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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8

'나'는 어떻게 '내'가 되는가 ‘오뒷세우스’는 어떻게 ‘오뒷세우스'가 되는가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오뒷세우스는 어떻게 자신이 오뒷세우스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19권부터 24권까지는 마치 이런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구성되어 있다. 즉, 변화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오락가락했던 오뒷세우스는 행위(역량)와 흔적(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해낸다.20년 만에 이타케로 돌아온 오뒷세우스는 ‘내가 이타케의 왕이(었)다’라는 주장으로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질서와 기준이 무너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이타케의 왕’이(었)다라고(본질) 외쳐도 이타케 공동체는 이를 순순히 인정하지 않았고 인정할만한 공동체적 역량도 갖지 못한 상황이었다. 오뒷세우스는 스스로가 이타케의.. 2018. 8. 29.
무조건적 환대는 가능한가 무조건적 환대?! 에는 수많은 환대hospitality의 모습이 나타난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 자신을 탄원자로 부르며 찾아왔을 때, 대부분의 주인들은 그들의 신원과 답례 가능성에 관계없이 환대한다.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포도주를 권하고, 목욕물을 준비하고 좋은 옷도 선물한다. 15권에서는 스스로를 친족을 살해한 도망자로 소개하는 인물까지도 텔레마코스는 환대한다. 또한 오뒷세우스는 구태여 가지 않아도 될 장소들까지 가면서 위험을 담보하면서 환대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건 뭐지? 이들에게 환대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직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들의 모습은 마르셀 모스가 에서 이야기했던 증여와 선물의 순환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고대 부족들에게 다른 부족들과의 관계는 전쟁 아니면 친교일 수밖에 없기에, 그.. 2018. 8. 22.
이성logos의 시대에 신화는 왜 필요했을까 이성logos의 시대에 신화는 왜 필요했을까 분명 호메로스는 이전의 왕궁 중심의 뮈케네 문명과 다른 새로운 정치체인 폴리스polis가 형성되는 시점에 와 를 문자화했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왜 신화가 필요했을까?지난주 ‘뮈토스mythos의 영웅에서 로고스logos의 영웅으로’란 말에서 언급했듯이, 의 철학은 신화적 배경을 명확히 한다. 그래서 아킬레우스의 시대는 신과 인간이 함께 지내고, 인간이 황소에게 유혹당하기도 하고(미노타우로스), 반인반수의 존재들(켄타우로스)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도 제기되지 않았던 시대, 신화의 시대였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뮈토스에 대해 사람들은 의심을 갖게 되었고, 이제 사람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고 의심은 삶의 필수품이 되었다. 영웅의 이상향도 완전히 바뀌어 힘과 용기로 대.. 2018. 8. 22.
존재와 행동과 앎은 나눠지지 않는다 안다는 것에 대한 착각- 존재(나)와 행동과 앎은 나눠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책을 보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왜 하나라도 더 알려고 할까? 잘 살고 싶어서다. 번개가 치는 원리를 알면 공포에 떨지 않고 위험을 피할 수 있고, 달과 지구 사이에 어떤 힘이 작용하는지 알면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공부한다고 생각한다.그런데 우리가 공부와 앎을 이런 방식으로, 다시 말해 객관적 진리 혹은 법칙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17세기 뉴턴이 사물의 역학법칙을 발견한 이후 우리에게 뭔가를 안다는 것, 인식하는 것은 이 법칙,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후의 앎의 행보를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더 많이 공부해서, 세계.. 2018. 8. 8.
'길' 위의 앎과 삶 ‘길’ 위의 앎과 삶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보여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없을 때 나타난다. 호메로스의 와 가 쓰여졌을 때는 이미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총체성을 잃어버릴 즈음이었고, 그리스의 반짝거리는 유산들은 실상 그리스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더 이상 드러나 보이지 않는 시점에 넘쳐나기 시작했다.호메로스의 시대로 알려진 서사시의 시대는 총체성의 시대였다. 삶과 이상은 서로 떨어지지 않았으며, 서사시의 등장 인물 누구도 자연과 유리된 자신,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총체성의 시대에는 누구도 삶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신과 자연, 인간으로 엮어진 촘촘한 그물망의 필연성으로 움직이기 때.. 2018. 8. 8.
코나투스, 자유 혹은 안전? 코나투스, 자유 혹은 안전(보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인간의 본질이란 “자신의 존재 안에서 존속하려고 추구하는 노력conatus”이고, “실재의 현행적 본질 자체”(3.7)다. 그렇다면 코나투스는 자유인가 안전인가?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에 대한 강력한 주장으로 펼쳐진다. 1672년의 오라녜파의 혁명을 생각하지 않더라고 삶과 정치에서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스피노자가 충분히 이해된다.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주장과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발리바르가 “우주가 변화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그 몇 년의 시간에서 스피노자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꺼낸다. “자유가 아니라 안전”스피노자는 더 이상 시민사회의 목표로 ‘국가의 목적은 자유’라.. 2018. 8. 4.
루소에서 맑스로, 맑스에서 스피노자로 루소에서 맑스로, 맑스에서 다시 스피노자로: , 에티엔 발리바르 정치와 정치적인 것우리가 보통 말하는 “정치”는 곧 경제, 문화, 종교, 사회 등과 구분되는 제도적 영역으로서의 정치, “la politique”이다. 프랑스 정치 철학자 클로드 르포르는 ‘라 폴리티크’는 정치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인간들이 세계 및 자신들 사이에서 맺고 있는 관계를 산출함으로써 사회를 성립 가능하게 해주는 산출적 원리로서 ‘정치적인 것le politique’를 제안한다. 르포르에 따르면 넓은 의미의 사회가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 경제, 종교, 문화 등과 같이 사회의 한 제도로서 정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 자체의 제도화를 실현하는 게 곧 정치이다. 루소에서 맑스로원제목과 달리 옮긴이는 논.. 2018. 8. 4.
참된 인식이 만드는 능동 정서 참된 인식이 만드는 능동 정서: 수동passion과 능동action 그 이분법을 넘어서 능동적인 사람이 되라고?“능동적으로 일하자!” 혹은 “능동적인 사람이 되야지.” 학교에 다닐 때나 회사에서 일할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능동과 자유는 실제의 모습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유롭다고 말하는 행동들은 대개 ‘충동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고, 능동적 행동이란 오로지 자기가 안건을 내거나 주도할 때 뿐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외부의 조건들에 휘둘리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이다.스피노자 정치학과 인간학의 독창성은 바로 이 부분에서 반짝거린다. 스피노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인간을.. 2018. 8. 3.