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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

김어준과 딴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by 홍차영차 2026. 9. 24.

 

얼마전 이게 다 유시민 덕분입니다 라는 글을 썼다. 87년 이후 변화된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이해하고 싶어서다. 87년 이후의 모순적이고 이상하다고 여겼던 사건들을 재확인하면서 우리나라 정치가 '이데올로기적 정치'에서 '욕망의 정치'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실 현대 정치가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이지 않고 개인들의 욕망과 정동에 좌우된다는 결론은 그렇게 새롭지 않다. 유럽이 이미 68혁명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거쳐간 과정을 우리에게 적용해서 해석했을 뿐이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 특히 민주 진영 쪽에서 드러나고 있는 모습들은 해석하기가 쉽다. 윤석열을 탄핵하고, 촛불정부로 이재명정부가 들어섰는데 왜 민주진영은 한 마음이 되어서 정부를 돕지 않을까? 유시민이 계속해서 천박한 말로 정부와 대통령을 욕하고, 추미애와 조국은 다음 대선주자가 되기위해서 사사건건 현 정부비판에 몰두하고 있으며, 김용민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진영 인사들이 검찰개혁이라는 프로파간다를 가지고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이제는 누구도 이데올로기만으로 정치하지 않는다. 단지 이데올로기적 구호를 명분 삼아서 자신의 욕망을 펼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릇 정치란 언제나 권력투쟁이기 때문에, 이렇게 상대편이 약해진 상황 속에서 권력투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사실 유시민, 조국, 김용민, 추미애, 박은정, 정청래의 반이재명 정서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존 자신의 기득권적 인맥이 작동하지 않고 자신들의 뜻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권력투쟁을 펼치는 것 뿐이다. 물론 그럴듯한 명분을 가면으로 갖추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민주진영 지지자들의 마음이다. 현재의 정부 낮은 지지율을 보면 확실히 꽤 많은 사람들이 현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추세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자. 70년만에 검찰개혁 - 수사/기소 분리, 별건수사 금지/인지 수사 금지 - 을 이뤄냈고, 너무나 조용하게(?) 의대 인원을 3000명 이상으로 확대했고, 민영화 우려가 있던 철도 통합, 발전소 통합을 이뤄냈다. 뿐만 아니다. 오랫동안 이루지 못했던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 7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으며, 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대 최고의 경제적 성과와 외교적 성과를 맞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역대 우리나라가 상상도 못해본 8000대를 찍고 현재 6~7천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진영의 많은 국민들은 왜 이재명 정부를 아니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을까? 지지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온 힘을 다해서 비난하고 혐오하고 분노하면서 거의 목숨을 바쳐서 무너뜨리려고 한다. 딴지일보의 게시판을 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윤석열보다 더 악독한 지도자인듯 묘사되고 있고, 이재명 정부가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을 내용과 상관없이 가혹하게 비판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는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이 최고의 대통령인것처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어떤 개혁도 행하지 않았고,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을 키워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유시민, 조국, 김용민, 정청래와 같은 정치인들보다 그들은 추종하는 지지자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지지자들은 지금도 유시민을 지지하고, 조국을 지지하는걸까. 이 지지자들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김어준과 딴지일보다.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2026년 9월 21일 썸네일

 

딴지일보 자유게시판 - BEST

 

나 역시 김어준과 딴지일보를 좋아했다. 유럽배낭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김어준이 유럽에서 펜션을 빌려서 장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놈이라고 생각했고, 또 내가 대학원에 다닐 1998년 딴지일보가 처음생겨서 초창기에는 딴지일보의 재미난 글들을 보려고 거의 매일 딴지일보를 들락거렸다. 물론 김어준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것은 '나는꼼수다' 방송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던 정부와 속이 꽉 막히는 것 같은 정치 환경 속에서 '나는꼼수다'는 거의 무한도전이자 1박2일급으로 신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정치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이 때에는 민주진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는꼼수다'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파급력은 이후 '뉴스공장'이라는 방송 포맷으로 변화했고, 다시한번 겪게 된 정부의 탄압 속에서 김어준은 기존 방송채널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을 열었다.

 

김어준과 딴지일보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이게 다 유시민 덕분입니다에서 내렸던 결론을 다시 살펴보자. 87년 이후부터 우리나라는 정치적인 변혁과정을 겪고 있었다. 겉모습과 다르게 이제 개개인의 국민들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 사상만으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욕망의 정치, 정동 정치의 시대로 변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에 가장 탁월하게 반응했던 것이 김어준이다.

 

배낭여행의 에피소드나 처음 딴지일보를 창간한 상황을 살펴보자. 김어준의 행동에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 가치가 없다. 아주 정치적으로 보인 '나는꼼수다'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역시 마찬가지다. 김어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김어준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적 사상이나 정의가 아니라 정동(affect)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옳기 때문에, 정의롭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움직하게 만드는 정동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부터는 환경보호도, 노동자해방도 당위적 내용만 가지고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 듣는 사람들 각자의 욕망과 결합할 수 있어야 하고, 감정적인 동일시가 일어나야 한다. (개인적으로 녹색당, 정의당이 실패한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다. 당위적인 생각,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이 내용들이 개별적인 욕망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지 못한다.)

 

인터넷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런 욕망의 정치, 정동정치를 가장 잘 구현한 것은 바로 조선일보다. 잘 생각해보면, 조선일보는 단순하게 '공산주의=악(나쁜것)'이라는 정보(사실)를 전달하는 식으로 일하지 않았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편집장 역을 맡았던 백윤식의 이야기처럼 조사 하나를 살짝 바꾸거나, 부사 하나를 미묘하게 첨부하면서 기사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의 역동이 일어나게 한다. 조선일보의 탁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일보는 단순히 팩트 하나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그 팩트와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해낸다. 서사가 형성된다는 것은 그것을 읽는 사람들,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감각을 갖게 만든다. 그게 바로 서사의 힘이다.

 

왜 갑자기 조선일보 이야기냐고? 김어준이 바로 이 점에 있어서 탁월했고, 조선일보의 이 메커니즘을 자기것으로 습득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어준은 딴지일보를 창간하고 자신을 총수라고 불렀다. 그리고 딴지일보의 초장기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상 하나의 팩트를 가지고 만들어낸 음모론이었다. 아니 거의 음모와 추정, 환타지의 천국이었다. 아무말을 해도 뭐하고 할 사람들이 없었다. 그게 딴지일보의 매력이었기 때문이다. 신문이지만 신문이 아닌 딴지일보! 사실상 딴지일보, 나는꼼수다, 겸손은힘들다뉴스공장에서 김어준이 하는 해석의 대부분은 음모론적 추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런데, 김어준은 이런 해석을 풀어내는데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김어준 칭찬일색이 되는 것 같은데, 이게 바로 김어준의 힘, 딴지의 힘이다. 적당한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내러티브의 힘! 사실 김어준은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사실 김어준이나 딴지일보는 바뀐게 없다. 처음부터 김어준은 이런 방식으로 정의나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따라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갔을 뿐이다. 어느 때는 배낭여행이었고 '딴지일보'였고 '나꼼수'였으며, 그게 이제는 '겸손은 힘들다'로, 파리의 '식당'이 되었을 뿐이다. 김어준의 태도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너무나 훌륭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욕망을 드러내는데 스스럼이 없다. 당연히 김어준이 매번 옳을 수는 없다. 음모론 중에 어떤 것을 아주 매혹적이고 사실로 판명될 때가 있고, 또 틀렸을 때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김어준이 잘못한 것은 없다. 그가 사과를 하기 싫어하고,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독특성이라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이해하기 어려운, 내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왜 민주진영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김어준과 딴지를 떠나지 못하는가? 김어준과 딴지를 떠날 수 없는 건가?

 

정말 놀랐다. 코스피가 8천에서 6천까지 내려왔다고 지지율이 이렇게까지 떨어지는 상황에 당황했다. 김어준, 최욱, 유시민이나 조국의 터무니 없는 이야기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있어 신기했고, 윤석열과 김건희를 그렇게 칭송하고 사과한번 하지 않는 김어준과 주진우의 말을 여전히 신뢰하면서 객관적 성과를 이뤄내고 있는 이재명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상당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김어준이 얼마전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다시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맞다! 지금은 욕망의 시대이자 정동의 시대! 아무리 좋은 이야기, 진리를 이야기 해주더라도 이 내러티브에 내가 포섭되지 않으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행동과 선택을 바꿀 수 없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현재 민주진영에서 이재명 정부를 비난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김어준과 딴지'의 세계에, 딴지의 내러티브에 포섭된 팬덤이라는 사실이다. 김어준은 사실상 민주진영의 아이돌(Idol)이 되었다. 아무리 '김어준과 딴지세계'를 좋아한다고 해도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아이돌과 그 팬덤을 떠올려보면 그들의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이돌은 가수가 아니다. 뭔 말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1970년대나 1980년대에 가수(歌手)는 노래에 능한 사람, 노래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HOT, 신화, 소녀시대와 같은 아이돌(Idol)은 말 그대로 우상이다. 단순히 노래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우상으로서 매력을 가진 사람들(혹은 그런 배치 속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1990년 후반에 아이돌이 등장했다는 것이 아주 의미심장하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종교)가 힘을 잃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1990년대 후반은 삶의 핵심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와 가족, 국가 체제가 무너진 상황이었다. 개인의 존재를 지지하는 강력한 토대였던 세가지 기둥에 금이 가고, 무너지던 시기였기에 이 시기에 사람들은 자기 존재에 든든한 기반을 갖고 싶어했다. 함께 기도하고 먹고 도왔던 종교, 싫어도 좋아도 함께 했던 가족, 그래도 나를 도와줄 거라고 믿었던 국가의 붕괴 속에서 사람들은 소수이지만 강력한 소속감과 결속력을 느끼기를 원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이돌(Idol)과 팬덤의 상생이다.

1980년대의 가수였던 이은하, 나미, 민혜경, 전영록, 이선희의 팬들은 1990년대 이후의 아이돌 팬들은 사뭇다르다. 신화가 20주년 콘서트를 하거나 소녀시대가 20주년 콘서트를 한다고 하면 금방 팬들로 가득찬다. 하지만 이건 팬들이 아이돌 신화나 소녀시대를 죽도록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20년동안 공유된 경험을 다시 감각하면서 개인적 삶의 이유를 재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듣는 동시에 그 노래를 들었던 자신의 삶의 순간들을 반추할 수 있다. 잊었던 친구들과 재미있는 사건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삶의 이유를 발견한다. 응원봉과 아이돌 굿즈에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쓰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건 공유된 경험을 유지시켜주는 든든한 재료들이기에 결코 비싸다고 생각지 않게 된다. 아마도 별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팬들은 거의 죽을때까지 아이돌과 함께 하면서 삶을 살아갈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10대였다고 하면, 대부분 1980년대 이후 태생일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 1970년대, 1960년대생, 1950년대생들은 어떻게 했을까? 우연치 않게 좋아하는 아이돌이 생겼다면 다행이다. 임영웅이나 송가인의 엄청난 팬덤도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흥 종교나 미신에 대한 의존이 높아지는 것도 이 영향이라고 봐야한다.) 그렇다. 김어준과 딴지의 세계를 아이돌(Idol)이라고 생각하면, 현재 민주진영의 일부가 김어준, 유시민과 같은 사람들은 열성적으로 지지하고 이재명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딴지에 민심이 있다는 정청래나 최민희의 말은 상당히 괴이하다. 나 역시도 2000년 이후에는 딴지일보를 거의 본적이 없기에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주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깝게 2011년의 이명박 정권을 타도했던 '나는꼼수다'로부터 윤석열 탄핵을 위해 힘을 쏟았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까지 김어준과 함께 공유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 멀게 보면 1998년 딴지일보의 세계부터 김어준과 딴지의 세계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세계는 딴지와 다르지 않다. 아니 다르지 않아야 한다. 딴지에 나의 세계가 있고, 나의 삶이 있다. 김어준과 딴지팬덤들에게 김어준과 딴지가 부정당하는 것은 단순히 김어준 한 사람의 잘못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나간 내 삶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이고, 그나마 김어준, 유시민, 딴지라는 기둥으로 세웠던 경험들과 내 삶이 무너지는 것이다.

20년 넘게 신화를, 소녀시대를 좋아했던 팬들에게 그들의 실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만약에 그들이 심각한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바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계속해서 부인하고 변호하려고 하고, 나름의 논리를 마련해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김어준이 잘못했다고 실수했다는 것이 명백하더라도, 유시민의 말이 비논리적이고 천박하고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곧바로 내 지난 20년, 30년의 삶을 부인하는 일이 된다. 실수한 것에는 눈을 감아버리고, 그 기둥들이 잘 한 것들로만 자신의 정신세계를 재구성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김어준, 유시민, 딴지를 욕하는 사람들을 강력한 분노로 공격할 수 있다. 내 정신세계에서 김어준, 유시민, 딴지는 오로지 선이고 정의이며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걸 부정하거나 이 구조와 체계를 흔드려고 하는 사람들은 악마가 될 수밖에 없다.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에서 또 주목할 점은 바로 팬들의 적극적 활동이다. 자신의 아이돌이 음악방송에서 1위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팬덤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소수를 뜻한다. 하지만 그 팬들은 아주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음악방송 투표를 해야하는 시간이면 딱 준비를 하고 바로 적극적으로 투표한다. 자신만 투표하는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설득해서 투표하도록 만든다. 또한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욕한다면 멱살을 잡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게 내가 이해한 사람들이 김어준과 딴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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