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리스본행 야간 열차> -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홍차영차 2025. 10. 18. 18:36

 

<리스본행 야간 열차>

: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다리 위에서 만난 '수수께끼 같은 여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가 했던 포르투게스portugués라는 포루투갈어의 리듬감 때문이었을까. 무슨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채 그레고리우스는 30년 동안 단 한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았던 삶, 학교 제도의 기둥으로 불렸던 단단한 삶에서 빠져나왔다.

 

몇 시간 후 그날 일어난 일을 다시 떠올렸을 때, 거울 앞에 서 있던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었음을 깨달았다. 수수께끼 같은 여자와 만난 흔적은 지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갑자기, 그 찰나에 들었던 것이다. 16쪽

 

"포르투게스portugués" 18쪽

 

그는 57년이 지나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이제 완전히 장악하려고 한다는, 불안과 해방감이 섞인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25쪽

 

그가 라틴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문장들이 과거의 모든 침묵을 자기 안에 품고 있기 때문이었고, 뭔가 대답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언어는 온간 소란스러움에서 떨어져 있었고, 확고부동하며 아름다웠다. 그레고리우스는 라틴어를 죽은 언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위인들이다. 플로렌스가 누군가와 에스파냐어로 통화를 하면 그는 문을 닫았다. 이런 행동은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레고리우스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25쪽

 

그레고리우스는 고전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뿐 아니라 히브리어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그는 사람들이 죽은 언어라고 말하는 라틴어를 좋아했다. 그레고리우스는 문두스(mundus) - 우주, 세계 - 라는 이름처럼 고전어를 중심으로 둔 하나의 세계였다. 그는 마치 죽은 단어 몇 가지로 만들어진 듯한 건조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단 한 번의 마주침 그리고 무언가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포르투게스portugués'라는 소리(기표)로 무너졌다. 아니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완전히 장악하는 순간'과 맞닥트렸다.

평소에는 절대 찾지 않던 에스파냐 책방을 찾았다. 소란스런 언어로 느껴졌던 에스파냐어. 그곳에서 그레고리우스는 마치 또 다른 세계의 나처럼 느껴지는 프라두의 책을 만난다. <Um Ourives das Palavras언어의 연금술사> 그레고리우스는 인생에서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행동, 수업을 하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가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난다. 오로지 이 책과 그 저자에 대한 생각을 품고서. 책의 서문을 읽으면 그 이유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말은 경험한 것에서 미끄러져 결국 종이 위에는 모순만 가득하게 남는다."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ㅇ낳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 멜로디를 주는 경험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 관찰의 대상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고, 말은 경험한 것에서 미끄러져 결국 종이 위에는 모순만 가득하게 남는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단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익숙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경험들을 이해하기 위한 왕도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이상하고 묘하게 들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서야 깨어 있다는 느낌, 정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31쪽

 

리스본에 가는 도중에도 그레고리우스는 계속해서 망설였다. 자신이 왜 리스본으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여자가 말한 그 한 마디 포르투게스portugués와 우연하게 발견한 포루투갈 책 한권에 매혹당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 속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레고리우스는 빈 접시와 김이 올라오는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앉아 지금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확실하게 깨어 있는 순간임을 절감했다. 천천히 잠을 떨치고 의식이 완전히 들 때까지 조금씩 잠에서 깨어나는 그런 명료함이 아니었다. 지금 이 느낌은 아주 달랐다. 이제껏 몰랐던 세상에 있다는 각성, 전혀 이질적인 눈뜸이었다. 리옹 역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는 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후 플랫폼에 발을 내딛으면서, 온전한 의식으로 기차에서 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25쪽

 

그렇게 평생을 다녀온 학교를 나왔다. 스위스 베른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했다.

리스본으로 가면서 포루투갈어로 쓰인 책을 한 단어씩 번역하면서 읽어나갔다. 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는 마치 그레고리우스의 내면처럼 보인다. 프라두는 평행 세계에 존재했던 그레고리우스처럼 보인다. 프라두 역시 언어에 뛰어났으며 그는 한 평생 너무나 뛰어난 그 능력때문에 고통받았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도 프라두 앞에 서면 압도당하는 기분이었고, 그의 부모들조차도 프라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레고리우스는 천천히 그의 글을 읽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과 사건들을 찾아보면서 누구보다도 더 깊이 프라도를 이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레고리우스는 포루투갈어를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문법책과 사전을 찾아가면서 프라두의 책은 찬찬히 번역해가야 했다. 프라두는 마치 그레고리우스 내면에 있는 무의식처럼 보인다. 이성의 언어로는 무의식을 이해할 수 없다. 번역이 필요하다. 성급하게 다가가면 오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인 자신의 모습과 달라서 놀랄 수 있지만 겁먹을 필요도 없다. 그저 천천히 함께 걸어보면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 가서 오래전에 죽은 프라두의 행적을 따라갔다. 프라두의 여동생 아드리아나와 멜로디도 만나고, 또 가장 절친했던 친구 조르주를 만났다. 프라두를 가장 잘 이해했으나 항상 거리를 두었던 마리아 주앙을 만났고, 함께 저항 운동을 했던 동지도 만났다. 그가 공부했던 곳을 걸어보고, 그가 자랐던 집도 살펴본다. 그레고리우스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프라두를 알아가면서 또한 자신을 발견했다. 프라두의 고민은 동시에 그레고리우스의 고민이었다.

 

_신의 말씀에 대한 경외와 혐오

난 대성당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이 세상의 범속함에 맞설 대성당의 아름다움과 고상함이 필요하니까. 반짝이는 교회의 유리창을 올려다보며 그 천상의 색에 눈이 부시고 싶다. 더러운 제복의 단조로운 색깔에 맞설 광채가 필요하니까. 교회의 혹독한 냉기로 내 몸을 감싸고 싶다. 병영의 단조로운 고함 소리와 들러리 정치인의 재기 넘치는 수다에 맞설, 명령을 내리는 듯한 그 정적이 필요하니까. 행진곡의 새된 천박함에 대항할 물 흐르는 듯한 오르간의 울림이, 흘러넘치는 그 숭고한 음색이 듣고 싶다. 난 기도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천박함과 경솔함이라는 치명적인 독에 대항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필요하니까. 난 성서의 강력한 말씀을 읽고 싶다. 언어의 황폐함과 구호의 독재에 맞설, 그 시詩가 지닌 비현실적인 힘이 필요하니까. 이런 것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231~232

......

시간에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부여하는 것은 죽음이다. 시간은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 있게 된다. 모든 것을 안다는 신이 왜 이것은 모르는가? 견딜 수 없는 단조로움을 의미하는 무한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난 대성당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유리창의 반짝임과 서늘한 고요함과 명령을 내리는 듯한 정적이, 오르간의 물결과 기도하는 사람들의 성스러운 미사가, 말씀의 신성함과 위대한 시의 숭고함이 필요하니까. 나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자유와, 모든 잔혹함에 대항할 적대감도 필요하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무의미하다. 아무도 나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말기를. 237

 

'신의 말씀에 대한 경외와 혐오'는 프라두의 글이지만 동시에 그레고리우스의 고민이다. 온갖 소란스러움과 떨어져 있고 확고한 부동성을 갖고 있는 라틴어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떠들썩한 에스파냐어와 포르투갈어다. 아무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맞다. 라틴어의 명료함과 침묵, 포르투갈어의 소란스러움과 경쾌함을 함께 향유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면 그 책 안의 글자들이 모두 그에게 흡수된 것 같다는 프라두에게 가장 큰 고통은 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신에게서 경외와 동시에 혐오를 느끼는 자신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러한 고통은 프라두와 그레고리우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의 세계, 오로지 언어로만 만들어진 세계를 살아가는 현재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누구에게나 문제라는 사실이다. 너무나 명백하게 알려져서 숨겨진 수수께끼!

신을 거부하지만 (아니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상황) 그렇다고 '대성당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이 세상의 범속함과 냉혹함에 맞설 아름다움과 고상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언어의 인간이었던 프라두가 계속해서 '시의 숭고함'을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야말로 언어의 세계에서 지켜낼 수 있는 '기도하는 마음'이기때문이다.

 

완전하지 못하다는 자각은 반대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인생을 위한 조건이야. 283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299

사람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스스로를 견디어야 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 될 테니까. 299

 

5주 동안 리스본에 있는 동안 특별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책을 한 권 읽었고, 그 책과 연관된 사람들을 만났을 뿐이다. 그 사람들의 과거를 다시 가져와 재조직하고 프라도를 이해하게 되었고, 자신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에 그는 프라도과 관련되 모든 것들의 사진을 찍었다. 베른으로 돌아와서도 익숙했던 풍경들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냥 사라져버릴 과거를 저장해놓으려는 듯이.

 

저를 갈기갈기 찢을 것만 같은 모순된 감정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고요. '어떤 일을 표현한다 함은, 그 일이 지닌 힘은 보존하고 두려움은 제거하는 것이리라.' 페소아가 쓴 글입니다. 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