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 성공회 제물포 교회 사진
인문학 공동체와 교회
공인된(?) 단체 혹은 교육기관이 아닌 인문학 공동체에서 배움을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에서 마을교사아카데미와 정치철학수고 세미나를 하고 있으며, 남산강학원에서는 자연학세미나와 논어를 공부하고 있다.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드는 생각은 내게 문탁과 남산강학원이 ‘교회’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왠 뜬금없는 소리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잘 살펴보면 인문학 공동체와 교회는 남다른 공통점들이 많이 있다. 40년 가까이 교회에서 지내 온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인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선물’을 통한 공동체의 운영이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운영을 ‘선물’이라고 따로 부르지는 않고 있는데,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와 어머니를 생각해 보면 항상 먹는 밥에서 한 움큼씩의 쌀을 따로 모아서 주일마다 교회로 가져가시곤 했다. 물론, 집에 김장을 할 때나 맛있는 과일이 들어올 때에는 그 중 일부를 교회에서 나누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곳이었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한 곳이었기에 당연히 돈이 부족하였고 대부분의 목사님들 역시 이런 도움 없이 생활하기가 불가능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경험한 인문학 공동체 역시 이런 선물에 의지해서 운영되고 있었다. 2000원에 한 끼 식사가 제공되고 있지만 이곳은 단순히 밥을 먹는 곳이 아니라 배움을 나누는 곳이고,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준비하거나 다양한 선물을 나누었다. 김치가 필요합니다. 참기름이 부족해요라는 공지가 뜨기 무섭게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보내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배움과 함께 사랑의 경험도 일어나는 것 같다.
교회에 구역예배가 있다면(요즘엔 셀모임이나 목장모임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인문학 공동체에는 다양한 세미나가 있다. 교회에서 모임의 중심은 당연히 성경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설명서는 창조된 자연과 성경말씀 뿐이기 때문이다. 성도의 삶의 원리는 바로 성경이 되는 것이다.
공동체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가지 이상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구역예배처럼. 세미나에서도 항상 강조하는 것은 텍스트 중심의 모임이다. 모여서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세밀하게 읽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전하고자 하는 뜻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읽는 것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서 내 삶의 단면이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 아무런 간섭과 변화가 없으면 읽지 않은 것, 공부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교회에서 말하는 믿음과 혼동되지 않는가?
초기의 교회와 현재의 많은 교회들은 개인의 헌금을 통해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이웃을 돕는 일들을 이어왔다. 돈 자체가 중요하기 보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믿음을 바탕으로 개인들의 헌신을 통해서 기적 같은 많은 일들을 이루어 왔다.
인문학 공동체 역시 비슷하다. 한 달 세미나 회비 2만원을 가지고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들이지만, 믿음을 통해서 십시일반(十匙一飯) 같은 마음으로 헌신하는 개인들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많은 일들을 이루어 가고 있다. 공동체가 커지는 것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고 자기 부패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도록 경계하는 마음을 쉬지 않고 있다.
조금만 더 살펴보자. 각각의 교회를 특징짓는 것은 바로 교회의 리더(목사)이다. 아무리 같은 교파라 하더라도, 심지어 같은 이름의 동일한 교회라 할지라도 담임목사가 바뀌었다고 하면 다른 교회로 봐도 무방하다. 교회만큼 리더의 영향력이 지대한 곳은 없다.
달랑 두 곳의 인문학 공동체를 다니고 있지만 느껴지는 것은 공동체의 분위기와 지향하는 바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영향 때문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모두 현장성을 중요시 하고 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다. 신앙이 있는 성도라면 교회에서 함께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믿음의 기본이 된다. 마음으로 믿기 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는다는 말은 허용될 수 없다.
세미나 역시 참석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듣는 것으로는 제대로 전달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서로 마주침으로 인해서 생기는 무형의 효과들이 있기 때문에 함께 세미나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점점 더 성장하는 인문학 공동체를 보면서 남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점점 더 힘을 잃어가는 교회의 모습과 이제는 아무도 교회를 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여기지 않는 상황. 교회가 더 이상 교회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2013. 12. 26
* 다양한 인문학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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