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를 읽으니 프루스트가 떠오르네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제 그만두자. 마음대로 되라지. 아등바등은 이것으로 끝이다.”
이제 앞발도 뒷발도 머리도 꼬리도 자연의 힘에 맡기고 저항하지 않기로 했다.
점차 편해진다. 괴로운지 기쁜지 잘 모르겠다. 물 안에 있는지 방 안에 있는지 분명치 않다. 어디에 어떻게 있어도 상관없다. 단지 편하다. 아니, 편함 그 자체도 느낄 수 없다. 해와 달을 떨어뜨리고 천지를 분쇄하여 불가사의한 태평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죽는다. 죽어 태평을 얻는다. 태평은 죽어야 얻을 수 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모든 것이 고맙고 기쁘도다.
가볍게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집어들었다. 일단 제목이 좋지 않은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뭔가 가벼우면서 재미난 장난이 많이 들어있을 것 같은 느낌. 이전에 읽었던 <그 후>라는 소설도 느낌이 좋았다. 적당히 냉소적이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태세. 근대의 비인간성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 역시 근대에 태어나고 이 시대에 죽을 것이라는 냉소적이지만 반-적극적인 태도,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햐, 그런데 읽기 시작하고 알게되었는데, 이게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었네. 이런!
그래도 처음부터 좋았다. 이름도 없는 고양이가 태어나면서 인간을 내려다보고 관찰한다. ‘고양이’라는 동물이 주는 신묘함이 소설에도 잘 작동한다. 고양이 눈을 보고 있노라면, 뭐라고 해야할까,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생각들과 상상들이 있는 신이나 우주적으로 보이는 눈빛! 그래서인지 들고양이나 집고양이의 행동은 누구 밑에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의 주인이면서, 그 동네의 터줏대감으로 보인다.
전통적 인간이나 근대적 인간의 행위 모두 고양이에게는 낯설고 터무니없이 불합리하다. 고양이 사회에서 먹을 것은 먼저 발견한 자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발견한 먹을 것을 힘으로 빼았고 자기 것이라는 ‘소유’를 주장한다. 전통의 시대에 태어나 근대의 초입에 살아간 나쓰메 소세키의 감성이 딱 이렇지 않았을까.
점점 읽어가면서 나는 프루스트의 소설이 떠올랐다. 학교 선생이라고는 하지만 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고, 대부분의 이야기가 구샤미 선생집에서 벌어진다. 항상 떠벌리고 거짓말을 하면서 장난치는 메이테이 선생, ‘개구리 안구의 전동작용에 대한 자외선의 영향’에 대한 박사논문을 쓰겠다고 매일 매일 눈 모양의 구슬을 깍고 있는 간게쓰. 나쓰메 소세키는 아마도 실존하는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빚대어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들의 무리의 속물근성을 조롱하는 것 같다. 프루스트가 보여주는 19세기 프랑스의 살롱, 귀족이나 부르주아 집안에서 벌어지는 모습과 이상하게도 겹쳐졌다. 프루스트 역시 이들의 대화 속에서 예술과 문화, 지식에 대한 찬사가 있지만 이것들이 과연 의미하는 것이 있는지 스스로 질문했던것 같기 때문이다. 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지적 유희와 스노비즘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 곳곳에서 나오는 전통과 근대의 변화에 대한 통찰은 지금도 새겨볼만한다.
“그러니 가난할 때는 가난에 묶이고, 부유할 때는 부유에 묶이고, 근심스러울 때는 근심에 묶이고, 기쁠 때는 기쁨에 묶이는 거야. 재인은 재주로 망하고 지자는 지혜에 패하니, 구샤미 군 같은 신경질쟁이는 신경질이 나면 당장 뛰쳐나가 적의 속임수에 걸리고…….”
하지만 500페이지나 되는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것은 이런 문제들을 적당하게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가볍게 읽게 해주고, 곳곳에서 웃음을 지으며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그의 유머/유희들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나오는 고양이의 죽음에서 마음 한 켠이 덜컹였다. 고양이의 마음에서 소세키의 감정이,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내 마음의 한 표정이 모두 표현된것 같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모든 것이 고맙고 기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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