무엇보다 큰, 색다른 이미지, 신체 변용을 만들낸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봐야 한다. 누구 실제 인물이고, 가짜 사람인가?

 

그러나 삶에서 가장 사소한 것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체적인 모습은 대부분 그 사람에 대한 관념들로 이뤙져 있다. 이 관념들이 그 사람의 두 뺨을 완벽하게 부풀리고, 거기에 완전히 부합되는 콧날을 정확하게 그려 내고, 목소리 울림에 마치 일종의 투명한 봉투처럼 다양한 음색을 부여하여, 우리가 그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 관념들인 것이다.  … 우리 친구를 감싼 이 육체라는 봉투는 그의 부모님에 관한 추억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에, 그런 스완만이 내게는 완전하고 살아 있는 존재였다. 43쪽

 

다른 사람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내가 갖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인식, 내가 판단하는 그 사람의 인격이란 사실 내가 받은 '신체적 변용'이다. 그렇다고 내가 나쁜 생각(관념)을 가졌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한다고 자신을 비하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내가 갖는 관념은 외부 대상에 대한 본성과 내 신체적 본성을 함께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관념이 정서적 힘으로 발현되는 것에는 내 신체의 상태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다.

이렇게 보면 왜 똑같은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도 전혀 다른 평판을 가질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있다. 그 사람과 어떤 상황에서, 특히 내 신체적 상태가 어떨때 만났는지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관념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까지.

 

인간 신체가 외부 물체에 의해 변용되는 모든 방식에 대한 관념은 인간 신체의 본성과 동시에 외부 물체의 본성도 함축해야 한다. (<에티카> 2부 정리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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