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최악의 조건은 내가 내가 되는 데 최고의 조건이다
어떻게 나는 내가 되는가?
나는 나다. 내가 가진 조건 그 자체가 내가 내가 되는 토대이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것으로는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내는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키가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모방하려고 한다거나, 키가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의 민첩성을 따라가려고 한다면 그는 항상 그의 아류가 될 수밖에 없다. 손가락의 길이가 짧은 사람이, 호로비츠와 같은 손가락 크기를 가진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한다면, 호로비츠가 그 호로비츠가 되게 만들었던 기술과 지혜는 그에게 노하우know-how가 아니라 고통이 된다. 아무리 해도 그는 호로비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명창이기 때문에 평생 국악을 들어봤을테지만 27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국악을 배우게 된 이희문! 음악을, 국악을 27살에 시작한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냥 취미가 아니라 진지한 배움으로 시작하기에는 많이 늦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어머니가 명창이기도 했지만, 그의 스승 또한 여성이었기에 그가 듣고 배운 것은 여성이 소리내는 민요였다. 자연스럽게 그의 노래는 여성적으로 들린다. "왜 그렇게 여자처럼 노래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지만, 그것은 그가 지금의 이희문이 되는 최고의 조건이 된다. 여성과 남성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든지, 페미니즘적 사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이 그러했고, 그냥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가수가 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그렇게 도피하듯 떠나서 배운 영상작업을 하다가 27살에 국악을 시작했다. 남성이지만 여성들 주위에 둘러쌓여 있었다. 그 어떤 조건도 국악 남성 명창이 되기에는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 아니 최악의 조건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국악을 배운지 3년차에 우연찮게 알게 된 안은미선생의 작품에 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국악계가 아닌 전혀 낯선 영역에서 국악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늦게 입문한 국악계에서만 있어도 자리를 유지하기 쉽지 않았을 것. 하지만 그것은 이희문 그 자신이 말했듯이, 주어진 조건이었고, 그렇기에 경기민요를 맛나게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 된다.
국악중학교, 국악고등학교를 거쳐왔다면 지금처럼 재즈, 락과 같은 음악을 국악과 섞을 수 있었을까? 재즈와 국악이 만났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저 하나의 음악이 되었다. 가수가 되려는 시도들, 그리고 영상작업 그리고 여성명창에게 배운 소리들. 자신이 갖고 있는 조건들 사이에서 최선으로 표현하려고 하다보니 지금과 같은 활동과 작업이 이루어진 것 같다.
베토벤까지 가는 것은 조금 과한 것 같긴 하다. 베토벤의 작품이, 32곡의 피아노 소나타에 지금 클래식의 정수라고 여겨지는 부분뿐만 아니라 낭만주의의 모습과 현대음악의 시초까지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가 소리를 점점 더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절대음악이라는 형식, 모티브를 사용하여 구조적인 음악을 배치한 것은 초기에 점점 더 나빠지는 청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시기에 소리의 진동, 베이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들을 활용하여 작곡하게 된 것 역시 청력을 거의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신체적으로 점점 더 나빠지는 조건을 탓하지 않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이 실험적이 되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을 기준삼아 그 모델처럼, 이상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가꾸려고 한다. 어떻게 해도 그런 시도는 내가 내가 되는 길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내가 가진 신체적, 관념적, 환경적 조건들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 바로 나다. 그리고 삶이라는 것은 그러한 나를 최대한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시도에 실패는 없다. 고정된 목표가 없기 때문이고, 내가 내가 되는 것에 어떤 이상과 모델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이 실험이고,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가자는 여러 철학자들의 목소리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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