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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

다른 퇴근길(2) - 치킨집, 커피숍이 아니라 다시 대학에서

by 홍차영차 2019. 10. 11.

다른 퇴근길(2) - 치킨집, 커피숍이 아니라 다시 대학에서






사실, 오늘 이야기에서 남기고 싶었던 것은 점심을 먹은 후 캠퍼스를 산책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이다. 아름답게 가꾸어 놓은 나무들과 건물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한적하게 걷는 사람들(휴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과 곳곳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오랜만에 걸어보는 캠퍼스가 참 좋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른 퇴근길’에 대한 생각으로 뻗어나갔다. 요즘 정년 퇴직이란 개념은 거의 없다. 다양한 이유로 40, 50대에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방식은 계속해서 다른 ‘임금 노동’으로 갈아타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커피숍, 치킨, 피자집과 같은 자영업 사장님이 되는 방법. 물론, 이런 방식의 창업을 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돈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밖에 할 수 없을까?

우리가 처음 직장을 잡을 때를 생각해보자. 경험도 부족하고, 실력도 없기에 이것 저것 필요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뭔가를 준비한다. 대학교가 직업 준비소가 된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인생을 살아가지 않았던가? 또한 학교는 직장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를 만나고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삶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40/50대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하면 더 잘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데,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임금노동’에서 벗어난 많은 사람들은 ‘월급을 받지 않는 기간’을 참지 못하고, - 돈(임금)을 받아야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성급하게 다른 일을 시작한다.


대학교에 학생이 없다. 인구 자체가 줄어들었고, 대학을 가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상당히 많이 깨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많은 어른들은 대학을 가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여러번 학교/가족/국가라는 체제를 좀비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죽었지만 그 죽은 것을 대신할 형식을 발명해내지 못해서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들.) 그럼에도, 등록금은 비싸고 교직원들은 대학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새로운 존재들의 유입이 필요하다.

실버대학이나 평생대학이라는 이름부터 버리자. 이런 이름은 그 작명naming에서부터 그곳에 다니는 사람들이 '잉여'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똑같은 장소이지만 전혀 다른 ‘지층화’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지층들이 섞이고 횡단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 일주일에 5일을 나와야 하는 구조가 아니라 한 과목만 듣는 것도 가능하고, 여러 과목을 듣는 것도. 1년만 듣거나, 2년 혹은 4년을 다 이수하는 것도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인정된다면 어떨까?


40/50/60대에 퇴직을 한 사람이 있다면, 곧바로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들기 보다는 다른 삶에 대한 앎, 다른 기술을 접속하는 장에 접속할 필요가 있다. 2019년 다양한 아카데미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문학 공동체, 협동조합들이 이런 장으로서 펼쳐졌고, 그러한 일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걸어가서 장을 보고 밥을 먹고 친구들과 이야기 하기 위한 생활체력이 필요한 것처럼, 생활인문학은 이제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인문학이라고 하면 나와 먼 이야기, 철학이나 역사를 왜 공부해야하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여기에 대학이 새롭게 자리를 잡아보면 어떨까?

대학이라는 이미 형성된 커다란 field에,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들어오도록 하자. 감사하게도, 그들은 이미 그들 나름대로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대학을 오로지 새로운 직업을 위한 ‘직업 훈련소’로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40/50/60대에게 이곳은 새로운 앎을 통한 기쁨을 맛보고, 새로운 친구들을 통해서 생활을 활력을 얻는 장소가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매일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2~3번 정도 갈 곳이 있고, 자유롭게 이곳을 활용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자기 삶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반복과 차이를 통해서 스타일style을 형성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


2019.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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