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확신은 선을 넘게 만든다
- 소포클레스 비극 <아이아스> -
소포클레스 비극 <아이아스>를 읽어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 군대에서 두 번째로 용맹한’ 아이아스를 생각하면 항상 한 쪽 가슴에 아련한 마음이 들었다.
<일리아스>에서 나온 아이아스의 모습은 항상 우직했다. 아이아스는 그리스 군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용맹하게 트로이아 군대를 맞서 싸웠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아이아스>에서 이복동생인 테우크로스가 언급한 것처럼 헥토르가 그리스군의 배들이 있는 곳까지 왔을 때에 만약 아이아스가 없었더라면 전쟁은 트로이아의 승리로 쉽게 끝났을지도 모른다. 신적인 힘으로 둘러 쌓여있는 아킬레우스를 제외한다면 아이아스는 실질적으로 그리스 제일의 장수라 불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용기가 곧 덕(arete)이었던 호메로스 시대에 아이아스는 가장 덕이 있는, 즉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람이었을 것. 아이아스 자신의 덕(용기, 힘)이 모자란 것이라면 이해하고 뒤돌아 설 수 있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킬레우스의 무구(武具)가 자신이 아닌 오뒷세우스에게 돌아간 것은 순전히 함께 있던 그리스 장수들의 오뒷세우스의 말을 편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아스가 어떻게 억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론중인 소크라테스
아이아스의 모습에 맘이 아픈 진짜 이유는 아이아스의 모습에서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중첩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정당한 투표를 통해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아이아스 역시 동료들의 투표에 의해서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빼앗겼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으로 최초의 철학자라는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아이아스는 자멸감에 빠져서 자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죽음은 살아있을 때 그가 만들었던 용맹한 이미지를 부숴 버릴 만큼 강렬했다. 아련한 맘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하지만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를 읽고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의 억울함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나친 확신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고, 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아이아스는 왜 그랬을까? 그런 극단적 선택 이외에는 없었을까? 그 이유는 생각하기 전에 먼저 <아이아스>의 간단한 줄거리를 되짚어보도록 하자.
아킬레우스의 무구는 당연히 나의 것
헥토르의 칼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아이아스
“하지만 생각건대, 이 한 가지만은 확실해.
만약 아킬레우스가 살아 있어 누군가 승리한 자에게
자신의 무구들을 손수 상으로 수여하게 되었다면,
어느 누구도 나 대신 그 무구들을 거머쥐지 못했으리라.”(253)
파리스의 화살에 아킬레우스가 죽은 후 그의 무구를 두고 오뒷세우스와 아이아스 사이에는 심한 대립이 있었다. <아이아스>에 나오는 대화를 살펴보면 상황은 서로를 ‘적’으로 표현할 정도로까지 치달았던 것 같다. 동료들의 투표로 이어졌던 대립은 결국 오뒷세우스의 승리로 마무리!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아이아스가 너무나 용맹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걸까? 그리스 전체의 왕 노릇을 했던 그들은 아이아스가 아닌 오뒷세우스를 지지했다. 자신이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장수로 생각했던 아이아스는 당연히 그의 무구는 자신의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일리아스>의 표현에서 여러 번 나왔듯이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이전까지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던 사실이다. 하지만 무구는 어쨌건 오뒷세우스에게 돌아갔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결과가 뒤틀어지자 아이아스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지나치게 큰 자멸감에 빠져 버렸고, 결과적으로 그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넘어서는 악의에 찬 계획을 세운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한 밤중에 아이아스는 오뒷세우스 및 형제 왕들을 죽이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오뒷세이아>의 모험에서 항상 오뒷세우스를 도와주던 아테나 여신이 이곳에서도 그를 도와준다. (아테나는 왜 이렇게 오뒷세우스를 좋아하는 걸까? --;) 결국 아이아스는 동료 왕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이들을 대신해서 가축들과 목자들을 때려잡게 된다. 혼미해진 정신에서 깨어난 후 아이아스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수치와 모멸감을 느꼈고, 이를 극복할 방법은 죽음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헥토르의 칼을 가지고 자살한다.
지나침은 독기를 불러온다
<아이아스>를 살펴보면 여기저기 지나친 행동과 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갖지 못한 아이아스는 억울했다. 그의 억울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료들과 싸우려 했던 입장까지도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지나친 행동이 나온다. 아이아스의 아내였던 테크멧사가 말했듯이 그는 가축떼를 죽였을 뿐 아니라 몇몇의 가축들을 그의 막사까지 데리고 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축들에게 모진 고문과 “인간이 아니라 신이 가르쳐주었음에 틀림없는 악담”까지 늘어놓았다. 물론 그 후에는 모든 가축을 죽여 버렸다. 오뒷세우스라고 생각한 가축은 더욱 더 처참한 방법으로 채찍질한 이후에 죽인 것이다. 그가 가축들(동료들)을 죽인 것에서 멈추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자살을 선택한 것은 이런 지나침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 아닐까? 아테나 여신 때문에 미망이 들었고, 그래서 가축들만 죽였다면 그래도 이런 자멸감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가축 모두를 죽인 뒤에도 동료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죽음은 결국 자신에 대한 너무나 과도한 ‘확신’ 때문에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일어난 결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면, 그 결과를 껴안으면서 당연함을 재고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여기서 다시 오이디프스의 지나친 확신이 떠오른다.
자명한 것 의심하기
지나친 행동은 아이아스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이아스의 시신을 두고 벌어진 상황 역시 과도한 말과 행동의 연속이었다. 아이아스가 잘못한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시신까지 매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안티고네가 크레온 왕에게 주장했던 것처럼 상식을 벗어난 행위였다. 메넬라오스와 테우크로스의 설전은 서로의 가족사까지 욕하는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갔고, 아가멤논과의 테우크로스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스 군대를 공격하려고 했던 아이아스의 시도는 비난 받아 마땅한 것이지만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역시 이런 결과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살아있을 당시 아이아스가 했던 것들을 기억했어야 했다.
“그가 나를 그렇게 대했지만, 나는 트로이아에 온 모든 아르고스인들 중에
아킬레우스 말고는 그만이 가장 탁월한 전사임을 부인할 만큼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싶지는 않았소이다.(289)”
아이아스의 가장 큰 적이었으면서도, 그의 죽음 이후에 다시 그를 살려준 오뒷세우스. 얄밉게 보이지만 오뒷세우스와 같은 중도가 필요한 것 같다.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경쟁하고, 싸우고, 살아가는 법. 하지만 그 전에 더욱 필요한 것은 ‘자명한 것’에 대한 의심인 것 같다. 철학적 개념이나 역사적 사실과 같은 거시적인 관점 뿐 아니라 친구에 대한 생각, 가족과의 관계, 경험으로 알게 된 확실한 지식들에 대해서도 지나친 확신은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을 듯.
- 오이디푸스의 비극 역시 자신이 선대왕의 살인자가 될 수 없다는 지나친 확신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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