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조건으로서거짓

<트루먼쇼>, 속지 않는자는 누구인가

홍차영차 2026. 4. 4. 11:17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

라캉의 이 구절을 읽으면서 영화 <트루먼쇼>가 떠올랐다.

 

1998년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주인공 트루먼이 속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를 제외한 모두는 트루먼의 세계가 사실은 가상의 세트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트루먼만 모르고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TV속 트루먼을 보면서 안타까워 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나도 트루먼을 안쓰럽게 봤다. 오래전에 쓴 글을 보니 트루먼이 '세상' 속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은 '세트' 속 자신의 삶에 만족했기 때문일거라고 썼다. 진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원했다면 좀 더 일찍 세트 바깥 세계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번에 라캉을 공부하면서 <트루먼쇼>가 전혀 새롭게 보였다. 사실 잘 보면 트루먼만이 진짜 현실의 삶(the real)을 살고 있었다. 속지 않는다고, 주변의 카메라를 모두 의식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계속해서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는것 아닌가.

 

트루먼의 와이프는 물론이고 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 직장 동료와 길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연기자였다. 그들은 스스로 이게 연기임을 알고 있었다. 카메라가 자신들을 보고 있음을 인지하면서 행동했다. 한 컷의 연기가 끝나면 건물 뒤에서 담배 한대를 피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트루먼은 이게 진짜가 아닌걸 모르겠지. 우리들은 알고 있는데." 트루먼을 보면서는 평생의 삶을 속아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면서 애처롭게 바라봤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트루먼과 트루먼을 제외한 세트속 모든 사람들 중에서 진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2026년의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와 비교해보자. 트루먼과 그의 친구들 중에 누가 더 우리와 가까울까. 놀랍게도 현실에서의 내 삶은 트루먼이 아니라 트루먼의 친구와 가깝다. 사소한 행동을 하면서도 시선을 느낀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도 우리는 시선을 느끼면서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한다. 우리는 트루먼의 친구처럼 현재 강력한 응시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행동만이 아니다. 나의 의식적인 생각은 물론이고 무의식적인 태도조차도 자신도 모르게 시선아래 놓여있다. 사실 우리는 응시가 없는 순간을 살아본적이 없다.

<트루먼쇼>를 보면 요즘 드라마에서 나오는 PPL이 자주 나온다. 아니 이 세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PPL이다.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트루먼의 아내가 갑자기 트루먼과 대화중에 한 상품에 대해서 광고하는 것처럼 말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 모두는 바로 이 아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우리는 삶의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살고 있다. 거의 모든 행동과 사고, 관계가 돈과 이익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트루먼쇼>에서 노골적으로 상품을 광고하고 있는 아내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리 세계에 밝혀지지 않은 것은 없다.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현상도 용납하지 않는다. 과학과 이성으로, 인과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은 배제되고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마치 트루먼쇼를 기획하고 밤낮으로 오로지 트루먼만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기획자의 모습과 같지 않은가. 이 기획자는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트루먼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획자! 역설적으로 이 기획자는 자신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트루먼이 태어난 순간부터 수십년동안 트루먼을 바라보는 삶만을 살아왔다. 기획자와 트루먼 중 누가 속지 않는 자인가.

 

놀랍게도 <트루먼쇼>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트루먼이다. 설령 세트 속에서 결혼까지 한 트루먼이었지만 트루먼은 항상 삶에 진심이었고, 응시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트루먼의 첫키스를 보았고, 첫사랑의 실패를 알고 있었지만 정작 언제나 현실을 살았던 유일한 사람은 트루먼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쇼(show)였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순간이었다. 라캉식으로 보면 자신 안에 뚫린 구멍 - 대상a -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트루먼은 구멍을 그냥 덮어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갑자기 친구가 나와서 술 한잔 하면서 잊자고 해도 아내가 정신차리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트루먼은 이게 나의 구멍 - 대상 a - 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시도했다.

여행을 통해서 알아보려고 하는 순간에 교통이 막히고, 산에서 불이 나는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런 모든 순간이 실패로 돌아간 순간에도 트루먼은 멈추지 않았다. 최고의 공포심 - 물에 대한 트라우마 - 까지 이용했지만 트루먼은 직접 대면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넘으려고 시도했다.

 

 

<트루먼쇼>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진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현실(reality)이 현실이 아님을 직접 발견했다. 아, 내가 진짜라고 생각했던 현실은 그저 가상이었구나! 그런데 바로 이 순간 두려워하고 놀라면서 무너지는게 아니라 가벼운과 경쾌한 유머를 가지고 진짜 삶(the real)을 향해 나아간다. 그의 마지막 대사를 보면, 진짜 삶이란 어떤 거대한 사건이나 엄청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상 그 자체가. 실재를 외면하지 않고 하루하루, 순간 순간의 삶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밖에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삶! 그래서 트루먼은 세트밖으로 나가기 전에 이렇게 인사한다.

 

 

"Good morning, and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다시 사소하고 소박한 일상을 살아가겠다는 이 한마디가 그 어떤 외침보다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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