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나이와 스파르타로 대표되는 그리스 문명의 최전성기는 언제였을까?
일반적으로 그리스의 전성기는 페리클레스의 황금시대인 기원전 460~430년을 꼽는다. 이 시기에 파르테논 신전이 지어졌으며, 페이디아스의 아름다운 조각들이 만들어졌고, 수 많은 그리스 비극이 탄생했다. 하지만 <역사>에 나타난 페르시아 전쟁사를 읽고 있노라면 그리스의 탁월함arete과 자부심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시기는 살라미스 해전이 있었던 기원전 480년 전후가 아닐까 생각된다.
한 낮의 기온이 가장 높이 올라갈 때는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올랐을 때가 아니다. 태양이 가장 높은 곳을 조금 지나가야 그 열기가 대지를 가장 뜨겁게 만든다. 이처럼 그리스 아테나이가 페리클레스 시대에 보여준 보여준 문화, 예술, 정치, 경제의 모습은 바로 그리스의 탁월함이 최고조를 어느정도 지나서 대지를 달구는 시간이 흐른 뒤가 아니었을까. 다시 말해서 기원전 6세기 초(기원전 594년)에 이루어진 솔론의 개혁과 6세기 말(기원전 508년)의 클레이스테네스의 민주주의 개혁으로 그리스 아테나이는 스스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힘을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져진 힘은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서 드러났다. 실상 이때까지 그리스의 탁월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탁월함arete를 보여주기 위해 신전과 조각, 그림, 비극 공연을 따로 내세울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지금 서구 문화가 그렇게 자랑하는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유산은 실상 점점 더 왜소해져가는 자신들의 탁월성을 ‘보이는 것’으로 보완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일수도 있다. 삶 자체가 개인의, 공동체의 탁월성을 드러내는 데, 굳이 탁월함의 표상을 위한 표상을 만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이런 측면에서 아테나이의 역사를 볼 때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기원전469~399)는 페리클레스의 황금시대에 성장했고, 참혹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직접 참가하면서 철학자로서의 소명을 발견한다. <변론>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아킬레우스에게 비유했던 것은 단지 '목숨을 걸면서 조국'을 위해서 죽어갔다는 사실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호메로스 시절 자신들의 탁월함을 생활 속에서 드러내고 살았던 호메로스적 인간들을 다시 소환하면서 소크라테스는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소크라테스는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정말 스스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아테나이 시민들과 도시 국가 아테나이에게 질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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