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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공통개념

by 홍차영차 2018. 10. 7.

공통개념[각주:1]









참된 관념 vs 적합한 관념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들은 언제나 ‘무엇에 대한’ 관념이다. 우리 정신에는 태양에 대한 관념, 국가에 대한 관념, 사막에 대한 관념 등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이 관념들을 갖게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관념이 타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오랫동안 참된 관념이란 대상과의 일치하는 관념을 의미했다. 참된 관념은 외부에 있는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었다. 스피노자는 관념에 대한 이런 통념을 뒤집는다. 우리 정신 속의 관념은 다른 관념들과의 관계 속에서 변용되기 때문이다.[각주:2] 관념을 이렇게 이해하면 참된 관념이란 대상과의 일치가 아니라 관념의 내적 질서와 인과연쇄가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각주:3] "나는 적합한 관념을 대상과의 관계없이 고찰되는 한에서, 참된 관념의 모든 특성 또는 내부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각주:4]  적합한 관념은 대상과 관념의 일치가 아니라 관념의 질서 안에서 원인과 결과를 묻는 새로운 인식의 지도를 그릴 것을 요구한다.

정신은 외부 사물을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 정신은 우리 신체의 변용과 신체 변용에 대한 관념만을 인식할 수 있다. 정신이 신체를 이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체가 없다면, 신체의 변용을 통하지 않는다면 정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제 탁월한 정신과 열등한 신체, 불멸의 정신과 필멸의 몸, 이성적인 정신과 욕망을 좇는 육체라는 구도는 힘을 잃는다. 정신과 신체의 관계는 대등해진다. 그리하여 신체의 본성을 아는 것은 정신을 적합하게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정신은 두 가지 방식으로 실재들을 인식한다. 첫째, 정신은 자연의 공통의 질서로부터 실재들을 지각할 때마다, 실재들과의 우발적 마주침에 따라 실재들을 이것 또는 저것을 바라보도록 외적으로 지각한다.[각주:5]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각적 지각이다. 여기서 자연의 공통의 질서는 카오스적이다. 감각적 지각으로 인식된 신체변용의 관념들은 잘려있고 혼란스럽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알 수 없기에 부적합한 관념일 수밖에 없다.

둘째, 언어 즉 기호들을 통해 형성되는 관념들이 있다. 우리는 어떤 단어들을 듣거나 읽음으로써 어떤 실재를 떠올리고 이 실재들에 대한 어떤 관념을 형성한다.[각주:6] 가령 인간이란 단어를 들었다고 해 보자. 어떤 인간에게 인간은 남자이고, 다른 사람에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인간은 창조하는 개체...... 우리에게 ‘기호’는 자신의 신체가 가장 자주 변용되었던 바에 따라 정신이 회상하거나 상상하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기호들로부터 촉발되는 관념의 연쇄 역시 적합한 관념이 아니다.[각주:7]

경험에 의한 지각(인식)도, 기호에 의한 지각도 적합하지 않다면 어떤 지각이 적합할까? 적합한 인식은 “내 신체를 변용시키는 다수의 실재를 정신이 동시에 바라봄으로써 실재들 사이의 합치와 차이 및 대립을 이해하는 내적으로 규정된 지각이다.”[각주:8] 이러한 지각만이 지성의 질서를 따르는 지각방식이다. 자연의 공통 질서가 아니라 지성의 질서를 따를 때 우리는 정신을 ‘결과의 인식이 원인의 인식에서 따라나오는 방식’으로 관념들을 적합하게 연결짓게 된다.

지성의 질서를 따르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지성의 질서 역시 정신의 대상이 신체라는 것에 출발한다.



공통개념은 신체의 합성이다

우리 신체는 물체이기 때문에 다른 물체들과 어떤 점에서 합치한다. 가장 넓게는 모든 물체는 연장 속성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또 물체들은 때때로 운동하고 때때로 정지한다는 점에서 합치한다.[각주:9][각주:10]  그 합치로 인하여 물체에는 합성과 해체의 변용이 일어난다. 밥은 인간신체와 합성하여 피가 되고 살이 되며, 산소는 철과 결합하여 철을 녹슬게 한다. 독극물이 혈액 속으로 흘러 들어가 우리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것조차 공통적인 것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변용은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고, 같은 물체들의 만남도 조건에 따라 다르다. 가령 공기 중의 산소는 호흡을 통해 신체를 재생시키지만 활성산소는 신체를 노화시킨다.

신체변용이 일어남과 동시에 정신에는 신체변용에 대한 관념이 생겨나고, 합성에 대한 관념, 즉 공통적인 것에 대한 관념이 구성된다. 이것은 고유한 공통개념이다.[각주:11] 예를 들어 내가 수영을 할 때, 물과 나 사이에는 고유하게 공통적인 것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생겨난 공통개념은 적합한 관념이므로 필연적으로 우리 안에 적합하게 존재한다.

세미나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에티카>를 읽으며 변용되고, 토론의 과정에서 친구의 변용과 합성을 일으킬 때 우리는 공통개념을 갖게 된다. 텍스트를 매개로 세미나에서 합성과 변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둘 사이에 공통개념은 만들어질 수 없다. 합성은 변용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공통개념은 논리적으로 모든 것에 공통적인 보편적 공통개념으로부터 독특한 실재들 사이의 고유한 공통개념으로 나아가지만,[각주:12] 경험적으로는 덜 보편적인 공통개념에서 더 보편적인 공통개념으로 나아간다.[각주:13] 공통개념은 신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공통개념은 먼저 내 신체와 부딪치는 다른 신체와의 사이에서 시작된다.

신체의 합성은 우연한 마주침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합성은 ‘공통적인 것’이 있기에 일어나므로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다. 필연성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원인의 인식으로부터 결과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적합한 관념이다. 자주 다른 신체와 합성할수록 정신은 더 많은 것은 필연적인 것으로, 적합하게 인식하게 된다.

신체들간의 합성이 특별히 중요하다. 신체들의 합성이야말로 지성의 질서의 시동을 거는 열쇠가 된다. 공통개념을 통해 우리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적합한 인식으로 나아간다.



공통개념과 윤리

몸에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면역반응이 쉬지 않고 일어난다. 신체가 신체를 보존하고 재생하는 역량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정신 역시 지성의 질서를 따를 수 있는 사유능력을 갖는다. “정신의 역량은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는 지적 능력에 의해 정의된다.”[각주:14]

우리 신체가 다른 물체들과의 관계에서 공통개념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 정신은 더 많은 것을 적합하게 지각할 수 있게 된다.[각주:15] 곧 우리 신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가 적합한 인식을 할 수 있는 역량도 따라서 커진다. 신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개인의 능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개체는 다른 개체와 합성되어 더 복합적인 신체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합성할 힘이 없을 때, 공동체를 구성하지 못할 때, 개체는 고독하게 자기 계발에 내몰린다.

고립된 삶을 사는 것보다 공동체를 구성할 때 우리의 능력은 증가한다. 다른 신체와 공통개념을 형성하지 못한 채 자신의 경험과 습관과 기억에만 의존할 경우, 우리 정신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의 지배를 받게 된다. (고착, 독선, 아집)

공통개념은 신체적 합성일 뿐 아니라 실제 삶에서 실천적으로 유용하다. 공통개념을 통해 우리는 삶의 윤리를 이해할 수 있다. 지켰을 때 주어질 보상이나 칭찬, 지키지 않았을 때 닥칠 공포나 두려움 때문에 우리를 움직하게 하는 규칙은 지성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정신의 내재적인 규칙은 오직 적합한 관념의 연쇄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성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성에 의해 추구하는 것은 모두 인식하기와 다르지 않다."[각주:16]

따라서 어떤 규칙이 당위가 아니라 공통개념으로 작동하려면 지성의 질서에 의해 적합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공통개념은 물체들의 관계에서 실존역량과 완전성의 증대로 표현되는 적합한 질서이고, ‘관계들의 합성의 법칙’이기 때문이다.[각주:17] 만약 공동체의 윤리가 ‘~해야 한다’의 도덕적 형식으로 등장한다면 이는 함께 하는 신체들 사이에 합성의 능력이 현저히 낮어졌음을 보여주는 징후일 뿐이다.


공동체는 공통개념으로 구성되고, 공통개념으로 실존한다. 신체를 구성하는 개체들이 운동과 정지의 일정한 비율을 유지할 수 없다면, 신체를 둘러싼 수많은 물체들과 일정한 방식으로 교통하지 않는다면, 신체는 단 한 순간도 실존할 수 없다. 우리 신체야말로 공동체의 모델이다. 어쩌면 공동체는 보이는 신체가 아니라 운동과 정지의 리듬이고, 관계들이고, 공통적인 것들의 조직화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신체들이 모여서 만드는 공동체도 다르지 않다. 공통개념은 사실 공동체의 구성능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합성과 해체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공통개념은 생물학적인 합성임과 동시에 수행적인 실천이다. 그렇기에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등장한 공통개념[각주:18]은 신체의 합성이자, 인식론적으로 적합한 관념임과 동시에 윤리적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2018. 10.7

  1. 공통개념 정리는 2018년 스피노자와 글쓰기 세미나 시즌1의 요요샘의 에세이를 공부하면서 요약한 것임. [본문으로]
  2. <에티카> 2부 정의3, 나는 관념을 정신이 생각하는 실재이기 때문에 형성하는 정신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본문으로]
  3. 2부 정의4 해명, 나는 외부적 특징, 곧 관념과 그 대상의 합치를 배제하기 위해 내부적이라고 말한다. [본문으로]
  4. 2부 정의4 [본문으로]
  5. 2부 정리29 주석 [본문으로]
  6. 2부 정리40 주석2 [본문으로]
  7. 2부 정리40 주석1 [본문으로]
  8. 2부 정리29 주석 [본문으로]
  9. 2부 정리13 보조정리2 증명 [본문으로]
  10. 2부 정리38 [본문으로]
  11. 2부 정리 39 [본문으로]
  12. 2부 정리38, 정리39는 보편적 공통개념에서 고유한 공통개념으로 전개된다. [본문으로]
  13. 이는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전개한 논리이다. [본문으로]
  14. 5부 서문 [본문으로]
  15. 2부 정리39 따름정리 [본문으로]
  16. 4부 정리26 [본문으로]
  17. 들뢰즈,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p396 [본문으로]
  18. 데카르트는 ‘공통개념’을 수학적 공리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에티카>에 등장하는 공통개념은 스피노자만의 독창적인 개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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