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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그리스비극

우리는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by 홍차영차 2015. 12. 29.

우리는 다른 미래를 만들수 있을까

- 소포클레스 비극 <필록테테스> -





소포클레스의 비극 <필록테테스>는 기원전 409년에 초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즉 그리스군이 트로이아를 향해 항해를 하던 중 필록테테스가 독사에 물렸고, 이에 그의 동료들은 잠시 쉬고 있는 그를 섬에 버려두고 가버렸다. 하지만 트로이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필록테테스와 그가 가지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활이 필요하다는 예언에 그리스군은 그를 다시 데려오기를 추진한다. <필록테테스>에는 필록테테스 자신을 포함하여 세 명의 중심적인 인물이 나오는데,  각각의 인물들은 당시 아테네인들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참, 여기서 필록테테스를 버려두자고 주장한 사람은 바로 오뒷세우스이다.

먼저 독사에 물려 트로이아 전쟁을 하러가는 그리스군에게 버림받은 필록테테스. 그는 그리스군에게 버림 받은 후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세월을 한탄하고 있었다. 배를 굶지 않으려고 헤라클레스의 화살로 비둘기를 잡아야 했고, 장작을 패야 했으며, 불이 없으면 돌에 돌을 문질러 그 속에 숨어 있는 불꽃을 끌어내야 했다. 독사에 물린 발을 질질 끌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기욤 기용 르티에르, <렘노스 섬의 필록테테스>, 18세기∼19세기, 루브르 박물관


<필록테테스>가 공연될 당시의 아테네가 바로 필록테테스가 처한 상황과 같지 않았을까? 대군을 이끌고 시칠리아를 공격하러 떠난 것이 기원전 413년이었고, 아테네인들은 그곳에서 거의 살아남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이어서 기원전 411년에는 오랫동안 공들여온 민주주의를 전복시키고 400인 과두정권이 들어서기도 했다. 곧바로 민주정체로 회복하기는 했지만, 아테네인들은 기원전 431년에 시작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지쳐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역시 아테네가 자초한 일이었다. 제국으로 성장한 도시국가 아테네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전쟁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전쟁은 끝날줄 몰랐고, 독사에 물려 고통받는 필록테테스처럼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


정의인가 이익인가

필록테테스의 고통에 공감한 것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였다. 필록테테스를 만나기 전부터 네옵톨레모스는 계략과 거짓으로 그에게 다가가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이 필요하다면 힘으로 대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 아킬레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비열한 방법으로 이기느니 차라리 옳은 일을 하다가 실패하고 싶다”고까지 말하면서. 하지만 네옵톨레모스와 함께 간 오뒷세우스는 그리스군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달콤한 전리품을 위해서 계략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고집했다.

오랫동안 전쟁을 치뤄온 아테네인들. 자신들의 결정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도시국가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냉철히 파악하고 있었다. 도시국가 아테네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전쟁과 전투가 행해졌다. 하지만 이제 그런 현실에 물음을 제기해야 할 때이다. 과연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옳은 일인가? 반복해서 오뒷세우스는  지혜로워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지혜라는 것은 결국 나와 아테네(그리스)의 이득만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오뒷세우스와 필록테테스 사이에서 네옵톨레모스가 고민했던 것처럼, 아테네인들은 고민에 빠질수밖에 없었다.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필록테테스를 데리고 트로이아로 갈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본성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따라서 필록테테스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지만 그들은 돌아갈 수 없었다. 만약에 소포클레스가 <필록테테스>의 마무리를 지금과는 다르게 쓸 수 있었다면, 다시 말해 네옵톨레모스가 필록테테스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면 아테네의 운명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필록테테스>의 결과는 예정되어 있었다. 필록테테스가 네옵톨레몸스와 오뒷세우스의 말에 설득당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는 함께 트로이아로 돌아가 전쟁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아테네를 사랑한 뛰어난 비극작가이자 평범한 정치인

소포클레스는 도시국가 아테네를 사랑한 인물이었고, 아테네 역시 소포클레스를 아꼈다. 그는 뛰어난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두 번이나 장군에 선출되었고(기원전 440년, 428년), 시칠리아 원정에서 아테나이 함대가 전멸하여 도시국가 전체가 동요하고 있을 때, 소포클레스는 10인의 국가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아마도 소포클레스가 시민들 전체에게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소포클레스와 당시의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방향을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 다시 아테네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원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점점 더 힘을 잃어가는 아테네를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헤라클레스의 영혼이 나와서 그들을 설득하기 앞서 네옵톨레모스가 고백한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아테네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소포클레스의 심정이었으리라.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말로 그대를

설득할 수 없다면,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나는 말을 중단하고, 그대는 

아무 구원도 없이 종전처럼 살아가는 것이오.” <필록테테스>, 1393행 이하


또한 <필록테테스>에서 흥미로운 점은 오뒷세우스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소포클레스의 초기작인 <아이아스>에서는 오뒷세우스가 현명하고 사려깊은 인물로 나온다. 즉 <아이아스>에서는 그의 계략이나 이성에 대한 존중이 엿보이고 있다. 하지만 소포클레스의 거의 말기 작품인 <필록테테스>에 나오는 오뒷세우스는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눈꼽만큼도 공감 못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이 역시 아테네의 황금시대 기점으로 이성에 의한 사고가 ‘믿음’에서 ‘의심’으로 바뀌고 있는 아테네인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록테테스>를 읽으면서 오버랩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현실이었다. 70~80년대의 성장을 경험한 50~60대들은 자신들의 힘과 노력으로 쌓아올린 국가를 바라보면서 자부심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 반면 2015년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 역시 부정하지는 않을 것 없다. 과거와 똑같은 태도로 지금의 현실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다들 달고 있을 것이다.


다른 결정, 다른 미래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아테네 제국을 경험했고 그 제국이 무너져가는 것을 보았던 그들처럼 다시 ‘제국’으로, ‘전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승리할 수 있다고 달콤한 전리품을 보여주면서 지금을 견뎌야 할까? 영웅 헤라클레스의 영혼을 불러서까지 소포클레스가 설득했던 것처럼.

다른 결과는 다른 결정과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테네는 시칠리아 원정 이후 달라질 수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멈추고 스파르타와 함께 사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역시 현실을 보면서 그 이유와 해결책을 알고 있으면서 달라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사소해 보이지만 전면적인 행위의 전복이 필요할 것이다.


2015.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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